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국회 인턴’은 더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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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없는 국감 업무 시급 2160원꼴… 최저 임금의 절반도 안 돼

새해 첫 출근. 인턴직원 ㄱ씨는 국회 의원회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비서관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급여가 3.8% 인상된 거지?” “그거 올라봤자 얼마나 되겠어. 올해 교통비도 오르고 담뱃값도 오르는데.” “물가는 오르고 생활하기는 더 힘들고….”

예산 삭감으로 월급 9년째 제자리
ㄱ씨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그나마 인턴 월급은 단 한푼도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서다. 기본급 120만원. 다달이 월세에 교통비, 식비 등 기본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할 액수다. 물가는 오르고 삶의 질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 그러나 올해도 월급은 동결이었다. 2008년 11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오른 후 2015년까지 9년째 똑같다. 지난해 예산심사에서 국회 운영위원회는 인턴 처우개선 명목으로 46억2000만원의 예산을 증액해 기본급을 150만원으로 인상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다시 전액 삭감됐다. 기획재정부에서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일은 밤낮이 없었다. ㄱ씨는 지난 지방선거 때는 지역에 파견됐다. 두 달 가까이 지역에서 살았다. 쉬는 날도 없었다. 국감 때는 새벽 3시가 기본 퇴근시간이었다. 밤을 새는 날도 허다했다. 국감이 끝나고 국감 기간 중의 시급을 계산해봤다. 따져보니 2160원.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었다. 헌신이 필요한 일임은 진작부터 알았다. 열정이 있었기에 의욕을 부렸지만, 일을 할수록 의욕보다 좌절이 커졌다. 적어도 물가상승률에 맞춘 월급 인상은 필요했다. 그러나 9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월급을 확인하면서 사기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하는 일도 대중이 없었다. 인턴 ㄴ씨는 지난달에는 갑자기 기존 업무와 상관없는 수행일을 하게 됐다. 하루에 10시간씩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빡빡한 의원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밤 12시나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수행일이 맞지 않아서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때 그때 필요한 일에 ‘땜빵’으로 쓰인다는 생각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언젠가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쓰는데, 비정규직 문제의 당사자는 바로 내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월급만이 아니었다. 계약기간 또한 문제였다. 국회사무처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이 인턴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계약단위는 11개월이다. 11개월 이후 계약은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다. 계약 연장 여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대다수 의원실은 11개월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계약이 종료된다. 계약기간이 1년 단위가 아닌 것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 인턴들의 주장이다. 인턴 ㄷ씨는 “2012년에 인턴 계약기간을 10개월에서 11개월로 연장했는데, 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생색내기다. 12개월로 계약기간을 할 경우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국회사무처 관계자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해결사’ 국회의원들, 제머리 못 깎아
인턴들과 함께 일하는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의 문제의식은 어떨까. 이 또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ㄷ씨의 말이다. “솔직히 나는 운이 좋아 내가 일하고 있는 의원실은 인턴을 많이 챙겨주는 분위기다. 계약기간을 조정해 어떻게든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챙겨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의원실도 많다. 인턴생활의 질은 개별 의원실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나 보좌관들이 문제의식이 있을지라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보좌관이나 비서관들도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인턴과 마찬가지다. 처음 계약할 때 기간을 정하기는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해직을 당하거나 의원과 관계가 나빠져 나가라고 하면 전혀 손쓸 방법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보좌진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이것도 보좌관들에게만 해당할 뿐 인턴들의 고용불안과 처우문제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 국회 인턴과 관련한 법안 발의가 올라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인턴들의 처우개선 문제보다는 업무효율에 방점이 찍혀져 있다. 인턴 ㄷ씨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국회 인턴 관련 법안을 상정했지만, 이 법안에서도 방점은 처우개선에 찍혀져 있지 않다. 인턴이 국가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국감 때 자료요청을 받기 어려운 점이 있어 인턴들도 보좌관들과 동일하게 본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업무효율 때문이지 처우개선과 관련한 법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령 문제의식이 있더라도 인턴들의 급여 상승은 자칫 ‘국회의원 세비 인상’이라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나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그런 만큼 인턴들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사무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국회사무처이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에서 만든 국회 인턴의 운영은 강제성 있는 규정이 아닌 지침에 머물러 있다. 인턴 ㄷ씨는 “개별 국회의원이나 의원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입법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회사무처에서 제도를 잘 정비하고 운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ㄱ씨 또한 국회사무처의 문제를 짚었다. “인턴 문제가 전혀 제도화되지 않았다. 국회사무처는 이번에 증액안 내놓은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제도 운영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국회사무처이다. 이를 기재부 탓이나 개별 의원실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인턴들은 추후 국회 내 인턴들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모아 이와 관련해 공동의 문제제기를 할 계획이다. 청소용역노동자 직접고용 문제에서부터 국회는 번번이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해 왔다. 공공기관에서부터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를 방치하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ay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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