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홍준표의 ‘가시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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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안갯속인 야당의 앞길… 잠재된 당내 갈등으로 리더십도 불안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벌어진 대리전이었을까.

국민의당에 안철수 대표체제가 출범한 첫날인 8월 28일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당선인사차 방문한 안 대표에게 정치개혁연대를 제안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만 18세 선거연령 인하’, ‘기초선거 공천제도 폐지’를 목표로 협력하자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번 정기국회 때 논의를 제대로 해 결실을 맺도록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안 대표체제’의 첫 성과이자 지난 대선 때부터 당 안팎으로 논의가 무성했던 두 당의 연대와 ‘중도 기반 정치세력의 확장’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대표를 통해 구체화된 순간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일주일여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을 거론하며 “바른정당이 돌아올 명분”을 마련했지만 바른정당은 독자적 길을 간다는 메시지로 보이는 듯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가 8월 29일 서울 여의도 당사를 방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가 8월 29일 서울 여의도 당사를 방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국민의당 야권재편에 적극적

8월 30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이 참여한 초당적 공부모임 ‘열린 토론 미래’가 공식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를 견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김성태·김학용·이군현·홍일표 의원 등 20명가량이, 바른정당에서는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세연 정책위의장,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하태경·정운천 최고위원 등 10명이, 지금은 무소속인 새누리당 전 대표 이정현 의원이 참여했다. 대선 기간 바른정당을 탈당했던 13명의 의원 다수가 한국당 의원의 자격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첫 세미나 주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었다. 모임에 참여한 정진석 의원(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은 소득주도성장론,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의 정책도 ‘포퓰리즘 정책’으로 거론했다. 두 정당이 원래 ‘한 뿌리’였다는 것을 상기하듯 빠르게 일사불란한 목소리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8월 31일 이혜훈 대표가 사업가로부터 사업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대표는 채무관계는 있었으나 차용증을 쓰고 갚았으며 “사업상 편의 대가 운운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당분간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대표는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 보수혁신을 주장하며 바른정당의 ‘자강론’을 모색하는 의원으로 분류된다.

야권 정개개편의 양상을 예고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개개편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바른정당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선택은 바른정당이 하지만, 판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마련했다. 홍 대표는 ‘보수재통합’을, 안 대표는 ‘중도정치세력’의 확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치열한 2위 싸움을 한 두 대표는 야권 재편을 앞두고 전혀 다른 비전을 제시하며 다시 맞붙게 됐다.

국민의당은 안 대표의 출마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지만 방향은 정리된 모양새가 됐다. ‘중도노선’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하고 당의 존재감을 확보하며, 이 과정에서 바른정당과 정책 및 선거연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의 출마 당시만 해도 합당론이 일었으나 안 대표는 TV토론에서 선을 그었다. 이언주 의원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를 거론했다. 하지만 당내에 안 대표를 위한 ‘꽃길’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안 대표는 51.09%라는 과반 턱걸이로 당선됐다. 지지세력도 주로 원외 당원인 것으로 분석된다. 당내 호남계 중진의원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천정배·정동영 의원은 선거과정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 및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전당대회에서 이 두 의원의 표를 합하면 45%에 달한다.

안 대표가 주장했던 모호한 ‘극중주의’는 30일 권은희 원내수석부대표의 정기국회 운영기조 발제문을 통해 그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분권형 정치개혁으로 다른 야당과 공조의 틀을 만들고, 민주당이 반대해 온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법을 입법과제에 포함시켜 경제문제에서는 우클릭했다. 생활밀착형 이슈로 안전과 화학물질 이슈에 집중하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 인사문제에서는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 갈등은 온전하게 수습되지 않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당내 최고위원이 SNS상 돌아다니는 안 전 대표를 겨냥한 비판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다닌다”며 당의 심란한 분위기를 전했다.

우왕좌왕하는 한국당의 복안은

한국당의 대선 패배 복기과정은 국민의당보다 더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야권 재편의 움직임은 소리 없는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7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대선 평가 토론회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다분히 울려퍼졌다. “종북좌파와 전교조·민주노총 이런 사람들이 세월호 사태 때부터 결속했고, 결국 이들이 함께 준비한 각본에 의해 당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료들이 혁신의 동력을 잃었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홍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메시지를 던졌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서 던진 메시지였다. 당내 친박계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도 않았지만 격렬하게 반발하지도 않았다. 보수재통합을 위한 포석이 깔렸다. 홍 대표는 이후 더 적극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8월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시·도당위원장 선출 이후 열린 시·도당위원장 회의에서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돌아오려는 당원들은 조건 없이 복당시켜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이념적 목표를 재정비하는 대신 세력의 재결집에 먼저 나서는 모양새지만 당 안팎에서는 유효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바른정당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 중에서 보수통합의 힘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평론가는 “여러 조건에서 자유한국당이 유리하다. 바른정당은 보수혁신을 내걸었지 단 한 번도 중도를 표방한 적이 없다. 국민의당에서도 당내 여론상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불가능한 일이 됐고 ‘정책연대’가 최고치인 수준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합당’까지 논의가 가능하다. 바른정당에서 의원 1명만 빼와도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점까지 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가 제시하는 ‘어렵고 좁은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홍 대표의 ‘쉬운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홍 대표의 ‘보수재통합’과 안 대표의 ‘다당제 구도’는 교착상태에서 공존할 전망이다. 유 평론가는 “하지만 바른정당 내에서도 한국당으로의 복귀에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국민의당의 호남계 의원들도 민주당과 갈등의 뿌리가 깊었던 만큼 이 두 당의 재통합 가능성도 희박하다”며 “지방선거 전까지는 이런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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