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치러지는 시기 따라 유불리 판단…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빠른 대선’ 선호
차기 대권을 노리는 주자들의 발걸음이 급해지고 있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내년 3월이든 8월이든 조기 대선을 치를 것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결의를 인용할지 기각할지의 결과가 남아 있지만,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 시기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오면 그때부터 60일 이내에 다음 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더 이른 대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정당과 주자, 최대한 늦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정당과 주자들의 입장이 달라 대선 시기를 결정하는 헌재의 판단은 향후에도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를 노리는 잠룡들에게는 대선 시기 못지 않게 향후 변수가 될 요인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탄핵에 찬성한 새누리당 의원의 수가 반대나 기권표를 던진 의원 수와 비등하게 나옴에 따라 새누리당 내부의 후폭풍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분당으로 치닫고 제3지대가 여야의 일부 세력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되면 현재까지의 경쟁구도도 변하게 된다. 이 경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높다. 게다가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거론되기만 했을 뿐 논의가 본 궤도에 오르지는 못했던 개헌론까지 부상하면 각기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른 주자들의 합종연횡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 대선주자들이 11월 20일 비상시국 정치회의를 열어 정국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반기문 총장 행보도 향후 중요한 변수
각 대선주자 진영에서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과 함께 본격적인 조기 대선 경쟁체제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캠프 인력을 충원하고 선거운동 전략과 공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각 정당에서도 후보 경선 규칙과 일정을 미리 결정해야 한다. 헌재 결정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발빠르게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뒤 당내 경선을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22일이기 때문에 대략 선거일 한 달 전까지는 각 정당에서도 경선을 거쳐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만일 헌재의 결정이 내년 1월 말에 나와 선거가 3월 말로 예정되면 당장 2월 말까지는 각 정당이 후보를 정해야 한다. 이 경우 일정이 빠듯해 기존의 전국 순회경선 등을 통해 세몰이를 하는 등의 과정은 생략될 수도 있다.
헌재가 180일을 다 채우고 결론을 낼 가능성도 있다. 내년 6월 초에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8월 초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 이 경우도 60일 안에 대선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은 촉박하지만 탄핵발 정계개편 등의 소용돌이는 한 차례 거친 시점이고, 상대적으로 준비기간이 주어진 셈이기 때문에 쫓기듯 경선을 치르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헌재 심리가 180일을 모두 채울지는 미지수인 데다, 박한철 헌재소장의 임기 만료가 내년 1월 말인 점, 국회의 탄핵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점 때문에 헌재 심리기간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받는다.
결국 대선 일정을 확실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로 탄핵이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선주자들은 물밑에서 대선에 대비하는 준비를 점차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간 야권 대선주자들은 촛불로 나타난 민심을 쫓아 박 대통령 퇴진운동 현장 등에 얼굴을 비치며 자신을 알려 왔다. 이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만큼 야권 대선주자들의 행보는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민심 탐방 행보 등을 통해 폭넓게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현장에서 청취한 민심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캠프에서 대선공약과 득표전략을 짜는 데 주력하는 방식이다. 반면 여권 주자들은 새누리당을 정비할 것인지 분당 또는 탈당할 것인지 등 당면한 과제를 처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대선이 치러질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유·불리를 두고 대선주자들마다 정치적 셈법이 분주하다. 차기 대선이 이르면 이를수록 대권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시기에 대해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르면 되고, 필요하면 국민의 공론에 맡기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시점에 크게 개의치 않고 헌재가 결정하는 탄핵 시기에 따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며 탄핵 후 박 대통령이 즉각 사임할 것을 요구해온 데서도 최대한 빨리 대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에 입국하기 때문에 대선 시기가 빠를수록 준비기간이 짧은 반 사무총장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안희정 박원순 등 대선 시기 확답 유보
촛불정국을 거치며 문 전 대표와 반 사무총장을 위협할 정도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힌 이재명 성남시장도 대선이 이르게 치러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을 향해 선명하게 각을 세우며 주목을 받은 이 시장은 “탄핵은 퇴진을 강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며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퇴진하는 것이 국민의 소망”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대선을 준비할 시간 여유는 부족한 편이지만, 지금까지 탄핵정국에서 빠른 속도로 높인 지명도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대선 시기가 너무 지체되는 것도 불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역시 대선이 너무 늦어지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적어도 6월까지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앞장서고 있는 ‘제3지대 세력화’는 아직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안 전 대표가 주도해 제3지대의 확고한 대선후보로 자리를 굳히려면 시간이 너무 지체돼도 곤란하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이야 탄핵이 가결돼서 여론의 불만이 적지만 이제 앞으로 정치권에서 후보 단일화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논의가 질질 끌게 되면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제3지대가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으로 논의를 마칠 수 있는 6월 전까지가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른 대선을 유리하게 생각하는 주자들과 달리 안희정 충남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현직 광역자치단체장들은 대체로 대선 시기에 대해서는 확답을 유보하고 있다. 