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사상의 자유 침해… 종북몰이에 사라진 논의 불씨 살려야
2013년 한 해는 ‘종북몰이’로 뒤덮인 해였다. 2012년 대선 기간 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 의혹만으로 종북으로 몰렸다. 8월에는 이석기 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종북 정당’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참여정부 시절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금방 폐지될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로 규정한 바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필요한 내용은 형법에 반영시키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의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야당(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당시 박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 부르며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주장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탑골공원에서 900회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보·개혁 진영에서도 굳이 국가보안법을 없앨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폐지론자와 개정론자의 다툼 끝에 국가보안법 개정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2004년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장이었던 장상환 교수도 “과거와 달리 국가보안법으로 표현의 제약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껴서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참여정부 기간 중 목숨을 부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필사적으로 막아낸 국가보안법이 그가 정권을 잡은 2013년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7조1항 찬양ㆍ고무죄 ‘고무줄 조항’
국가보안법 조항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7조(찬양·고무 등)다.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을 두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나 국경없는 기자회 등 국제 NGO들은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설정돼 있어 자의적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이 실체적 위험이 없는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형량을 적용해 개인의 자기검열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즉,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위터에 북한을 희화하하는 글을 올렸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재판까지 받은 박정근씨는 이후 트위터에 글 하나를 올릴 때도 훨씬 조심하게 됐다고 한다.
야권에서도 폐지 목소리 쏙 들어가
박근혜 시대 종북몰이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다. 재판과정에서 이 의원이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내란을 선동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지 않음에도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종북의 숙주로 이미 낙인찍힌 지 오래다.
물론 검찰이 이 의원의 자택에서 김일성 찬양 문건이 담긴 CD를 발견하는 등 그가 국가보안법으로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내란음모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현존하는 위협이 없는 사건을 국정원이 부풀려 종북몰이에 이용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미 국정원은 박정근 사건,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가짜 간첩사건과 2012년 대선개입으로 신뢰를 잃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국회에선 국정원 개혁특위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엄벌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거의 사라졌다. 민주당, 진보당, 안철수 진영 어디도 국정원 개혁을 말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종편 채널A에 출연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였던 자신의 생각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지금 이대로 좋은가’라는 물음은 남는다. 안철수 의원도, 정대세도, 박창신 신부도 북한에 이로운 행동을 했다는 추정만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보수세력은 다시 이를 근거로 종북몰이를 재확산시키고 있다.
종북몰이의 원천인 국가보안법을 손보지 않은 상태에서 종북몰이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