박원순계 기동민, 남인순, 박홍근, 김영호 의원… 이재명계 정성호, 유승희, 김병욱, 김영진 의원
“‘박원순 10년 혁명’을 완수해야지요.” 언론을 통해 내년 총선 출마설이 거론되는 서울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본인은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고, ‘박원순 서울시 10년’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정치권 용어로 속칭 ‘순장조’가 되겠다는 말이다.

지난해 8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선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7개 시·도지사와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에 이재명 경기도 지사, 왼쪽에 박원순 서울 시장이 서 있다. / 청와대 사진 기자단
박원순과 이재명.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각각 유권자 수가 1000만명 내외다. 둘을 합치면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 수(2016년 총선의 경우 4247만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런 자치단체들의 수장이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것이 이들의 약점이다. 그러다보니 국회 내에 강력한 지지그룹이 없었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 9일 치러진다. 채 1000일이 안 남았다. 내년 총선은 이들 ‘세력 없는 자치단체장 대권주자’가 세력을 구축할 마지막 기회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명의 ‘자치단체장 잠룡’으로 거론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재수인 셈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그런데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상 지자체장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세력을 만들어야 하지만 최대한 합법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의외로 많은 ‘박원순계’ 총선 도전자들
현재 총선을 준비하는 인사 가운데 박원순계로 거론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기동민 의원과 남인순, 박홍근, 김영호 의원 등이 원내 박원순계로 분류된다. 여기에 6월 19일 당 조직강화특위에서 서울 강서을 지역위원장으로 확정된 진성준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전 의원), 경기 안양에서 출마할 예정인 권미혁 의원이나 서울 양천을에서 준비하고 있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범(凡)박원순계로 분류된다.
박 시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두 사람도 현역 지역위원장으로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천준호 서울 강북갑 지역위원장과 허영 강원 춘천 지역위원장이다. 춘천시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허 위원장 이외에도 유정배 대한석탄공사 사장 및 육동한 강원연구원 원장도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박원순계로 분류된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유정배 사장은 박 시장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첫 출마할 당시 공개 지지선언으로 박원순 지지여론을 이끌었다.
경기 안양의 경우도 비슷하다. 서울시 박 시장 캠프에서 선거법률자문을 했던 민병덕 변호사는 과거 두 차례 안양 동안갑에 출마했다가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안양 동안갑은 이석현 의원 지역구다. 권미혁 의원 역시 안양 동안갑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상황이든 박원순계 내의 교통정리가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을 모시고 8년 이상 일했고, 행정1부시장을 역임하고 또 지난 지방선거 때는 시장권한대행을 맡았으니 박 시장계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박원순 시장의 철학이나 실천경험을 공유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6월 19일 기자와 통화한 윤준병 전북 정읍·고창 지역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진성준 전 비서관과 함께 이날 지역위원장에 임명됐다. 윤 위원장은 1982년 행정고시 합격 후 전북도 지방행정사무관을 거쳐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 기획조정실장, 상수도사업본부장, 관악 부구청장 등 ‘정통 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이른바 ‘박원순맨’으로는 지난 4월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했다. 윤 위원장은 “공직생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선택을 받으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격려를 주위에서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상대는 역시 행시 출신의 전북도 관료 출신으로, 3선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다. 이밖에 서울시 출신으로 내년 총선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는 오성규 비서실장, 곽현 소통전략실장 등이다.
현역 의원 중에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정성호, 유승희, 제윤경, 김병욱, 김영진 의원 등이다. 서울 성북갑의 유승희, 비례 제윤경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경기도 국회의원이다. 이 지사와 사시 동기인 정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이재명계가 아니라 이 지사가 정성호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이 막역한 관계라는 뜻이 된다. 이른바 친이재명계의 좌장 격으로 언급되고 있다. 2017년 말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구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험지 출마를 선언했던 제윤경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경기도로 가서 산하기관장으로 경력을 쌓으며 이 지사 대선팀에서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선에서 당선되면 청와대에 들어가 주요 보직을 맡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험지에서 살아 돌아오라”
이 지사 측의 총선전략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내년 선거 때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가능한 모든 자기쪽 사람들을 출마시켜 정치경험을 쌓고 돌아오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전경험을 통해 향후 공식화될 ‘캠프’의 맷집을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원외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대표적 인사로는 이화영 전 의원이 있다. ‘전국 최초의 평화부지사’라는 콘셉트로 경기 용인갑 도전이 유력시되고 있다.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준 전 의원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경기도 광명시장 출마 전력이 있는 김경표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도 광명지역 총선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386정치인 ‘어공’인 조계원 경기도 정책보좌관이나 지난 지방선거 때 캠프 전략기획실장을 역임한 곽윤석 경기도 홍보기획관도 출마가 점쳐진다. 서남권 경기도 소통협치국장은 유기홍 의원의 서울 관악갑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김병관 의원의 경기 성남 분당갑에 출마할 예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분당갑은 이 지사가 살던 동네로 자신의 지역구라는 인식이 있다”며 “이 지사가 대표적인 친문계인 김 의원에 맞서 자신의 최측근을 내보내도 승산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와 통화한 이들 출마 예정자 상당수는 “현직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앞의 서울시 고위관계자처럼 딱 잘라 “총선에 안 나간다”고 말하는 인사도 있었다. 선거정치 컨설턴트를 했었던 신철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는 것도 아니고 현역 공직 신분에서 출마선언을 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실제 출마의사가 있더라도 아직 본인을 부각시킬 최적의 ‘타이밍’은 오지 않았다고 본다는 것이다.
박신용철 선거 컨설턴트는 “대선주자급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총선국면을 주도하려면 자기 측 인사들의 험지 출마를 통해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며 “지금 거론되는 인사들 대부분은 민주당 기존 유력 후보들과 경선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전통적으로 자유한국당 강세인 강남권 돌파가 과제이며,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를 넘어서는 후보군을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9개월의 숙제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