현직 지자체장은 대선 1개월 전까지만 대선 출마를 위해 현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히면 되기 때문에 대선 시기가 언제인지보다는 상대적으로 당내 경선룰의 향방이나 주변 주자들과의 관계에 더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박 시장과 가까운 정치권 관계자는 “현직 공직자이기 때문에 조직을 운영하는 등의 선거 준비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한편으로는 (대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면 현직을 유지하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야권에 비해 대선이 일찍 실시될수록 내홍을 수습하고 후보를 세울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여권에서는 적어도 6월 이후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상태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탄핵 가결 전부터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세운 ‘6월 대선’에 중점을 뒀다. 오 전 시장은 야권의 ‘3월 대선론’에 대해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대선후보 검증절차를 뛰어넘겠다는 의도”라며 “경선 일정 등을 모두 감안했을 때 6월 말 대선이 절충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과 김 전 지사도 3월 대선은 현재 유력주자인 문 전 대표에게만 유리하다며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11월 20일 새누리당 비주류가 중심이 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정치인들이 정국 수습책을 논의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한편 현재는 소속정당이 없이 제3지대론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을 치르기 전에 개헌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핵과 별개로, 개헌으로 현재 문제가 있는 권력구조를 개편한 뒤 대선을 치러야 한국 정치의 근본적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손 전 대표 외에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등도 개헌을 우선순위에 놓는 인사들이다. 대체로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 쪽과 거리를 두는 세력, 여권에서는 친박계를 배제하면서 제3지대 참여에 우호적인 세력이 개헌론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의 폐단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4년 중임제 등 각 정치세력마다 서로 다른 방안을 내놓고 있어 개헌론 내부에서도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개헌론에 대해 “대선후보들이 공약에 개헌안을 담으면 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이고, 민주당 주류도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어서 의원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개헌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무성 김종인 정의화 등 “개헌이 우선”
결국 개헌론은 꾸준히 제기되지만 대권 경쟁 판을 뒤흔들 변수가 되기 힘든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향후 지지도 추이라고 볼 수 있다. 내세울 만한 대선주자가 없는 새누리당 친박계는 그동안 반 사무총장의 복귀 등을 감안해 최대한 대선을 늦출 태세를 지켜 왔다. 하지만 반 사무총장이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친박계와 거리를 둔 모습과 탄핵으로 ‘폐족’ 신세를 앞둔 친박계의 처지를 생각하면 친박계와 손을 잡고 대선주자로 나설 가능성은 낮아졌다.
반 사무총장이 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만큼 그의 행보는 제3지대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를 비롯해 보수정치인들이 모여들고, 여기에 제3지대론을 펼쳐온 정치세력들이 같은 간판으로 뭉치면 차기 대선은 다자구도로 재편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반 사무총장의 귀국 이후 여야 정계개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지지율이 얼마나 올라갈지가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9일 한국갤럽이 6~8일 전국의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결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반 사무총장은 1위를 지켰지만 지난달보다 1%포인트 하락한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전달보다 1%포인트 오른 20%의 지지율로 반 사무총장과 공동 1위에 올랐다. 두 유력주자가 지지율 추이에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이재명 시장은 전달보다 10%포인트 오른 18%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공동 1위를 오차범위 내에서 바싹 추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퇴진 여론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정치인으로서의 개성을 드러낸 이 시장이 반박근혜 지지여론을 흡수한 셈이다.
탄핵·퇴진 여론이 고조된 여파가 현재까지는 반 사무총장에게 유리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은 3자대결을 가정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문재인·반기문·안철수 3자구도로 다음 대선이 실시될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에서는 문재인 36%, 반기문 31%, 안철수 17%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현재는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은 보수성향 유권자층의 표가 어디로 향할지가 관건이다. 반 사무총장이 제3지대를 택할 경우 그 안에서 경쟁하게 될 안철수 전 대표 역시 보수성향 유권자의 표를 흡수하는 전략을 모색 중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한 의원은 “(새누리당) 비주류 쪽의 주자들도 현재 지지율은 낮지만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욕심은 적지 않은 인물들인데, 이들이 독자 후보로 나서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또 그만큼 표가 흩어질 테니 사활을 걸고 보수 단일화를 성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화’라는 과제는 야권 주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숙제다. 탄핵정국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공조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야권으로 넘어온 국정 주도권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신경전이 격화될 수 있다. 대선 경쟁에서는 야당끼리의 공조보다 각 정당마다 차별성을 내세우는 대결이 더 잦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선주자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당내 주도권 역시 유력 대선주자들 간의 경쟁구도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민의당에 비해 후보군이 많은 민주당은 경선을 앞두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도 경선 흥행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양보를 감수하겠지만, 결선투표제 문제처럼 각 후보마다 날카롭게 입장이 다른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불협화음 없이 경선을 관리하는 것이 당면할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