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민주당으로 왔고 2016년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원이면 이미 당의 주류로 들어선 거다. 박용진 3법이 당론으로 밀어붙여지고 있다. 이 정도면 박용진의 생각이 민주당의 주류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겠나?”
“국회의원이 어떻게 비주류일 수 있죠?” 자신을 늘 따라다니는 ‘비주류’라는 단어에 대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역사는 비주류와 변방 그리고 평민의 역사다”라고 덧붙였다. 짧게는 2년, 통상적으로는 7년, 길게는 18년을 비주류로 지낸 ‘정치인 박용진’의 속내가 드러나는 말이었다.

지금 그는 가장 ‘핫한’ 국회의원이다. 사립유치원을 ‘건드린’ 이후다.
박 의원은 진보정당 출신이다. 민주노동당 창당멤버였고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에는 진보신당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랬던 그가 2011년 민주당에 입당한다. “선거를 치르면서 알았다.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한다고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말이 옳으니까 표를 달라고 했다. 그런 것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는 박 의원은 조금씩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금융실명법 문제제기 이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차명계좌를 이용하면서 내지 않았던 세금 1093억원이 나랏돈이 됐다. 그가 공개한 비리유치원은 500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분식회계 정황을 공개했다.
11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최근 인기를 증명하듯’ 인터뷰 중 박 의원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전화를 거절하던 그가 0001로 시작하는 번호를 보여주며 “이건 좀 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라며 양해를 구했다. 박 의원을 지지하는 시민이었다. 그는 “0001이길래 문재인 대통령인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는 한 시간 꽉 채워 진행됐다.
-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해 자유한국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박용진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김성태 원내대표는 말도 안 되는 선동을 하고 있고 한국당 의원들은 박용진을 고발하겠다고 한다. 한국당이 심하게 오판하고 있다. 큰 판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민주당을 대상으로 한 전략전술에만 빠져 있다.”
-2005년 사학법 개정 국면과 비슷해 보인다.
“사학법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은 유치원 운영의 투명성만 이야기한다. 국민 100%가 찬성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걸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정치적인 협상 대상으로 혹은 정치적인 지렛대로 삼아보려 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경원, 장제원, 홍문종 의원들 걱정 안 하셔도 된다’며 실명을 거론했다.
“사립재단에 관계되신 분들인데 이번에 개정하려고 하는 건 유치원 관련된 것만 손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다. 이후 장제원 의원이 전화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마치 사립유치원 주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며 자신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에 찬성이라고 했다.”(웃음)
-유치원들과는 여전히 갈등관계만 있나.
“전사련(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이라고 있다. 두 번째로 큰 단체다. 거기는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과 결이 다르다. 당 유치원공공성특위에서 전사련을 만났다. 전사련 측은 국가 회계관리 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이나 원아모집 시스템 ‘처음학교로’의 참여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유총 내에서도 기업형으로 유치원을 운영하는 사람들만 반대한다.”
한국당은 본격적으로 사립유치원을 엄호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학법 시즌2’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참여정부는 2005년 사학법 개정안을 4대 개혁입법 중 하나로 추진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박근혜 당시 대표 등은 53일간 장외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는 국민적 공분이 큰 데다 사립유치원들도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어 2005년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제 사립유치원의 ‘처음학교로’ 참여율은 지난해 2.7%(115곳)에서 올해 59.88%(2448곳)로 급증했다. 국·공립유치원의 참여율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한 곳을 제외한 99.97%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월 19일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주당으로 온 지 7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이제 ‘주류’가 된 건가.
“2011년 민주당으로 왔고 2016년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원이면 이미 당의 주류로 들어선 거다. 박용진 3법이 당론으로 밀어붙여지고 있다. 차명계좌 과세 때는 당에서 TF팀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박용진의 생각이 민주당의 주류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겠나? 누구와 친하고 그래야 주류가 되는 게 아니다. 저도 사람들과 밥 먹느라 바쁘다.(웃음) 당내 주류·비주류에 신경쓰지 않는다.”
-의원이 되기 전 ‘비주류’ 시절은 어땠나.
“뒤에서는 돌 날아오죠. 앞에서는 문 안 열어주죠.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당대표를 아홉 번이나 갈아가면서 대변인을 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걸까? 진보정당에서 왔으니까 기특해서 그런 걸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내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에서 자리를 못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변인이었지만 내밀한 이야기는 자기들끼리만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
“그냥 일만 했다. 일에 파묻혀 지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계파가 없다. 늘 신문 뒤적이고 기자들이랑 이야기하고 당 방어하고 그런 식이었다.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고 견뎠다.”
-주장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민주당으로 왔다고 했다. 민주당은 박용진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인가.
“민주당이 태생적으로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정당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의견과 주장이 합리적으로 경쟁하고 채택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불합리함도 있다. 불합리를 최소화하고 합리적·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애초에 토양이 있는 게 아니다. 여러 의원들과 함께 그런 토양을 만들려고 한다.”
-민주노동당 창당멤버다. 민주당으로의 이동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진보정당을 만들어 10년을 죽어라 일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사람이 ‘쿨’해진다. 우리도 영국 노동당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소선구제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열심히 안 해서 안 된 게 아니다. 너무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잘나서가 아니라 나보다 열심히 한 사람을 못봤다. 지역에서 사시사철 명함을 나눠주고 유인물을 뿌렸다. 뿌린 유인물이 몇만 장이다. 그랬는데도 안 됐다. 진보정당의 유지? 중요하다. 하지만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방향 중 왜 하필 정치였나’라는 질문에 박 의원은 “돌아보면 박용진은 상당히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인권을 외쳤던 ‘운동권’이었고, 대학교 3학년 때 민중대통령 후보 백기완 선거운동본부에 몸담았다. 노동운동이 운동권의 주류이던 시절에 박 의원의 관심을 끌었던 건 정당운동이었다.
1997년 권영길 후보와 대선을 함께 치르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박 의원은 “처음에 당 만들자고 모인 사람이 13명이었다. 노동운동 주류들은 안 왔고 그야말로 아웃사이더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권영길, 노회찬, 이재영, 김종철 등등이다. 계량주의라는 비판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몇 달 뒤 스물아홉 박용진은 국회의원(서울 강북을)에 도전한다.
작은 정당에서 지역구 출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진보정치의 상징 노회찬, 심상정 의원도 첫 지역구 출마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박 의원은 강북을에서 기호 5번 민주노동당, 기호 6번 진보신당으로 두 번 출마했다. 비례대표로 나가보라는 제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1년 민주당 입당 후에는 공천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2016년 강북을에서 ‘면허증’을 땄다. 그에게 국회의원은 ‘정치면허증’이다. 그는 “그 정치면허증이 내게는 간절히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국감스타’라 바쁠 것 같다.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이 더 바빠졌다. 사실 국감 이후 하루도 못쉬었다. 올해 3월부터 전국을 돌면서 재벌개혁 강연을 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사안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100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42번째 강연을 했다. 국회에 앉아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반향이 없는 것들이 있는데 고의분식회계 같은 복잡한 것들이 그렇다.”
-이제 상임위도 정무위에서 교육위로 바뀌었는데 굳이 재벌개혁 강연을 하는 이유는 뭔가.
“재벌개혁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것 같나? 그런데 한 시간 반 강연이 끝나면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라며 눈이 동그랗게 된다. 이렇게 만난 시민이 30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저 광 팔러 다니는 거 아니다. 박용진 도와줄 의병 모으는 거다. 어휴,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겠나. 찾아줄 때 잘해야지.”
<글·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