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의 인센티브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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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정부와 대립각 세워 존재감 드러내기… 청문회 거치며 “협치 깨졌다” 선언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가 자유한국당 정책위에서 수용되어도 김진태 법사위 간사가 소극적이어서 통과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자유(한국)당은 김진태 간사를 간사직에서 배제하여 법안 통과에 성의를 보여야 함에도 그러지 않지요. (중략) 이것이 국회의 현실입니다.”

지난 3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의 일부분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연정’을 제시해 당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경선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국회 법사위는 만장일치제를 택해 소위 경제민주화 입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박 의원은 “적의와 위선이 가득 찬 현실의 국회에서 연정론이 갖는 한계를 말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며 “차라리 협치가 가능한 국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연정은 경선과정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대연정의 취지는 협치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의회에서 보수정당의 협력을 얻고 보수 유권자의 마음도 헤아려야 정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치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 24%의 여론이 있고, 우리 당은 그 여론을 만족시켜줘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직후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전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51%가 되기 위해 중도를 지지하는 정당에서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 호소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다. 2012년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2017년에는 노조탄압·동성애 반대 등을 내세운 것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존폐 위기가 거론되다가 2위로 선거를 마무리했으니 성공적이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협치를 배반해야 당이 사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협치’는 탄생부터 장밋빛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여야가 모두 협치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정부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아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과연 협치는 불가능한 요구였을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들이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들이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선 야당이 불리

야당은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협치는 깨졌다”고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8일 국회 모두발언에서 “김상조·강경화·김이수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한국당으로서는 협치의 파국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세 후보자를 ‘부적격 3종세트’로 규정하고 반드시 낙마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양순필 수석부대변인은 6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갈량이 읍참마속(泣斬馬謖)한 심정으로 ‘읍참경화’를 결단하라”는 잔인한 비유를 들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비쳤다. 여당은 야당의원 설득하기 총력전에 나섰다. 야당의 목소리에 밀려 후보자를 철회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이옥선·이용수씨와 위안부 연구자 1185명, 여성단체 등 시민 2만명이 강 후보자 지지를 선언했다. 학계인사 498명과 프랜차이즈 가맹협의회도 김 후보자 지지선언을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현재 논란이 되는 김상조·강경화·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지지 목소리가 높다.

야당은 인사청문회를 ‘게임’으로 보고 있다. “3인방 중 최소 한 명은 낙마시켜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통과시켜주면 야당의 체면이 말이 되겠느냐”는 말이 여의도 정가에서 나온다. 한 야당 비례의원은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현 정부가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장의 지지율이 의석이나 현실적 권력구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의 검증절차는 ‘기싸움’의 무대이고, 정권 초반 여야 간 권력관계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이 믿음은 ‘오래된 관행’이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까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고위공직자 62명 중 9명이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불명예 낙마했다. 7명이 정부 출범 후 첫 ‘조각인사’였다. 인수위원장이었던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자녀의 병역면제와 부동산 투기로,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업체 자문 경력과 부동산 투기, 김명수 교육부 장관은 논문 표절 및 제자 논문 대필과 연구비 가로채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은 증여세 탈루와 특정업무 경비 유용이 문제가 됐다. 한민수 공정거래위원장은 해외 비자금 계좌와 탈루가 문제가 됐다. 업무와 밀접한 위법사실이나 중대결함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과 청문회 위증으로 낙마했다.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각각 고액 수임료와 역사인식이 문제가 돼 낙마했다.

협치의 인센티브는 가능한가?

현 구도로 지방선거 땐 야당 궤멸 가능성

‘낙마를 위한 낙마’였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미국 국적과 CIA 자문 이력이 문제가 됐다. 이 사실이 낙마 사유로 적합한지는 문제가 됐다. 창업 및 연구개발(R&D) 진흥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이중국적이 문제로 거론된다거나 CIA 자문 이력을 두고 잠재적 ‘스파이’ 취급을 한다는 것은 폐쇄적 태도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선을 ‘인사참사’로 규정하며 임기 초반 많은 인사들을 낙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인사문제만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현재의 야당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거버넌스’(governance)란 말이 ‘협치’로 번역되면서 의미에 오해가 생겼다. 원래 국가, 정부 등 통치기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등 통치 대상과 협의하라는 뜻이 담긴 말인데 ‘협치’로 번역되면서 여야 간 협의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내용을 담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치의 본질은 갈등이고 야당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인사를 인정하고 이후의 정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부 수립 자체를 지연시키는 것에 대해 생산적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는 2005년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도입됐다. 장기적으로 보면 양당제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을 나눠 갖도록 한 제도들이 성과를 냈지만 때때로 파당적 입장에 따라 공회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야당 역시 비생산적 게임의 승자라 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인사논란이 일면서 처음으로 소폭 꺾였다. 지난 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마지막 주 문 대통령 지지율은 78.1%로 취임 후 처음으로 하락했다. 이 기관의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전주 지지율은 84%였다. 9일 한국갤럽의 정기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2%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2% 하락했다. 야당의 공세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라는 면에서 미세하게나마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국정운영 동력에 변화를 주기에는 미미한 변화다. 역대 최대치인 84%의 지지율은 탄핵 찬성 여론을 웃도는 수치였다.

