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대선후보 홍 지사 상대론 역부족… 골수 강경파 빼고는 각자 살길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정치’가 앞으로 위력을 발휘할까. 자택 정치는 탄기국(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을 비롯한 박 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층과 대구·경북(TK) 지역을 절대적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택 정치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부터 제기된 ‘TK자민련론’에서부터 예측돼 왔다. 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TK를 기반으로 정치세력을 구축한다는 것이 TK자민련론의 주요 내용이었다.
퇴임이 아니라 탄핵으로 인한 파면이지만, 자택 정치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TK지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다. 탄핵 직후 TK에서만 실시된 여론조사(매일신문·TBC·폴스미스리서치 조사)는 내내 화제가 됐다. 이 조사에서 ‘탄핵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잘 된 결정’이라는 응답은 44.5%에 불과했다. ‘동의하지 않고 승복하기도 어렵다’는 응답은 32.8%였고, ‘동의하지는 않지만 승복한다’고 답한 응답은 18.6%였다. 승복 여부에 관계없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1.4%로 절반을 넘었다.
이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도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2.5%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15.4%를 압도했다. 전국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판이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TK 의원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역민심이기도 하다. 한 TK 의원은 “황 권한대행의 대선 불출마가 너무 아쉽다”면서 “황 권한대행이 출마했더라면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내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해 황 권한대행의 출마를 권유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된 후 사흘째인 3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가기 전 박사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상현·조원진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 김기남 기자
홍 지사의 식사 요청 거절한 경북 의원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이 3월 15일 출마를 접은 후 삼성동 자택 정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유력한 친박 후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친박 후보로는 김진태 의원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양김(김 지사와 김 의원) 후보는 부지런히 여의도 의원회관을 돌아다니고 있다. 김 의원은 대선 출마의 의지가 담긴 친전 형태의 글을 들고 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황 권한대행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대세로 부각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대적하기에는 친박 후보가 역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친박은 좌표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로 뭉쳐도 이길 수가 없는데, 두 후보가 나섰기 때문이다. 친박의 한 관계자는 “김황식 전 총리를 설득했지만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TK 의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TK의 한 의원은 “김 의원은 친박 의원들 간에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다”면서 “TK지역에서는 경북도지사가 출마한 만큼 김 지사를 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의도 TK 의원들 사이에는 홍 지사와 경북 의원 간의 저녁식사 약속이 화제가 됐다. 비박의 홍 지사가 경북 의원들에게 식사를 요청했지만 경북 의원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김관용 지사의 출마로 지지를 표명해야 하는 마당에 홍 지사와의 식사 자리가 ‘친박’에서 ‘친홍’으로 전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기 때문이다. 같은 TK이지만 대구 의원들과 경북 의원들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대구 의원들 일부는 이미 홍 지사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하지만 경북 의원들은 김 지사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그래도 여전히 친박의 범주 안에 묶여 있다. 한 의원은 “대구 의원들이 홍 캠프를 가더라도 자신의 이름만 올리는 것이지 지역 민심 때문에 지역에서 홍 지사의 지원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친박은 여러 갈래로 나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택 정치 라인업에 들어간 서청원·최경환·윤상현·조원진·이우현·김진태·박대출·민경욱 의원이 강성 친박으로 분류된다. 김진태·윤상현 의원은 탄핵 판결 이전에 탄핵 기각 탄원서 서명을 주도하는 등 자택 정치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강온의 온도차가 감지된다. 최경환 의원은 자택 정치 논란에 대해 페이스북에 “‘자택 복귀를 계기로 정치세력화에 나서려고 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이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 의원은 “자택으로 처음 돌아오는 날에 인사 정도는 하러 가는 게 인간적 도리이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친박의 한 의원 측은 “몇몇 강경파 의원들은 이미 골수 친박으로 낙인 찍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자택 정치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집]박근혜 자택 정치 ‘홍준표 앞에 등불’](https://img.khan.co.kr/newsmaker/1219/20170328_31.jpg)
골수 친박 이외엔 헌재 판결에 승복
이에 대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사법처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자택 정치가 앞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자택 정치는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때 50명 이상에 달했던 친박계 의원들 중 대다수는 자택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한 의원은 “지금 상태로는 친박이라고 모아봤자 25명을 넘기기도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친박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정치에 대해 “자기만을 위한 정치”라고 낮게 평가했다. 자택 정치 때문에 보수 전체는 물론 당의 앞날까지 어두워지고, 친박의 입지도 좁아졌다고 봤다. 이 관계자는 자택 정치에 관여하는 골수 친박과 일반 친박의 경계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느냐, 인정하느냐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골수 친박은 헌재 판결에 승복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친박들은 헌재 판결을 승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의 일부는 홍 지사 대세론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TK지역의 한 의원 측은 “황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친박은 극소수 강경파 의원들을 빼고는 미아가 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각자 자신이 앞으로 갈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지사가 일단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정치는 1차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홍 지사가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 특단의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조치에는 친박 강경파의 출당이라는 수까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에서는 이와 반대로 홍 지사가 대선국면을 앞두고 친박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보수 후보의 단일화를 눈앞에 두고 골수 친박의 출당과 같은 논란이 불거지면 상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봉합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측했다.
현역 의원들은 대선 후를 주목하고 있다. 탄핵 후 조기 대선국면에서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대선보다 오히려 대선 후 보수진영의 주도권을 누가 갖고 갈 것이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대선 후에도 홍 지사가 보수의 중심이 되면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정치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 후 친박과 자택 정치의 운명은 대선 결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 평론가는 “홍 지사가 의미 있는 선전을 하면 보수의 중심이 될 수 있지만, 만약 아무 의미도 없이 참패를 한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른 리더십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