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이대로 잠잠? 임기 내내 괴롭힐 ‘비선ㆍ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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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나온 게 뭐 있나. 곧 진정되고 대반격 기회 올 것” 위험한 낙관… 국민 머릿속에 각인된 ‘정윤회’ ‘문고리 3인방’ 등 두고두고 아킬레스건 될 가능성

안과 밖의 온도차는 컸다. 위기의 여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인터뷰, 유진룡 전 장관의 증언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새누리당은 더 이어지는 공세가 없자 이대로 마무리가 될 것이라며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관계자는 이번 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전화위복이나 대반격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나온 게 아무 것도 없지 않나. 역대 정권도 다 비선은 있었다. 이명박 정권 때는 이상득 의원, 박영준 차관 등이 비선으로 거론됐고, 노무현 정권 때는 현재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비선으로 거론되지 않았나. 박영준 차관처럼 돈을 받은 정황도 안 나오고 비선이 움직였다는 결정적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다. 잠잠해지고 나서 공무원연금 같은 거 세게 밀어붙이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대반격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도 조심스러운 낙관을 전했다. “지금 지지율 30%대로 떨어졌다고 나오지만, 다음주쯤 되면 반등될 것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기회에 박근혜 7시간 미스터리를 털고 가는 게 아니냐. 결국 소문이 아무 것도 확인된 것이 없지 않나. 남은 임기 또한 본인 스타일대로 끌고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 마지막날인 1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 마지막날인 1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여당, 청 독주 막을 안전장치 ‘견제’ 포기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을 둘러싸고 비선개입, 권력암투 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친이계 일부를 제외하고 여권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비선 논란을 감싸는 모양새다.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오찬에서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 우리 새누리당은 한 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사 도중 마이크를 잡고 “태권도계 비리를 바로잡으라는 것이 왜 승마협회 문제처럼 보도되도록 내버려 뒀느냐.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실)의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윤회씨가 딸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유진룡 장관의 전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의 발언 이후 유진룡 장관의 발언이 연달아 나오면서 주말이 사실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김 대표가 잘 막아줬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내심 고맙지 않았을까”라고 해석했다. 문건이 공개되고 나서 숨 죽이고 있던 여권이 청와대를 옹호하면서 다시 결집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봉합은 오히려 독이 될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는 일종의 보호장치다. 여당 내 견제세력이 있다는 것은 권력이 전횡이나 독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있다는 의미와 같다. 새누리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내 친박 일색의 시스템이 앞으로도 청와대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다면 향후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민주주의와 시장원리에 따라 통치를 해온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비선이 있든 없든 일종의 독과점 형태를 통해서 물품을 공급받아 온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독과점의 문제가 이번 문건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고, 국민들은 그 체제의 도덕성에 대해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독주’가 ‘비선개입, 국정농단’이라는 주제로 전환된 이상, 정권의 도덕성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독과점 형태의 정치체제’가 지속된다면 사사건건 비슷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유출 문건’을 찌라시라고 하면서 국민정서상 반감이 극대화됐다는 지적이다. 과거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굳건하게 지지하고 있었던 콘크리트 지지율에 균열이 간 것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과 8일 이틀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39.7%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떠받친 것은 소위 70년대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서 그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12월 7일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 만나서 말한 내용을 보면 국민들 의식과 많이 다르다. 한마디로 국민이 찌라시를 믿어서 대통령으로서 창피하다는 이야기인데, 자신이 옳고 국민이 잘못됐다는 사고관이다.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대통령이고 대통령이 자신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잘못 관리해서 물의를 빚었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

비선에 중독된 청, 내칠 수도 없어 딜레마
비선의 실체가 증명되지 않더라도 청와대 내부 권력 암투가 수면 위로 올라섰고, 거기에 거론되는 이름이 공론장에 등장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라는 지적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던 정윤회라는 이름을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불투명한 인사와 통치스타일은 언제나 의혹을 남겼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 윤진숙 전 장관, 유흥수 주일대사 등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인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앞으로 이러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정윤회씨의 이름이나 비선개입 의혹이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딜레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3인방+김기춘 실장, 그리고 실체는 알 수 없으나 비선이 있다면 여기에 의존해 통치하는 것에 이미 중독된 상태다. 이들과 손발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대체불가능한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의 도덕성에 균열이 갔다. 시스템 추진체가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교체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금단현상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권 때도 비선이라고 일컬어지는 차남 김현철씨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정권 초부터 제기돼 왔고, 이는 집권 기간 내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비선개입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향후 국정운영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잠잠해질 것이라는 지금의 낙관이 여권에게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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