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혀를 찼다. 어떤 보장도 받은 게 없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앞으로 어떤 폭풍우가 몰아칠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늘이 으르렁대고, 물결이 넘실대는 저 바닷속으로 그가 걸어들어갔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처럼, 운명인 것처럼.
“저는 국회의원으로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등 소수의 문제지만 공익을 위해 지난 2년 7개월 동안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로부터 쌍용차공장이 있는 경기 평택의 지역정치인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역정치를 하면 공익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지역정치와 공익활동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지역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비례대표)이 오는 4월 29일에 치러지는 경기 성남 중원의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 지역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라 김미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지역이다.
지난해 11월 지역위원장 경선에서 패배
비례대표 의원이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놓고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던져버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그에게 새정치연합 후보 자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가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당내 경선과 새누리당 후보와의 본선 등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하지만 은 의원의 표정에서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가 겪은 고난에 비하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골수 운동권’(PD계열)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그는 당시 백태웅씨와 함께 서울대 학생회를 이끌었다. 1983년 시위를 하다 제적된 뒤 노동현장으로 가서 위장취업했다. 서울 구로공단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 보조사로 일하면서 노조를 조직하려다 적발됐다. 그는 끝까지 위장취업에 대한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6개월간 감방생활을 해야만 했다.
“위장취업한 학생들은 금방 표시가 납니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마디가 두툼하면 위장취업 가능성이 많습니다. 볼펜으로 글을 많이 쓴 사람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다릅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2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박노해·백태웅씨 등 간부 수십 명을 검거·구속했다. 그의 이름도 구속자 명단 맨 위에 있었다. 그는 조 실장(조명혜)으로 불리며 사노맹 중앙위원 겸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다. 박노해·백태웅씨에 이어 ‘넘버 3’였다.
검거된 후 공안당국으로부터 온갖 고문을 당했다. 6년간의 복역기간 중 4년 6개월 동안 창문도 없는 독방에서 지냈다. 당시 걸린 결핵성 종양으로 소장과 대장 사이를 50㎝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어도 감옥 담장 밖으로 나가서 죽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따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1.5평(4.9㎡) 독방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막춤을 췄어요.”
그는 1997년 사면·복권을 받고 서울대에 복학했다.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 들어간 게 2005년.
노동연구원에서의 직장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그가 노동전문가로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 대해 언론의 기고 요청과 정치권 등에서 특강 요청이 쇄도했다. ‘은수미’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주장은 정부와 정반대가 돼버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당시에도 논란이 됐었다. 정부는 “비정규직법을 고치지 않으면 100만명이 해고된다”며 국회에 으름장을 놨다. 그때 그는 국책기관 연구원 이름을 걸고 “비정규직 연장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으로부터 ‘대외활동 금지령’까지 받았다.
“전략공천 필요한 곳” 당내서도 곤혹
그가 국회의원이 된 데는 약간의 운도 따랐다. 당시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총선 공천과 관련해 한명숙 대표, 이미경 사무총장 등 이대 라인이 독주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그래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에서는 여성 노동·경제전문가로서 이대 출신이 아닌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찾고 있었다. 그가 그 조건에 딱 맞았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을 받아 무난히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서, 당내 ‘을지로위원회’ 위원으로서 맹활약했다. 지금까지 쌍용차, 남양유업, 씨앤앰 농성장 등 수백여 곳의 현장을 찾았다. 씨앤엠에서는 직접 고공농성장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국회의원에게 주는 각종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새정치연합 성남 중원 지역위원장 경선에 나섰지만 정환석 현 지역위원장에게 패했다.
당내에서도 그의 지역구 도전 선택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성남 중원 재·보선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내세워야 하는데 먼저 ‘의원직 사퇴’로 배수진을 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많기 때문에 옛 통합진보당 출신 후보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의사협회장 출신인 새누리당 신상진 전 의원도 이 지역에서 재선하는 등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제3신당도 이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래저래 새정치연합이 쉽게 승리할 수 없는 지역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의 새 지도부가 출범하고 첫 시험대인 4월 재·보선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선거”라며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상대 후보가 누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전략공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은 의원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새 지도부가 여론조사 등 합리적인 결과를 갖고 공천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 사무실을 냈고 조만간 이사도 계획하고 있다. 진정성을 앞세워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으면 이변을 연출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 아닌가.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