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조종사 최후수단 ‘비상탈출 좌석’, 그러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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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시속 460㎞ 이상으로 비행 중 비상탈출을 하게 되면 조종석 사출부터 낙하산이 펼쳐지기까지 1.17초가 걸린다.

수만 피트 상공에서 음속을 넘나드는 전투기에 문제가 생겨 엔진이 꺼지면 그 순간 수백억원 또는 1000억원이 넘는 기체는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체는 시속 수백㎞의 속도로 지상으로 추락하게 된다. 조종사에게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탈출의 순간이 불과 몇 초의 여유밖에 없다.

이때 조종사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비상 탈출좌석이 바로 사출좌석(Ejection Seat)이다. 전투기가 추락 위기에 빠지면 조종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앉아 있는 사출좌석의 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조종사가 앉는 전투기 좌석은 위급 시에는 조종사와 함께 좌석째 기체 밖으로 튕겨 나가는 사출좌석으로 변하게 된다. 사출좌석은 조종사를 조종불능 상태인 기체에서 분리시키고 최대한 빨리 낙하산을 펼쳐 안전한 상태로 지상에 착륙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

사출좌석은 화약과 로켓의 추진력을 이용해 보통 0.2~0.4초 동안 12~21G 정도의 가속을 얻어 조종사를 전투기와 분리시켜 탈출시켜 준다. 여기서 ‘G’는 가속을 중력가속도(자유낙하의 가속)와 비교한 수치를 말한다. 

국산 초음속항공기 T-50i. /  연합뉴스

국산 초음속항공기 T-50i. / 연합뉴스

중력가속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이 정지한 상태일 때는 1G, 놀이공원 바이킹을 탈 때는 최고 2G, 난이도가 높은 롤러코스트에서는 4G 정도를 느낀다고 보면 된다. 통상 전투기 조종사들은 기체를 조종할 때 9G 정도를 한계점으로 여긴다.

F-5 전투기 신형 사출좌석으로 교체
F-16의 경우 지상에서 사출좌석 장치를 가동해 보면 조종사가 약 50m 정도 올라간다. 공중에서 시속 460㎞ 이상으로 비행 중 비상탈출을 하게 되면 조종석 사출부터 낙하산이 펼쳐지기까지 1.17초가 걸린다.

생산된 지 30년이 넘은 F-4E 전투기의 경우에는 비상탈출을 시도하면 먼저 후방석 캐노피(Canopy·조종석을 덮고 있는 투명덮개)가 날아가고 후방석 좌석이 사출된다. 

그 다음엔 전방석 캐노피가 날아가고 전방석 좌석이 사출된다. 꽤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과정은 불과 1.392초 안에 모두 끝난다.

그러나 탈출할 때 조종사의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사출되는 즉시 신체 부위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약 시속 800~1000㎞의 속도와 함께 로켓 사출로 인한 매우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최대 중력이 12~21G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이 비상탈출하기 전 좌석에 몸과 머리를 완전히 밀착시켜 자세를 잡은 후 사출 핸들을 당겨 비상 탈출하는 것도 끊임없는 생존 훈련의 결과다.

그런데 F-5 계열 전투기의 경우 2011년까지는 사출좌석이 고도 600m 이상에서만 정상 작동했다. 대부분 전투기들은 고도가 제로(0)인 상태에서도 작동하는 신형 사출좌석을 갖추고 있다.

공군은 F-5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구형 사출좌석의 문제로 비상탈출에 실패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2013년 5월까지 460억원가량을 들여 F-5 사출좌석을 영국산 신형으로 모두 교체했다. F-5 180여대에 개당 2억1000만원을 투입했다. 

F-5에 장착된 신형 사출좌석. / 경향신문 자료

F-5에 장착된 신형 사출좌석. / 경향신문 자료

이후 이 신형 사출좌석은 교체 완료 4개월 만에 조종사 목숨을 구했다. F-5 조종사가 민간 피해가 없는 야산으로 비행기를 몰고 가기 위해 탈출 적정 고도인 5000피트(1524m)에서 1000피트(305m)나 더 내려온 뒤 탈출했지만 신형 사출좌석은 정상 작동했다.

반면 고도 제로인 상태에서 사출좌석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정상 작동하는 바람에 전투기가 일부 파손된 사례도 있다. 

수년 전 한 공군 장성이 활주로에 정지상태로 있던 F-15K 전투기의 후방 조종석에 앉았다가 사출좌석 레버를 잘못 당기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 

이 장성은 F-15K를 조종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호기심에 사출좌석 레버를 눌렀다가 지상에서 공중으로 50m 이상 솟구쳤다가 낙하산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이 바람에 전투기의 캐노피와 사출좌석이 박살난 것은 물론 기체 뒷부분 하단도 사출좌석이 튕겨져 올라가는 폭발력에 의해 일부 파손되면서 수리 비용만 10억~20억원이 들었다.

점화선 불량으로 비상탈출 실패한 적도
2012년에는 이 사출좌석에 연결된 점화선(랜야드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블랙이글 소속 T-50B 조종사가 비상탈출에 실패하고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문제의 ‘랜야드 케이블’은 실리콘 재질로 고정해 놓았는데 실리콘이 너무 단단히 붙어 있었던 탓에 랜야드 케이블의 인장강도를 초과하면서 정상 작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놓고 유족은 최근 항공기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공군의 정비 불량이 사고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조종사의 죽음과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인 2013년, 블랙이글 기종인 T-50B에 사용하던 ‘랜야드 케이블’의 고정 장치는 실리콘 재질 대신 시중에서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 재질로 교체됐다.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이 교체작업을 “정상적인 기술변경 처리절차”라면서 “사고기 추락 당시 ‘랜야드 케이블’의 절단은 종합적으로 볼 때 여러 복합적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의 경우에도 같은 장비가 실리콘 재질로 고정돼 있다.

조종하던 T-50B 기종이 정비 결함으로 추락하면서 사출좌석마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순직한 블랙이글 소속 조종사는 공군이 자랑하는 정예 요원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군이 그와 같은 정예 조종사를 교육시키는 데 들어간 각종 비용을 170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사출좌석의 문제로 조종사가 생명을 잃는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공군 조종사의 좌석에서 비상탈출 성공률이 22%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2000년 이후 위급한 상황에서 모두 18차례의 비상탈출을 시도했지만 6차례는 조종사가 숨지고, 8차례는 다쳐 22.2%인 4차례만 성공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의미에서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성능은 스텔스 기능이나 빠른 속도, 첨단 장착 무기보다 조종사의 비상탈출 기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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