무엇보다 야4당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48%로 압도적인 반면, 특히 인사청문회에서 날을 세운 야3당의 지지율 합계는 25%로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자유한국당 10%, 국민의당 8%, 바른정당 7%, 정의당 7%다.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전주보다 2%포인트 상승했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1%포인트씩 하락했다. ‘의견 없음’은 16%에서 21%로 늘었다. 한국당의 지지층에서만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38%)는 응답이 잘하지 못하고 있다(42%)는 응답보다 적다. 인사청문회에서 각 정당의 선택이 지지층의 선택과도 괴리된다. 국민의당 지지층의 77%, 바른정당 지지층의 80%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당만 ‘강공’을 통해 이익을 보는 구조이지만 그나마 대선 때의 24%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www.nec.go.kr’에서 확인할 수 있음) 야당의 인사 검증 내용에 야당 지지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없다는 여론을 반영한다.

야당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더 노출했다. 한국당의 경우 그나마 일사불란함을 유지하고 있다. 집권여당이던 시절보다 더 엄혹한 도덕적 잣대에 의존한 검증이 공감을 못 사고 있을 뿐이다. 다른 정당들은 의견 통일이 안된 모양새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7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조기 안정화돼야 한다. 지금 성인군자를 뽑듯 청문회를 하다가는 국정혼란만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받는 것”이라면서 김상조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통과를 주장했다. 바른정당은 당 차원에서 부적격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읍참경화’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박지원 전 대표는 “국민의당은 국민이 바라는 시대정신에 따라 ‘국민의 2중대’가 돼야 한다”며 김상조 후보자, 강경화 후보자,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 찬성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김성식 의원도 트위터에서 “김상조 후보는 공정거래위원장 직무를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선동, 정태옥, 김한표, 김성원 의원(왼쪽부터)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임명 배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선동, 정태옥, 김한표, 김성원 의원(왼쪽부터)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임명 배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거제도 관련 국정 협력 인센티브 생겨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익숙한 관행에 당 차원에서 몸을 싣지만 개별 의원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 자릿수 지지율’을 돌파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정당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석주 성균관대 교수는 “정상적인 선거였다면 인수위원회가 열리고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야당도 대선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자기정비를 하고 통일된 내부 전략을 내놓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도 급하게 꾸렸지만 야당도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통일되고 합의된 전략이 없으니 당 전체는 관행에 기대고 의원들은 방황하는 것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도 “당의 존폐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경우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지지율을 올리는 방법도 분명 있는데 대선 이후 그럴 전략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야당의원도 “인선만 가지고 연말까지 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미래는 밝지 않다. 현재의 구도대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소선거구제 하에서 야당은 ‘궤멸’이다. 대구·경북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고른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선에서는 1~2%의 표도 지지에 보탬이 되지만 승자 독식의 소선구제에서는 현 야당들이 불리하다. 다당제 구도 하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려면 다양한 이슈가 나타나야 하는데 ‘찬성’ 혹은 ‘반대’만 있는 인사문제에서 4개 정당이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충돌한 이슈는 일자리였고, 정의당은 성소수자 문제, 바른정당은 일자리와 조세문제에서 존재감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현 정국이 길어질수록 야당들에는 손해인 셈이다. 조 교수는 “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빨리 시작하고 야당들을 논의 테이블에 앉히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야당들 역시 선거제도를 매개로 국정에 협력해야 할 인센티브가 생겨나고, 사안별로 모든 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해도 1~2개 정당의 동의는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갈등의 전선이 뜻하지 않은 협치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야당에도 그것이 유리하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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