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방재정 위기

‘지방정부 파산제’ 불쑥 여당의 정치적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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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 앞두고 지방재정 위기 정치적 쟁점 부각…

새누리당 단기적으로는 민주당 지자체장 공격할 명분 쌓고,

장기적으로는 복지축소 및 복지재정 분담 책임을 전가하려는 포석

지방자치단체에 돈이 말랐다. 빚은 갈수록 늘어간다. 2012년 지자체 부채는 4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지방교육재정 부채까지 더한 지자체 총부채는 약 110조원에 이른다. 

민간투자사업의 경우 통계상으로는 지자체 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포함할 경우 부채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지방재정 위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가 최초로 실시된 1995년 이래로 지방재정의 위기는 계속 거론돼 왔다. 

특히 지방선거가 있을 때에는 선거와 맞물려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제2회 지방선거를 앞둔 1998년 4월 23일 <한국경제> 사설에서는 ‘파산위기 몰린 지방재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1월 14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과 함께 신년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1월 14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과 함께 신년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김정길 행정자치부 장관이 부산에서 지자체의 파산 가능성을 경고하며 긴축재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 16개 시·도의 총채무는 3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 사설은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선심성 예산 지출을 없애는 것을 지방재정 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지방재정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해법 제시도 비슷한 목소리로 맴을 돌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재정의 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문제다. 민주정책연구원 김진영 부연구위원은 “지방재정 위기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해법 제시는 어떻게 보면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후 계속 반복해서 나왔던 내용이다. 지금은 큰 틀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임성일 한국 지방행정연구원 부원장은 “(지방재정 위기는) 종합적인 틀의 재구조가 필요하고, 이와 관련해서는 국가적 합의, 국민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ㆍ지방정부 역할 등 재구조화 뒷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의 위기는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다. 지난 1월 14일 황우여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정부의 만성적인 재정불안 및 부채 누적과 관련해 “지방재정의 건전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동시에 책임성을 높이는 지방파산제도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황우여 대표의 기자회견에 안전행정부도 같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1월 26일 안전행정부는 만기 부채를 30일 이상 갚지 못하면 파산을 선고할 수 있는 지자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나섰다. 2월 6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방재정 위기실태와 재정건전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열악한 재정 여건에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재정 악화와 세금 낭비를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방만한 경영이 지속될 경우 파산선고제 도입을 통해 지자체의 책임성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당이 던지고 정부가 받아 안은 ‘지방정부 파산제’가 지방재정 위기를 해결하는 ‘큰 틀의 개혁’ ‘국민적 컨센서스’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지방정부 파산제’가 지방재정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지방정부 파산제를 도입하면 지방자치의 애초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성일 부원장은 “종합적인 틀이 재구조화 안 된 상태에서 단편적으로 접근하면 풍선효과처럼 다른 부분이 망가질 수도 있다. 잘못하면 정부와 지자체 간의 권한문제로 번져 정부가 지자체 권한을 상당히 제한할 수 있다”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과 기능, 재정의 분배, 재정에 대한 권한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토를 한 후 밑바탕이 되는 큰 틀을 정립하고, 그 후에 파산제라든가 몇 가지 제도들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조세체계에 대한 보다 면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월 22일 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이 주최한 ‘지방재정 파탄위기,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토론회에서 현행 재정구조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원 교수는 “현행 재정의 구조를 살펴보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대 2지만, 실제 재정 사용액은 국가와 지방의 비율이 4대 6에 이르고 있다”면서 “국가와 지방의 재정 분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 조정 문제는 지방재정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늘 지적돼 왔던 것이다. 20여년 전인 1991년 광역의회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은 ‘8대 2의 비율인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비율을 개선해 지방재정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비율에 대한 논의는 제시하지 않은 채 새누리당이 지방재정 위기의 해법으로 ‘지방정부 파산제’를 내세운 것은 정치적인 노림수 때문으로 분석된다.

단기적으로는 선거용 정치공세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의 위기는 현직 자치단체장을 공격할 만한 좋은 소재다. 현재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자치단체장에게 책임을 물어 지방선거를 ‘정권심판’에서 ‘자치단체장 심판’ 프레임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심판을 지자체장 심판으로 돌리기
장기적으로는 복지 후퇴의 명분으로 활용하거나 복지의 재정분담 책임을 둘러싸고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다. 지방정부 파산제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해 필연적으로 긴축재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방정부 파산제’는 지자체에게 강력한 세출 억제정책을 쓰라는 신호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지방정부 파산제의 실제 목표는 ‘파산하지 말라’는 경고다. 복지를 확대하면 세출은 불가피하게 늘 수밖에 없는데 파산제가 실시되면 지자체는 자체 복지사업을 벌일 여지가 아예 봉쇄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 파산제는 지자체 자체 복지사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사회보장 국고보조사업에서도 지자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지자체 재정 압박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사회복지예산의 급증이다. 지자체의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은 평균 12.3%로 높은데, 예산의 대부분이 사회보장 국고보조사업에 쓰인다.

