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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알박기’ 분란의 불 지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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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원 임명 강행으로 운영 파행… 정권 바뀌면 자격 논란 불가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 6일 김용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방통위를 둘러싼 정치권 내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간 야당과 시민단체, 공무원노조 등은 곧 새 정부가 출범하는 점과 김 위원의 경력 등을 문제삼아 임명 철회를 요구해 왔지만 황 권한대행은 “행정공백이 우려된다”며 인사발령을 단행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방송 장악을 노린 보수세력의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내부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상임위원 임명 문제를 놓고 여야 대립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방통위의 파행운영이 한동안 불가피할 전망이다.

탄핵 시기와 상임위원 임기 만료 맞물려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체 기구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 등 2명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고, 3명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 몫 중 1명은 대통령이 소속된 교섭단체(여당)가, 2명은 그 이외 교섭단체가 추천토록 규정돼 있다.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다.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첫 번째)이 지난해 6월 열린 제32차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첫 번째)이 지난해 6월 열린 제32차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통위는 여론을 조성하는 방송 및 통신·인터넷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규제기관이다. 사안에 따라선 영업정지나 허가 취소 등의 처벌을 할 수 있어 그 자체로 막강한 규제권한을 가지고 있고, 규제방향에 따라 여론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매번 위원장이나 상임위원 임명 문제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황 권한대행의 알박기 인사 논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기와 맞물려 올 들어 상임위원들의 임기가 줄줄이 만료되면서 불거졌다. 3월 26일자로 김석진 위원(여당 추천), 김재홍 전 위원(야당 추천), 이기주 전 위원(대통령 추천) 등 3인의 임기가 만료됐다. 최성준 위원장(대통령 추천)도 지난 7일로 임기가 끝났다. 고삼석 위원(야당 추천)의 경우도 오는 6월 8일이면 임기가 만료된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법에 따라 새 위원장과 위원들을 임명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탄핵으로 5월에 새 정권이 출범하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위치가 뒤바뀌게 될 경우 정당에 따라선 현재 쥐고 있는 상임위원 임명권이 없어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발빠르게 움직여 김석진 위원의 연임을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김재홍 전 위원의 후임을 결정하지 못했고, 대통령 몫인 방통위원장 자리와 이기주 전 위원이 빠진 상임위원 자리가 관건으로 남았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임기가 불과 한 달 남은 황 권한대행이 향후 3년 임기를 보장받는 주요 고위공직자를 임명해선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황 권한대행은 상임위원 1인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했다. 방통위원장의 경우 대통령이 지명하더라도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황 권한대행이 지명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황 권한대행의 임명권 행사에 반발이 있던 터에 김용수 위원의 임명은 논란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김 위원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보방송통신비서관으로 재직한 점 등을 들어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적절치 않다며 성토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김 위원은 박근혜 정권 정보방송통신비서관 출신으로 언론통제에 부역했던 인물이자 통신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온 ‘정통부 마피아’ 출신 인사”라며 “박근혜 게이트에 편승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표적인 부역자를 임명한 것은 차기 정권에서도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전형적인 알박기 인사”라고 밝혔다. 방통위 공무원노조 역시 “김 위원은 과거 청와대 비서관 재직 당시 방통위 해체를 시도했던 인물”이라며 임명에 반발 중이다.

황 권한대행은 방통위의 행정공백을 우려해 상임위원 임명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의 정책 결정이 효력을 가지려면 안건별로 상임위원(위원장 포함) 3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김용수 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공석을 제외한 방통위의 상임위원은 김석진 위원, 고삼석 위원 등 2명뿐이어서 주요 안건 처리가 불가능해지는 등 문제가 생긴다는 게 황 권한대행의 말이다.

황 권한대행의 설명과는 달리 김용수 위원의 임명이 오히려 행정공백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고삼석 위원은 “황 권한대행이 강행한 방통위원 인사는 탄핵과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오기 인사”라며 “안건을 처리하는 방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 위원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의결에 참여하는 상임위원은 김석진 위원, 김용수 위원 등 2명뿐이어서 의결에 필요한 3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된다.

[이슈]방통위 ‘알박기’ 분란의 불 지피다

야당몫 추천 놓고도 정당간 분쟁 가능성

고 위원은 “대선 등을 고려해 중요한 안건은 이미 처리를 해둔 상태라 6월 중순까지는 큰 행정공백이 없을 것”이라며 “방통위의 일상적 업무는 사무처를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수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 출신인 김용수 위원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미래부가 신설된 이래 방통위와 미래부는 책임과 권한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어 왔다. 양 부처 간 일부 방송·통신 인·허가나 규제업무가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관련 업계 등의 입장을 고려할 때 양측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2015년 발생한 700MHz(메가헤르츠) 주파수 분배 논란이다. 당시 ‘황금주파수’로 불린 700메가 주파수를 놓고 미래부는 통신업계에 모두 분배하는 것을, 방통위는 지상파 업계에 일부 분배하는 것을 놓고 갈등을 보이다가 결국은 지상파에 일부 주파수를 주는 쪽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 문제를 놓고 한동안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이 바뀔 경우 김용수 위원을 추천한 ‘주체’가 누가 되는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대통령 지명 몫으로 유지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정권교체 시 김용수 위원은 야당 추천 몫으로 바뀐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 지명 몫으로 유지될 경우 새 정부와 갈등이 불가피하다. 김용수 위원 자리는 본래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신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과 한 달 전 구정권의 권한대행이 임명한 김 위원이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직 방통위 상임위원은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된 이계철 전 방통위원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위원장직을 사퇴한 바 있다”며 “김용수 위원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법률상 상임위원은 질병이 있거나 직무 관련 비위 등 특정한 이유가 없는 한 3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원칙적으로는 신임 대통령이 왔다고 해서 이전 대통령(권한대행)이 임명한 위원이 물러날 이유는 없는 셈이다.

김 위원이 야당 추천 몫으로 바뀔 경우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야당 추천 몫인 2명의 상임위원 자리가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다 채워진 셈이 된다. 과거와는 달리 상임위원 추천 자격을 갖는 교섭단체가 4곳으로 많은 까닭에 이를 놓고 정당 간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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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