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부처의 국ㆍ과장 인사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부속실이 수석실 경찰인사를 주물렀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유도 형식도 ‘묻지마 인사’다. 그래서 그 뒤에 그림자 권력이 있다는 의혹과 논란이 꼬리를 문다. 비선의 국정 농단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투명한 통치스타일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바뀔 여지는 있을까? 여당 인사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 청와대는 ‘공조직’과 ‘집안’으로 나뉘어 있다. 문제는 가족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정권의 한계다.”
2007년 대선 때 일이다. 당시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박근혜 의원의 삼성동 자택을 세 차례 찾아간다. 이명박 후보가 BBK로 도덕성 논란이 불거졌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20%를 웃돌 때였다. 이 후보로서는 박근혜 의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결과는 문전박대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문을 열고 나온 건 박근혜 의원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만 돌아가시라”는 말을 전했다. 안봉근 비서관이었다. 당시 직급은 6급. 그때 상황을 지켜봤던 여권의 한 관계자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국무총리에 유력 대선후보까지 지낸 사람이었다. 거절하더라도 적어도 의원이 나와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는 ‘의원급’, 청와대 입성 이후에는 ‘수석급’이라고 회자되는 측근 3인방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전했다. 상식을 벗어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감찰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비선 개입’ ‘국정농단’을 둘러싸고 연일 난타전이 이어지고 있다. 난타전의 중심에는 인사논란이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비선 개입’을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청와대 내부 인사를 둘러싸고 ‘비선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인사논란에 불을 댕긴 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정수석실 경찰 인사를 제2부속실에서 전횡했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말인가 11월 초인가,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에 대해 검증을 하다가 ‘부담(스럽다)’ 판정을 내렸다.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해서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은)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2부속실에서 왜 경찰 인사를 갖고 저러는지 이상했는데,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왔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의 배경으로 제2부속실을 꼽았다.
경관 10여명 내보내고 후임은 콕 찍어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의 인터뷰를 보며 “어떻게 제2부속실이 공직기강비서관의 역할을 가로채서 자기 마음대로 검증 없이 인사를 하나. 그게 월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인사가 이해할 수 없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는 나가는 이유도, 형식도 알 수 없는 식의 해임이 많았다. 해임 통보를 해임 당일 팩스로 하며 몇 시까지 퇴청하라고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고, 본인이 이유도 알 수 없이 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 짐도 못 챙겨서 쫓겨나는 식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청와대 내에서는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동료들이 갑작스럽게 해임되는 것을 보고 공포에 떨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새어나온다.” 이 관계자는 비선 개입 논란의 상당수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에 있다고 전했다.
조 전 비서관의 폭로 이후 인사논란은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왔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장 인사를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한겨레>의 보도가 정황상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국·과장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과장급을 직접 해임하는 것은 비선이 아니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국장·과장의 목을 직접 날린다? 이건 비선에서 요청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높다. 통상 인사에 문제가 있으면 민정수석실을 통하거나 어쨌든 시스템을 통해서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그걸 대통령이 다이렉트로 하는 것은 비선에서 들어온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한 부처 관계자는 청와대가 과장급까지 인사를 통제하는 것은 이번 정권에서 종종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간부 인사 문제를 청와대가 통제하니까 장관 입장에서는 자율적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누가 인사를 통제하는지는 몰라도 국·실장은 물론 심지어 일부 과장까지도 청와대가 통제를 하니까 장관으로서는 소신껏 인사하기가 어려웠다. 장관으로서는 애로사항이 많았는데, 이는 다른 부처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표지이야기]‘이해할 수 없는 인사’ 비선 의혹 키운다](https://img.khan.co.kr/newsmaker/1105/20141216_1105_A14a.jpg)
이해할 수 없는 인사는 ‘비선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비선 의혹’의 핵심에는 비대해진 ‘측근 3인방’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 빈 공간이 많다. 그 빈 공간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야 하는데 소위 ‘문고리 권력’이 들어가 있다 보니까 청와대 내부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집무동과 비서동은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따라서 영향력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동과 비서동이 구분돼 있는데, 비서동에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부르지 않으면 집무동으로 갈 일이 별로 없다.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대통령과 소통할 수 없는 구조라면 부속실 구조는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수석들이 대통령에게 수시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수석비서관회의 때나 만난다는 것 아니냐. 세월호 참사 때도 대면보고를 못했다는 건데 이랬을 경우 부속실 권한은 세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내부에서 “지금 청와대는 박근혜 의원실의 확대판이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도 부속실의 힘이 세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통제로 장관들 마음대로 인사 못해
‘측근 3인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감찰보고서’가 등장하면서 정윤회씨의 ‘국정농단’으로 비화됐다. ‘감찰보고서’는 정윤회씨를 비롯한 ‘측근 3인방’과 박지만 EG 회장의 권력암투 논란으로 이어졌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감찰보고서에는 정윤회씨가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소위 ‘비선실세’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십상시’를 만나고 있다고 나와 있다. 감찰보고서에는 정씨와 이들 10인이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VIP의 국정운영과 BH(청와대 지칭)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이들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을 모의했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김기춘 실장은 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기춘 실장은 공조직의 좌장이고 관료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권력의 속성을 안다. 여기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윤회-조응천 반박ㆍ재반박 진실공방
감찰보고서가 보도되자 가장 먼저 정윤회씨의 반박이 제기됐다. 정씨는 12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찰보고서에 대해 “증권가 정보 ‘찌라시’를 모아놓은 수준”이라며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박지만 라인’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반박이 이어졌다. 조 전 비서관은 검사 출신으로 박지만 회장이 지난 1993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담당 검사였다. 이를 인연으로 박지만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전 비서관은 3인 측근 비서관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정윤회씨의 말을 반박했다. 그는 “4월 11일 퇴근길에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며 “4월 15일 홍경식 민정수석이 불러 가보니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그만두라고 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3차회의 참석자들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왼쪽)이 진지한 표정으로 박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아직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감찰보고서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6할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는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감찰보고서의 사실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관계자들은 “언급된 십상시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A씨와 B씨의 경우 사이가 틀어져서 서로 보지도 않는 사이인데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다. 언급된 J식당 또한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식당이다. 사람들 눈길이 쏠리는 그곳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12월 4일 이 식당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이들이 ‘만났다’는 것보다는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조 전 비서관 또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씨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과 나의 거취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속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비선실세로서 정씨의 역할에 대한 확신을 보류했다.
최태민ㆍ정윤회 검증 안 된 인물 공통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윤회씨의 ‘비선 개입’ 논란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을 둘러싸고 자꾸 공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불투명한 인물들이 주목받는 것을 ‘신돈’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최태민 목사와 정윤회씨는 닮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최태민 목사와 정윤회씨에 대한 논란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둘은 공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돈에 빗댈 수 있다. 정윤회씨가 비선으로 개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밝혀진 게 없다. 보인상고를 나온 것도 지금에 와서야 알려진 것 아닌가. 그렇게 불투명한 사람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과거 중앙정보부가 실체가 불분명한 최태민을 뒷조사했듯, 이번에는 민정수석실에서 불투명한 공인을 뒷조사한 것이다. 거대 정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정도면 최소한 검증된 사람이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정치권에서는 ‘비선 논란’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투명한 통치스타일이 있는 만큼 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부정적인 전망이 높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청와대는 ‘공조직’과 ‘집안’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가족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정권의 한계일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