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식당 종업원·태영호 전 공사 등 쟁점화… 화해기류 변화
재중 북한식당(류경식당) 여종업원 문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국회 의원회관 출판기념회 등 탈북자 이슈로 남북의 화해 기류가 조금 변했다. 일부 탈북자 단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류경식당 종업원들을 북한으로 송환할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탈북자 단체 전체가 북송의 위협에 떨고 있다는 보수언론의 기사도 나왔다.

5월 14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민변 변호사들이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 수사 촉구를 위한 고발장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탈북자들 북송 위협에 떨고 있다” 소문
보수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해온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 시절 고무보트 타고 내려온 탈북자들을 돌려보냈다. 지금도 문 대통령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탈북자들을 낚시 미끼처럼 던져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거론한 사건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 2월에 있었던 북한 어부 가족 북송사건이다. 2008년 2월 8일, 북한 황해남도에서 출발한 어부 가족 등 22명이 탄 보트가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보수 탈북자 단체에서는 이 어부들이 탈북 의사가 있었음에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를 묵살하고 북송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점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당시 정부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접촉할 때부터 계속해서 북한 송환을 요구했다”며 이들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종업원들에 대한 기획탈북설에 이 원장은 “사지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외부의 도움 없이 어떻게 하나. 탈북자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때 국정원이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탈북자들이 죄다 기획탈북으로 온 거냐”라며 “종업원들 중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고통당할 걸 생각하면 힘들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던 비전향 장기수들도 떠들썩하게 북한에 가서는 장마당에서 장사나 하고 비참하게 살았다고 하지 않나”라며 류경식당 종업원 북송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자 단체 등에서 활동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탈북자들은 북송문제를 지나치게 쟁점화하는 데 불편함을 표했다.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인 최미란씨는 탈북자들의 최대 걱정은 “남한에서 차별받지 않고 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한국에 온 최씨는 입국 초기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남한에 온 지 2년 정도 됐을 때는 알아서 돈벌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힘들다란 생각은 했다. 그래도 북한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었다”며 “종업원들이 앞으로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못하는 건 가족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조용히 자기 삶을 사는 것도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어디 나와서 이야기할 여유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탈북자 단체 때문에 편견 심해져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을 추적해온 민변은 지난 4월 초부터 일부 종업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변 채희준 변호사 등 최근 류경식당 종업원을 접촉한 인사들에게 이들의 생활을 물었다. 허강일씨를 제외한 12명의 종업원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대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들이 평양 출신인 만큼 상대적으로 표준어 말투에 빨리 적응하고, 외래어에도 비교적 익숙한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몇몇 종업원들은 북한과 다른 남한의 교육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해 대학생활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부터 류경식당 종업원 문제를 파고들어온 채 변호사는 “민변이 종업원들을 북한으로 보내자고 주장한 바가 없다. 오히려 이 분들을 만날 때에도 ‘혹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 자체를 안하고 인권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금은 종업원들이 용기를 갖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우리는 이분들이 오게 된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우선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5월 17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종업원들이 자유의사로 한국에서 생활한다고만 말할 뿐, 기획탈북이 있었는지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아직까지는 안보인다”고 말했다.
최미란씨는 “남한에 살면서 차별을 한 번도 겪지 않은 탈북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의 평범한 일원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들이 있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그는 “김정은 정권이 핵실험을 하면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꾸 나한테 ‘북한에서 왜 저러냐’고 따지듯이 묻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태어난 게 북한일 뿐이지 내가 뭘 더 알 리가 없는데 왜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한편으로는 종편 방송에 나오거나 아니면 집회에서 강경보수 발언만 하는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대표인 것처럼 나오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상당히 많은 탈북자들이 남북정상회담을 반기고 북에 아직 살고 있는 가족들 친척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데, 탈북자들만 보면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조선족인 척 행세하는 이들도 꽤 있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닝보시의 류경식당 / 연합뉴스
탈북자인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북한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처럼 묘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권이 뭔지 생각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자유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밝혀지고 있듯이 류경식당 종업원들이 입국하는 데 정부가 역할을 한 것이라면 그분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해봐야 한다. 정말로 북한에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일정 절차를 거쳐서 보내주면 되는 것이고, 여기에 남고 싶다는 사람은 남게 하면 된다”며 “북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종편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북한이 엄청난 처벌을 내리고 그렇게는 안한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불편한 시각은 있겠지만, 북한이 마치 이유없이 사람을 마구 해치는 그런 나라처럼 묘사하는 것 자체가 탈북자들에겐 기분이 조금 언짢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남포시 출신인 송희순씨(가명)는 1990년대 후반에 단신으로 북한을 빠져나와 2007년에 한국으로 왔다. 송씨의 고향에는 아들과 오빠 등 가족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송씨는 탈북자라면 누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탈북자들이 들어온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런 저런 루트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나도 아들과 헤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도 전화를 통해 내 아들이 키가 얼마나 됐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하지만 남포에 사는 아들의 목소리라도 직접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탈북자들도 이산가족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북자들도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설득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씨는 류경식당 종업원 문제도 ‘이산가족’의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봤다. 송씨는 “그 사람들이 자의로 왔건 아니건 이왕 여기에 온 이상 다시 북한에 가려고는 안할 것이다. 5월 10일 방송을 봐도 당사자들이 제일 원하는 건 가족과 만나는 것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잘 설득해서, 우리가 이 친구들은 잘 보살필테니 다만 가족들끼리 명절 때만이라도 서로 얼굴 보고 소식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조용하게 북한하고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하는데 마치 정부에서 우리 탈북자들을 몽땅 북한으로 보내기라도 할 것처럼 크게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도 더 꼬이고, 탈북자를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도 더 차가워지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입국하려는 탈북자들은 더 힘들어져
대학생인 탈북자 김필주씨는 탈북자 문제가 공개적으로 쟁점화된 것 자체가 탈북자들에겐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봤다. 김씨는 과거 정부도, 민변도, 탈북자 단체도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을 공개적으로 여러 곳에 이야기하는 바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 중에는 다른 탈북자들의 입국을 돕는 활동을 하는 이들도 많다. 김씨가 속한 단체도 탈북자 구출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는 “류경식당 사건이 2년 전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 탈북 루트가 다 밝혀지고, 그들이 누구인지 언론에 사진까지 다 나왔다. 이로 인해 아직 입국하지 않은 사람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탈북자들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받았다. 아직 한국이라는 자유로운 땅에 발을 담그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류경식당 종업원처럼 될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 자기들도 신분이 다 노출되지 않겠냐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