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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는 ‘낙하산 집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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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출신들 고위직에 포진… 민간자율규제기관 설립 취지 무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제2금융권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금융투자협회(금투협)에 기획재정부(기재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금감원) 등 힘 있는 경제부처 출신이 대거 포진해 ‘낙하산 집합소’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 위원장(새누리당)이 금투협으로부터 제출받은 ‘금융투자협회 임직원 경력 현황’ 등에 따르면 민간기관인 금투협의 임원 3명 중 2명이 기재부와 금감원 출신이다. 남진웅 상근부회장은 기재부 출신이며, 박원호 자율규제위원장(부회장급)은 금감원 출신이다. 임원뿐만 아니라 부장급 이하도 꽤 있다. 정모 파생상품지원부장과 김모 자율규제기획부 과장이 금융위에서 왔다. 김동철 자율규제본부장과 이모 채권부장, 이모 증권지원부장은 금감원 출신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투자협회. | 권순철 기자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투자협회. | 권순철 기자

정부 출신 인사가 금투협 고위직에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회장의 사인만으로 임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투협의 실질적인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상근부회장만 해도 인사추천위원회 같은 별도의 논의기구 없이 회장이 단수로 추천하고, 총회에서 추인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금투협 상근부회장 자리는 기재부 출신 관료들의 몫이 돼 왔다. 남진웅 상근부회장(2대 부회장) 전의 초대 부회장도 기재부 출신이었다.

금투협은 주로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등 회원사 상호간의 업무질서 유지 및 공정한 거래 확립과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난 2009년 민간자율규제기관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금투협 요직을 경제부처 출신 인사들이 장악함에 따라 순수 민간자율규제 기관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정도가 됐다. 회원사 간 과당경쟁 등 규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금투협 내 자율규제위원회의 경우 금융위 및 금감원 출신이 4명이나 포진하고 있다. 위원회에 교수 등 외부 출신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금투협 임원들 고액연봉·성과급도 논란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금투협이 제2금융권의 자율규제기관으로 지정됐으면 상징적으로라도 전문가 등 최소한의 인원은 외부에서 충원했어야 옳다”며 “금투협과 경제부처의 유착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자율규제 과정에서 정부와 업계의 논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금융위·금감원 출신이 업계의 이익이 아닌 정부의 논리를 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 등 회원사들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회비로 운영되는 금투협 임원들에 대한 고액 연봉과 성과급 지급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박종수 금투협 회장의 연봉은 5억3200만원으로 이 중 2억5000만원이 성과급이었다. 남진웅 상근부회장은 성과급 1억2600만원을 포함해 3억63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성과급은 회원사 사장들로 구성된 임원보상위원회에서 정해지는데, 객관적인 지표가 아닌 업계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했는지 등 주관적 판단이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대한 의전도 최고 수준이다. 회장은 개인비서 3명을 두고 있고 고급 차량(에쿠스 3800㏄)도 주어진다. 상근 부회장도 개인비서 2명과 의전차량(체어맨 3200㏄)을 지원받고 있다.

전임 회장에 대한 전관예우도 깜짝 놀랄 수준이다. 금투협 회장은 퇴직 후 1년 동안 고문의 예우를 받는다. 고문에게는 월 500만원(연 6000만원), 단독 사무실, 개인비서, 차량(에쿠스 3800㏄), 차량유지비(월 110만원), 운전기사 등이 지원된다. 이에 대해 금투협은 은행연합회 등 다른 금융권 협회들도 실정은 마찬가지라고 항변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관료 출신이 협회에 있으면 세제문제 등 업계의 요구를 정부에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또한 실무 경험이 있는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외부 전문가들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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