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복귀, 시큰둥한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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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파는 인적쇄신이 급한 불… 복당파는 내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 처지

모두가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160일 만에 복귀를 선언했다. 홍 전 대표는 11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방선거 패배 직후 야당 대표를 물러나면서 나는 홍준표가 옳았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바로 설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며 “내 나라가 이렇게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썼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당 대표 시절, 김성태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당 대표 시절, 김성태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홍 대표의 현실정치 복귀는 단숨에 이슈가 됐다. 하지만 정작 한국당 내에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친박으로 불리는 잔류파 입장에서는 인적쇄신이 ‘급한 불’이라 홍 전 대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복당파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받아준 홍 전 대표를 내칠 수도, 그렇다고 끌어안을 수도 없는 처지라는 분석이다.

잔류파 “홍준표에 관심 가질 시간 없어”

현재 한국당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인적쇄신이다. 김용태 조강특위원장은 11월 19일 ▲대여투쟁에 미온적인 인사 ▲20대 총선 진박공천 관여 인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개입 및 방치·조장 인사 ▲당 분열 관련 책임 인사 ▲존재감과 활동이 미미한 영남권 다선 인사 등의 구체적인 인적쇄신 기준안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복당파다.

잔류파 의원들은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한 잔류파 초선 의원은 ‘20대 총선 진박공천 관여 인사’라는 기준을 두고 “최경환·서청원 등 대표적인 친박들은 이미 날아가지 않았나”라며 “막말로 20대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덕 안 본 사람이 누가 있나. 모두 자기가 친박, 진박이라고 하던 때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정우택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탈당파들이 얼굴로 나서면 차기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힘들다”며 “총선에서 우리 당이 이겨야 우리가 뭘 해보는데 탈당파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당의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번만 좀 참아달라”고 말했다. 잔류파인 정 의원은 당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쇄신으로 촉발된 갈등은 분당설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홍문종 의원은 “안 그래도 지리멸렬한데 대분열할 수 있는 단초를 자꾸 제공하면 당이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며 ‘분당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될 수 있으면 그것은 안 하는 것이 좋다”면서도 “(정치에서) 절대라는 말은 절대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느냐”고 여지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잔류파가 홍 전 대표 복귀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는 없다. 한 전직 당협위원장은 “분당이 되고 나면 모를까 지금 잔류파들은 자기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홍 전 대표가 눈에 보이겠나. 지금 관전포인트는 홍이 아니라 잔류파와 복당파의 대결이다”라며 “홍 전 대표가 이번에는 타이밍을 못 맞췄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몇몇 의원들이야 홍 전 대표 복귀를 반기겠지만 잔류파 대부분 의원들은 홍에게 관심이 없고 다만 복귀는 안 된다고 본다”며 “지방선거 참패로 당이 비대위 체제가 됐는데 이 상황을 만든 게 홍 전 대표다. 지금은 홍 전 대표가 뭘 하든 관심 없지만 당대표에 출마한다면 반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준표가 두려운 복당파의 속내

그렇다면 복당파 입장에서는 어떨까. 현재로서는 복당파 의원들도 잔류파 의원들과의 갈등이 첫 번째 과제다. 하지만 이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홍 전 대표 복귀의 타격을 받는 쪽은 잔류파가 아니라 복당파일 것으로 보인다. 복당파에 대해 홍 전 대표는 “내가 잔류파들의 반발도 감수하고 복당을 시켜줬다”는 명분이 있다.

복당파에 이렇다 할 인물이 없는 것도 홍 전 대표의 복귀를 꺼리는 이유다. 홍 전 대표가 물러난 이후 김성태 원내대표는 ‘대여투쟁’으로 자신의 존재감 부각에 힘썼다. 당내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임기를 끝내고 당대표에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김성태 당대표-김학용 원내대표 체제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김무성계로 분류된다.

하지만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판이 달라질 수 있다. 비홍 성향의 한 한국당 관계자는 “김성태가 아니라 김무성이 당대표에 나간다고 해도 홍 전 대표가 이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이유에 대해 한국당에서 탈당파 의원들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지만 홍 전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정치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힘이 실리게 마련이다. 지금이야 복당파에서 김무성 의원이 최고라고 해도 대선이라는 미래권력을 생각한다면 결국 김 의원은 이전처럼 홍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구도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지금 당내에서 숨죽이고 있는 중도파들도 홍 전 대표에게 줄을 설 것이다.”

따라서 홍 전 대표에게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언제 치고 나가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홍 전 대표 측 인사는 “솔직히 지금 김병준 비대위가 너무 실망스럽지 않느냐. 안에서 서로 총질이나 한다”며 “국민들은 여당에 맞서줄 강한 야당을 원한다. 홍 전 대표 전투력이면 언제 치고 나가도 보수우파에게 지지받는다”고 말했다.

비홍 성향 당 관계자도 “인지도도 인지도지만 지금 한국당에서 홍 전 대표가 ‘나랑 한판 붙을래?’라고 했을 때 맞설 깡이 있는 사람이 없다”며 “홍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내 기반이 별로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사람을 ‘뭉개버리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금이야 닥친 일에 바빠서 홍 전 대표에게 신경을 안 쓰겠지만, 곧 홍 전 대표가 당을 장악할지도 모른다. 두고 봐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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