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대위원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훤칠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나온다.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다. 최근 30년 가까이 봉직한 중앙대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새 정부의 하마평에도 올랐지만 정작 입각하지 못해 상심이 커서 얼굴이 까칠할 줄 알았는데 신수가 아주 훤해졌다.
청와대나 각료의 인사시스템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각종 공공기관의 장들 인사는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인 요즘, 새누리당 총선 당시 비상대책위원회는 물론 박근혜 대선캠프 정치쇄신위원장을 지낸 그는 글과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하고 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이상돈 “박대통령 국민사랑 받으려면 공공분야·대학교육 개혁해야”](https://img.khan.co.kr/newsmaker/1025/20130507_1025_26_1.jpg)
남들은 평생 걸려도 되기 어렵다는 정교수직을 왜 던졌나요. ‘폴리페서’란 비난을 받기 싫어서인가요.
“제 얼굴이 정말 좋아지지 않았어요? 교수 그만두고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서 그렇습니다. 3년 전부터 자발적 명예퇴직을 고려하고 있었어요. 여러 가지로 피로감이 컸거든요. 무엇보다 대학교수로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1997년 무렵까지만 해도 중앙대 법대를 졸업하면 고시에 합격하지 않아도 대부분 취직을 했죠. 그런데 이젠 제자들이 취업도 어렵고 미래도 불투명한데, 선생으로 그 아픔과 고통을 공감만할 뿐 해결해주지 못하니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셨는데 서운함은 없나요. 생체리듬도 달라질 텐데요.
“매일 정시 출퇴근하던 직업이 아니라 큰 변화는 없어요. 제 퇴임 기념으로 제자들이 헌정 논문집을 만들어준다는데 제 경력을 더듬어보니 그동안 교수로서 100여편의 논문을 썼고, 3편의 학술서와 2편의 교재, 일반서적 9편을 펴냈더군요. 퇴직을 결심한 전후 한 달을 짐 정리하는 데 보낼 만큼 자료도 많고 추억도 많죠. 하지만 충분히 할 만큼 했고 이젠 교수가 아닌 학자로서 살아야죠.”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말 맹활약했는데 왜 입각을 못하셨나요.
“그건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죠.(웃음)”
일각에선 너무 호된 시어머니 노릇을 해서 당이나 박 대통령 측근에 적이 많아서라고도 하고, 또 일각에선 김종인·안대희 등 3인방을 패키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자리나 권력욕 때문에 지난 총선과 대선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문제를 떠나 이번 각료들의 면면을 보면 참 걱정스럽습니다. 과장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장관을 시키고, 기자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전직 언론인을 대변인으로 내세우고…. 인사는 정권의 컬러와 의지를 내보이는 상징적 의미도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는 개혁성향의 특보를 뒀고, 한완상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이 있었죠. 김대중 정부 때는 천용택 이종찬 김중권 등을 포진시켜 안정감을 주는 데 성공했고, 노태우 정권 초기 내각에도 무게감 있는 강영훈 총리가 있었는데. 현 정부에서는 개혁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요”
2007년에도 이회창 후보 캠프에 자문을 해줬고, 미국 대통령을 심도 깊게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 어떤 이들이 대통령이 되던가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미국 대통령에 관해 다룬 <대통령직의 저주>가 인상 깊었어요. 직선제 대통령의 경우 선출과정이 너무 소모적이고 너무 대중지향적이어서 정작 실력 있는 인물이 대통령이 못된다는 겁니다. 한 정당의 후보로 뽑히기 위해서도 경선 비용이 너무 많이들고, 정작 당선되는 사람은 실력이 있는 사람보다 연설을 잘 하거나 대중적 매력도가 높은 사람이에요. 백악관 인턴과 성추문을 일으킨 철없는 클린턴, 정보부족과 오판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중연설의 달인 오바마는 그 많은 미국 인구와 후보 가운데 다 재선에 성공했어요. 대통령의 무능함이 초래한 경제위기나 전쟁 등으로 자국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비극으로 몰아갔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가요.
“YS와 DJ는 이념이나 성향을 떠나 그래도 국민들이 대통령 어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히 우습게 보는 이들이 많죠. 만약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다면 우리나라도 대통령 제도에 대한 개편을 심도 깊게 논의해서 개헌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지만….”
성공적이거나 모범적 대통령이 되려면 필요조건이 뭔가요.