국고보조사업은 의무복지인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무상보육 등을 말한다. 이들 사업은 국비와 지방비 매칭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비율을 정해 함께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 화곡6동주민센터 앞에 정부가 무상보육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리자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강서구 제공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 화곡6동주민센터 앞에 정부가 무상보육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리자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강서구 제공

‘지방정부 파산제’는 정치적으로 지방재정 위기의 일차적 책임을 지자체에 돌림으로써, 의무복지인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무상보육 등의 사회보장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책임을 지자체에 돌리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과 박원순 서울시장 사이에 있었던 무상보육 충돌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시는 박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무상보육 예산 전액을 정부가 지급하라고 주장했고, 새누리당은 부족분은 지자체의 자체 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으로 부담하라고 맞받았다.

당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등은 “그렇게 비판했던 토건사업엔 1조원 가까이 증액하면서 무상보육정책은 추진할 의지가 있는가”라면서 박원순 시장을 공격했다. 

만에 하나 예산 부족으로 보육대란이 일어날 경우 새누리당과 정부에 불똥이 튈 수가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재정을 문제삼으며 보육대란의 책임을 지자체에 전가하려고 한 것이다.

무상보육 갈등에서 보듯이 복지사업이 확대되고 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될수록 사회보장 비용 분담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계획대로 7월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확대되면서 예산이 2배로 늘어나게 되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고보조율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기초연금이 확대되면서 지자체의 예산이 2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지방정부 파산제’는 이러한 갈등구조가 심화될 때를 대비한 정부 측의 선제공격인 셈이다.

이동영 정의당 관악구 의원은 “‘방만한 지자체 운영’을 부각시켜 이것 또한 ‘비정상의 정상화’로 정치공세를 하려는 것”이라며 “물론 일부 지자체의 방만한 운영에도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편적 복지를 지방으로 전가했기 때문에 지방재정 자체가 설상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관악구의 예산이 한 해 4290억원 정도인데 거기에서 지자체장이 쓸 수 있는 가용재원은 70억원 정도다. 방만하게 사용한다고 했을 때 예산의 1% 정도다. 반면 복지비용은 2000억 정도로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면서 “방만경영에 대해서는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재정위기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편적 복지비 국가 보조율 높여야
복지사업 비용이 재정 압박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지방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경우 무상보육에 대한 정부의 국고보조율은 30%다. 

반면 서울시에서 요구한 보조율은 40%이며 예산 또한 40%의 지원에 맞춰서 짰다. 결국 부족한 10%만큼 지방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적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동영 의원은 “이 상태로 근본적인 대책이 안 나온다면 2014년 하반기에 예산을 짤 시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25개 자치구의 결산자료를 분석한 결과 9개의 구에서 재정결손이 발생했다. 과거에 일시적으로 1~2개 자치구에서 재정결손이 발생한 사례는 있었지만 9개 자치구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2008년 이후부터 가속화된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재정축소로 일차적인 지방재정 위기를 맞았는데, 최근 무상보육 및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 보편적 복지비용에 대한 국가 부담을 지자체 책임으로 돌리면서 설상가상의 위기에 놓인 지방재정은 벼랑 끝까지 몰렸다”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4~2015년 사이에 서울 대부분의 자치구는 세출예산이 세입예산을 초과하게 되는 사실상 ‘부도’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방재정 위기 해법의 핵심은 ‘지방정부 파산제’보다는 사회보장 비용분담의‘국고보조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 있다. 

최근 대통령 직속의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고보조율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보편적 복지 예산안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이다.

국고보조율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은 ‘증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체 복지예산으로 편성한 135조원을 감당하지 못해 ‘복지공약 후퇴’ 논란을 빚고 있는 정부가 추가적으로 복지비용을 부담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에서 증세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 위기의 해법으로 증세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중반기에 들어서면 증세 논란이 계속 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민주당이 먼저 증세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증세 이야기를 꺼내면 논란이 된다. 암묵적으로 증세에 대한 생각은 다들 하고 있지만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재정은 날이 갈수록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매번 불거졌던 지방재정 문제는 이번에도 ‘선거용 정치공세’로 전락하고 말 전망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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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