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정당지지도에서 자유한국당과 경합 중… 수도권·TK 상승세
지난 대선에서 보수는 노마드(Nomad·유목민)였다. 보수는 문재인 대통령 대항마를 찾아 방황했다. 보수는 2월 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한국당) 대선후보 등으로 끊임없이 이동했다.
노마드가 된 보수의 심장에는 대구·경북(TK)이 있었다. 3월 말부터 문 대통령 대항마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안 전 후보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4월 초 50% 선까지 치솟았다. 안 전 후보의 지지율은 4월 중순 전후로 TV토론을 거치면서 불과 보름새에 반 토막 났다. 대구·경북에서도 홍 전 후보에게 큰 폭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5월 2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TV토론에 대한 대구·경북 긍정 평가는 홍 후보가 21.6%인 데 비해 안 후보는 3.3%에 그쳤다. 노마드 보수를 주도한 대구·경북은 TV토론 이후 문 대통령 대항마를 안 전 후보에서 홍 전 후보로 바꿨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지지율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유 전 후보의 대구·경북 TV토론 긍정평가는 22.2%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5월 28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입 당원과의 만남’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신자 프레임 변화의 사전지표
5·9 대선에서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대구 득표율은 12.60%, 경북은 8.75%이다. 유 전 후보의 전국 득표율이 6.76%임을 고려하면 대구·경북은 상당한 지지를 보낸 셈이다. 유 전 후보의 높은 TV토론 긍정평가도 ‘미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조짐으로 볼 수 있다.
대선 이후 보수정당 가운데 바른정당은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6월 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은 7%를 획득하여 한국당의 10%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전인 6월 2일 여론조사에서도 바른정당은 8%를 얻어 한국당과 동률을 기록했다. 5월 26일 여론조사에서도 바른정당은 6%로 한국당(8%)과 오차범위 내 경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른정당의 선전은 지난 대선에서 노마드 보수를 이끌었던 대구·경북의 높은 지지 때문이다. 6월 2일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22%를 획득하여 한국당의 18%를 앞섰다. 5월 26일 여론조사에서는 바른정당이 12%를 얻어 한국당의 16%에 뒤졌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다만 6월 9일 여론조사에서는 바른정당 10%, 한국당 20%로 격차가 다소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대구·경북은 100명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들 여론조사만으로 정확한 정당 지지도를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여론조사 추세로 볼 때 대구·경북에서 바른정당의 상승세는 도드라져 보인다.
바른정당은 수도권에서 한국당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 6월 9일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은 서울, 인천·경기에서 각각 7%를 얻어 한국당의 9%, 8%와 엇비슷했다. 6월 2일 여론조사에서는 바른정당이 서울에서 8%를 얻어 한국당(4%)보다 두 배였다. 5월 26일 여론조사에서도 바른정당의 수도권 지지율은 한국당과 거의 같았다.
연령별로는 바른정당은 60세 이상에서 한국당에 밀렸을 뿐 40대까지는 큰 폭으로 앞섰다. 50대의 경우에는 바른정당과 한국당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선 이후 한 달 남짓. 지금까지 여론조사만으로 바른정당이 상승세라고 확신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대선과정에서 대구·경북이 유 후보의 TV토론을 긍정평가한 것과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 대선 이후 바른정당의 상승세는 배신자 프레임 변화의 사전지표처럼 보인다.

비전 제시와 보수혁신에 달려 있어
바른정당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른정당의 상승세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보수혁신과 원칙 고수라는 ‘정치적 자산’을 축적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국민의당 또는 한국당과의 연대 논란과 함께 선거 막판 일부 의원들의 탈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이 과정에서 20·30대의 지지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이를테면 바른정당은 아름답게 패배한 것이다. 득표율에서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후보보다 앞선 것도 고무적이다. 이때 쌓은 정치적 자산이 ‘포스트 대선’에서 보수 경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한국당의 반사이익도 바른정당 상승세의 원인이다. 대선과정에서 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는 강경노선으로 보수 결집에 주력했다. 강경보수 노선은 중도의 외면을 불러 스스로 확장성을 차단했다. 지도부 선출을 놓고 당내 갈등도 커지고 있다. 오는 7월 3일 치러지는 전당대회도 당권 장악을 위한 비(非)박과 친(親)박의 볼썽사나운 대결로 치달을 태세다.
바른정당의 상승세가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축적한 정치적 자산으로 한국당을 앞지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간신히 원내교섭단체를 유지하고 있어 원심력에도 취약하다. 새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청문회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칫 존재감이 실종될 수도 있다.
바른정당은 전당대회 이후 한국당의 행보에 따라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새로운 지도부가 일부 친박의 청산과 보수개혁 드라이브에 나설 경우 보수 경쟁은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 수 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보수통합 압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다. 향후 바른정당의 상승세는 지속적인 보수혁신을 통한 비전 제시와 실천, 국민 지지에 바탕을 둔 보수통합 리더십에 달려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