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정치 복귀발언에 관심 촉각… 전당대회 출마 땐 내홍 불가피
8월 초,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비홍(비홍준표)’ 인사 A씨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A씨는 김 위원장에게 홍 전 대표의 제명을 요구했다. 한국당 고위 당직자였던 A씨는 홍준표 전 대표 체제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홍 전 대표는 반드시 돌아온다. 주변에도 두 달 정도 쉬고 있으라고 말하고 떠난 걸로 안다. 돌아오기 전에 손발을 잘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 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A씨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홍 전 대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힘쓰겠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김 위원장이 홍준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A씨 말대로 홍 전 대표는 지난 9월 15일 귀국했다. 미국으로 떠난 지 66일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홍 전 대표는 정치 복귀를 암시하는 발언도 했다.
“김병준, 홍준표 몰라도 너무 몰라”
홍 전 대표의 귀국에 한국당은 애써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홍 전 대표에 대해 “평당원 중 한 분이고 솔직히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대표 때는 한마디 한마디가 파장을 일으키곤 했지만 지금은 밖에서 무슨 말을 해도 파장이 일어난다거나 격렬하게 반응하는 게 없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언과 달리 김 위원장이 보여주는 행보는 홍 전 대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홍 전 대표가 귀국한 다음날인 9월 16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대체할 담론으로 ‘국민성장론’을 제시했다. 한국당 비대위가 의도했든 아니든 국민성장론 발표는 대중의 관심이 홍 전 대표의 귀국에‘만’ 쏠리는 것을 막았다.
당협위원장 일괄사퇴안 역시 홍 체제 청산을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한국당 원외 당협위원장 일부는 홍 전 대표 체제 하에 진행된 당무감사를 통해 교체·충원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9월 20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특정 계파를 지목해서 그분들에 대해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는 ‘친홍’과 ‘친박’ 모두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홍 전 대표는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까. 당장 언급되는 건 전당대회 출마다. 홍 전 대표는 귀국날 전당대회 출마를 묻는 질문에 “지금 내가 할 일은 대한민국을 위해 하는 일이지, 당권을 잡으려고 새롭게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언론과 정치평론가는 사실상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현재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한다 해도 큰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국당 한 초선 의원은 “홍 전 대표 지지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여부를 떠나 지방선거 패배 이후 첫 전당대회인데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당대표가 다시 출마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당 대다수 의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해 피곤한 듯 눈을 만지고 있다./연합뉴스
홍 전 대표 측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홍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 비대위가 혁신, 쇄신을 이야기하는 분위기에서 우리가 전당대회 출마를 언급하는 건 섣부르다”며 “무엇보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없다. 일단은 가만히 계시는 게 당과 본인을 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 측근 “지금은 움직일 공간이 없다”
공간이 생기려면 트리거(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친박계 의원들이 홍 전 대표에 대해 제명을 요구한 것과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이후 결과가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김 위원장에게 홍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의 제명을 요구하고 있다. 유기준 의원은 공개적으로 “당의 엄정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명조치는 홍 전 대표의 운신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홍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한동안 정계를 떠나 있었고 지금도 조용히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무작정 제명을 이야기하면 그때는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제명에 대해 “친박들이 내가 겁이 나는 모양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관련 작업도 세심함이 요구된다. 특정 계파 솎아내기와 같은 결과로 보일 경우, 친홍 혹은 친박계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홍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비대위는 임시기구일 뿐인데 (김 위원장) 행보를 보면 대권주자나 당대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인적쇄신 결과를 보고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그러나 곧 홍 전 대표가 ‘소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 전 대표 체제의 대안으로 꾸려진 비대위가 친홍계를 청산하지 않고 인적쇄신을 말할 수 없다. 홍 쪽 사람들을 날리지 않으면 잔류파가 반발할 것이다. 명분을 위해 홍 쪽 사람들을 날리면 홍 전 대표가 돌아올 명분을 주는 거다. 홍이 돌아오면 비대위가 인적쇄신을 관철시킬 수 있겠나?”
한국당 초·재선 의원 14명은 9월 13일 스스로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놨다. 재창당 수준의 당의 개혁과 혁신을 위해 자신들부터 쇄신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중 한 의원은 홍 전 대표를 두고 “정치는 명분이다. 홍 전 대표가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과 달리 홍 전 대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홍준표가 돌아왔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