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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소신행보 어디까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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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신규설치ㆍ토목사업 반대 입장 등 시선 끌어… 외국계 영리병원엔 개방 뜻 ‘앞뒤 안 맞는 소신’ 비판도

8월 2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급히 서울로 올라와 정부 부처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만나 제주도 외국인 카지노 문제 등도 상의했다.

이튿날 제주도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 지사는 “카지노와 관련한 전반적인 제도 정비를 서두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카지노 신규 설치보다 먼저 감독·조세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원 지사의 입장이 관철된 셈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영종도에 카지노 2~3곳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유정복 인천광역시장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원 지사는 10년 가까이 제주도를 갈라놓은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해군기지 반대론자들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원 지사는 도지사 후보 시절부터 제주 해군기지의 입지선정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강정마을 쪽이 진상조사를 주도하도록 할 계획이다.

5월 22일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가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주민들이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 22일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가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주민들이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 해군기지 찬성론자인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도 원 지사의 해군기지 해법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 교수는 “제주도 일대 해역을 지키기 위한 해군기지는 필요하지만 강정 주민들의 말처럼 기지 선정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면서 “전임 도지사들과는 달리 원 지사가 주민들과의 소통에 나선 것은 높이 살 만하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시민단체에서도 원 지사의 행보에 일정 부분 힘을 실어주는 논평을 낼 정도다. 원 지사는 지난 7월 31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56층짜리 드림타워와 신화역사공원 등 거대 토목사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도민사회에 숱한 갈등과 논란을 만들어 왔던 신화역사공원과 드림타워 문제 해결을 위한 재검토의 실마리를 제시한 부분은 바람직한 정책적 판단”이라며 원 지사를 치켜세웠다.

당선 직후 상대 후보인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영입해 협력정치의 가능성을 보인 것도 ‘좋은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정 ‘좋은 시도’ ‘서울 향한 정치’ 엇갈려
정작 원 지사의 파격 행보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새누리당 내부에서다. 한 새누리당 제주도당 관계자는 “분명 새누리당 도지사인데 우리 쪽으로 기울지 않은 것 같아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불만을 품은 사람이 꽤 된다”면서도 “오랫동안 인맥 등으로 갈라진 제주도를 하나로 안고 가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깊어져온 여야간 불신의 벽을 금세 허물 순 없었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원 지사는 새정치연합의 신구범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세웠다. 당시 신 후보의 대변인이었던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은 “처음 인수위원장을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원 지사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에서 공식적으로 인수위 참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 후보가 인수위원장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도의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역시 이 사람은 서울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제주도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신관홍 새누리당 제주도의원은 “야당에서 계속 ‘원희룡은 서울로 갈 사람’이라는 말을 할 게 아니라, 원 지사와 함께 제주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6월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오른쪽)이 낙선한 신구범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신 후보는 지사직 인수위원장인 새도정준비위원장직을 수락했다. | 연합뉴스

6월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오른쪽)이 낙선한 신구범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신 후보는 지사직 인수위원장인 새도정준비위원장직을 수락했다. | 연합뉴스

원희룡 도정이 본격 출범한 뒤, 이지훈 전 제주시장 임명을 둘러싸고 여야는 갈등을 벌였다. 7월 7일 원 지사는 제주지역 시민운동 1세대인 이 전 시장을 제주시장에 임명했다. 이를 두고 또 하나의 파격 행보라는 분석기사도 실렸다.

그러나 임명 다음날부터 이 전 시장의 비리의혹이 쏟아졌다. 결국 이 전 시장은 한 달 만에 물러났다.

“이지훈 전 시장을 임명한 것 역시 중앙 언론에 이름을 알린 것 외에는 무엇이 남았나. 이 전 시장 임명과정에서 우리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들과도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다. 먼저 소통만 했더라도 이렇게 큰일은 나지 않았을 텐데….” 정 전 도의원의 말이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오랫동안 계속된 제주도정에 대한 불신을 금방 벗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원 지사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대화를 제안하며 한 발 들어간 모습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르다는 게 강정마을 측의 설명이다.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원 지사가 과거 도지사들과 달리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로서의 권한만 충분히 행사한다면 앞으로 불법·탈법적인 공사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한편으로 제주 해군기지를 열렬히 찬성해 왔던 서귀포시장을 도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했다. 우리와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고 부회장은 “벌써부터 도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취임한 지 50일 좀 더 지켜봐 달라”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협력정치’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는 모양이다. 오수영 새정치연합 제주도당 공동위원장은 “한국이 과연 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양당제 국가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연정을 하면 도의회에 야당은 무소속 2명밖에 남지 않는다. 건전한 비판이 아예 성립될 수 없다.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정책설명회를 하는 정도가 적당한 선으로 보인다.”

당장 원 지사 눈앞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9월로 예정된 외국계 영리병원 도입 문제다. 이미 원 지사는 여러 차례 국내병원의 영리병원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하지만 외국계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국내 의료체계와 무관하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1호 외국계 영리병원인 싼얼병원은 9월 중으로 보건복지부 승인절차를 거쳐 제주도 내에 설치될 예정이다.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싼얼병원은 중국의 줄기세포 전문기업인 CSC그룹이 투자했다. 문제는 CSC그룹이 중국 내에서 병원을 운영한 경험이 거의 없고, 싼얼병원도 이미 한국이 우위를 보이는 성형외과 중심이라는 점이다. 시민단체들은 외국인 영리병원의 명분이었던 고급 의료기술을 싼얼병원에선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외국계 영리병원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궁극적으론 국내병원의 영리화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양영준 의료연대 제주지부장은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 아쉽다”면서 “제주도에서 싼얼병원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지사 측은 “싼얼병원의 내용이나 사업자들의 실력은 우리가 면밀히 심사를 할 것이고, 제주도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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