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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제, 투표율 효자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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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1일 이틀간 전국 어디서나 투표 가능… 비정규직ㆍ젊은 층 참여율 높일 듯

지난 5월 13일 서울 지하철 혜화역. 대학생 새내기 김민정씨(가명·19)가 6·4 지방선거 사전투표 행사에 참여했다. 올해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김씨는 우선 주민등록증을 선관위 직원에게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했다. 그리고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그는 선관위 직원으로부터 교육감, 시·도지사, 구청장을 선택하는 1차 투표용지 3장을 받았다.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가서 지지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 그리고 시의원과 시의원 비례대표, 구의원과 구의원 비례대표를 뽑는 2차 투표용지 4장을 받고 다시 기표했다. 김씨의 주민등록지가 대전이기 때문에 그의 투표용지는 회송용 봉투에 담겨 관외선거인용 투표함에 넣어졌다. 김씨의 투표용지는 대전으로 보내져 개표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민정씨는 “지방선거 투표일인 6월 4일에 대전으로 가서 투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사전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한 번 연습해봤다”고 말했다.

지난 5월 9일 서울 종로구청 종로가족관에 설치된 모의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체험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지난 5월 9일 서울 종로구청 종로가족관에 설치된 모의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체험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올해 6·4 지방선거부터 전국단위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사전투표제가 실시된다. 사전투표제 실시로 선거일이 1일에서 3일로 늘어나기 때문에 투표율 상승이 기대된다. 이에 따라 사전투표제가 지방선거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분증만 있으면 OK, 인천공항서도 가능
사전투표는 선거 당일 투표가 불가능한 유권자가 별도의 부재자 신고 없이 사전에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신분증만 지참하면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주소를 두고 있는 유권자가 사전투표 기간인 5월 30∼31일 부산으로 출장을 간다면 부산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 사전투표소는 전국 3500여개의 읍·면사무소와 동 주민센터에 설치되며, 해외에 나가는 유권자를 위해 인천공항에도 설치된다. 투표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사전투표는 지난해 상반기 재·보선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하지만 전국적 단위 선거에서 사전투표제를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관위가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것은 지방선거 투표 참여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과 달리 유권자의 관심도가 낮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지난 1995년 68.4%에서 1998년 52.7%, 2002년 48.8%, 2006년 51.6%, 2010년 54.5%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사전투표제 시행으로 지방선거 투표율이 과거보다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백화점 판매원, 일용직 노동자 등 생업에 종사하느라 투표를 할 수 없는 사람들한테는 사전투표제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중앙선관위가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 유권자 조사를 한 결과,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의 36.6%가 ‘개인적인 일 또는 출근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는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지만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비정규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투표일에도 일할 수밖에 없다”며 “사전투표제 도입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보다 사전투표제를 일찍 시작한 외국의 경우도 이 제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2003년 중의원 선거에 600만명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점점 늘어,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1080만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미국도 2004년 대선에서 사전투표자가 전체 투표자의 18%에 달하는 등 활성화됐다. 대선 직후 플로리다주 사전투표자를 대상으로 사전투표를 한 이유를 물어보니 30%가 ‘선거일에 번잡함을 피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고, 28%는 ‘편의성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4월 14일 지방선거 사전투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4월 14일 지방선거 사전투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또한 이번 선거일인 6월 4일은 징검다리 연휴의 시작일이기 때문에 투표율 저조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사전투표제가 보완재가 될 수도 있다. 직장인의 경우 6월 5일 하루만 연차휴가를 내면 현충일(6일)과 주말(7∼8일)로 연휴가 이어지기 때문에 최대 5일 동안의 ‘황금연휴’를 즐길 수 있다.

재보선 때 효과 입증… 당락 변수 될 수도
사전투표제의 위력은 수도권의 투표율 상승에 이바지할 전망이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 부재자투표율과 지난해 4·24 재·보선 사전투표율을 비교해보면 서울 노원병의 경우 2.1%에서 8.4%로 4배 정도 상승했다. 부산 영도는 1.5%에서 5.9%로 뛰었으며, 충남 부여·청양은 2.2%에서 5.6%로 올랐다. 한국갤럽의 허진재 이사는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에서 7∼8% 정도의 투표율이 예상된다”며 “이럴 경우 전체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전투표가 후보자의 당락을 결정하는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 정치권은 사전투표제가 각 당 후보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특히 2030세대가 얼마나 사전투표에 참여하느냐가 지방선거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새정치연합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번에 처음으로 사전투표제가 실시되는 만큼 전략적 설계를 하고 있다”며 “사전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사전투표에 5060 이상 세대가 더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투표할 사람은 적극 투표층인 50대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전투표에서도 이들이 더 많이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야당에 비해 불리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전투표에 젊은 층이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과 세월호 침몰사고 여파로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감이 강해져 사전투표제가 ‘투표율 상승 효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야당에 특별히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견해로 나뉜다. 민컨설팅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기존에 투표율이 높지 않았던 수도권의 젊은 층이 사전투표에 많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사전투표제에 따른 투표율 상승이 여당보다는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확실하게 사전투표제로 인해 투표율이 두 자릿수 이상 올랐을 것”이라며 “하지만 유권자들이 정부를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기 때문에 사전투표소에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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