“첫째 훌륭한 인재를 기용하고, 둘째 각료들이나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고 국민들과 잘 소통해서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불통의 이미지를 벗으려면 무엇보다 기자회견을 자주 해야 합니다. 국민 소통 창구가 언론이니까요. 레이건 대통령은 각료와 참모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때론 눈을 감고 들어서 레이건이 회의 중에 잠잔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레이건, 여기 잠들다’란 팻말을 붙여야겠다며 웃어넘겼죠. 또 기자들의 송곳 같은 질문에도 유머로 답해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했고요. 다시 강조하지만 훌륭한 인재를 기용해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보와 식견으로 위기관리가 가능합니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는 예고된 사고였어요.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CIA와 FBI가 알 카에다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당시 성추문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문제 등으로 흘려들었어요. 아들 부시 대통령 때 안보담당과 국무장관을 지낸 라이스는 러시아 전문가이지 알 카에다 등에 대해선 문외한이고 정보도 없었답니다. 대통령의 참모는 자기 의견을 내기보다 주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 청와대 수석이나 내각의 면면을 보면 전혀 기능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이상돈 “박대통령 국민사랑 받으려면 공공분야·대학교육 개혁해야”](https://img.khan.co.kr/newsmaker/1025/20130507_1025_26_2.jpg)
박근혜 정부 두 달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긍정적인 점은 박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부정부패를 안 할 사람, 사심 없는 사람이란 신뢰를 받는다는 겁니다. 정치인이 그런 신뢰를 받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부정적인 면은 인사계통이나 의사결정과정이 걱정스럽다는 겁니다. 과연 여러 가지 국정 현안의 검토사안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반영되는지도 의심스럽고, 대통령이 참모나 장관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하고 경청을 해서 결정을 내리는지도 모르겠어요. MB 때는 첫 내각에서 여성부나 환경부 등 솔직히 주요 부처가 아닌 장관이 부적격으로 판명되었지만, 이번엔 총리를 비롯해 국방, 법무 등 주요 부처 장·차관 후보가 낙마했고,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들의 경우엔 최악의 인사라는 평을 듣잖아요.”
박 대통령은 원칙주의자여서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라고 하던데요.
“그런 이미지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을 겁니다. 다만 공약의 이행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징벌적 과징금 제도의 경우 법학자인 제 소견으론 법치주의 국가에서 문제가 있고, 복지공약인 부채탕감도 대체 어디까지 해주느냐에 따라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대선 때 정치쇄신에 가려 공공분야, 공기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는 거예요.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대체 공기업, 공무원들은 무얼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스가 장수국가라기에 올리브와 토마토를 많이 먹어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족들이 노인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신고를 안 해서 호적상에 100살 이상 생존자가 많다고 하더군요. 이탈리아의 경우도 나라에서 학비를 다 대주니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 <예수 성배의 방향에 관한 논고> 같은 논문이 수백편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금보다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는 실정인데, 대체 이 보험이 제대로 쓰이는 것인지, 실용적으로 관리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런 어젠다가 이번 선거에서 빠졌어요.”
그래도 공기업은 젊은이들에게 꿈의 직장이고 근무자들에겐 신이 내린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인데요.
“공무원과 공기업 사원이 선망 대상인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우니 자연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습니다. 박 대통령의 덕목 중 하나는 국민에게 인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믿음을 준다는 겁니다. 선친 박정희 대통령도 조국근대화를 위해 개인의 자유나 민주화를 좀 억제하자고 요구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IMF사태 때 금모으기 운동을 펼치며 인내를 요구했지요.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 공무원들에게 인내를 요청해서 공공분야를 개혁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칼을 휘둘러야죠. 우리 정부 부채가 900조원인데 공기업 부채가 500조원이에요. 각각의 공기업이 과연 필요한가부터 논의돼야 합니다.”
반값등록금이나 무상보육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등록금보다 강도 높은 대학개혁이 우선입니다. 제가 30년 대학교수 생활에서 박사학위 논문 지도를 해준 것이 딱 2건이에요. 대학의 문제는 등록금도 그렇지만 석사·박사 등 학위를 남발하는 겁니다. 논문 지도를 많이 해야 교수 평점도 올라가요. 특수대학원 등에서도 석사학위를 인정해주니 논문 표절이 성행할 수밖에 없어요.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럽에선 대학등록금이 아예 없다고 하는데, 유럽은 고등학교 졸업 때 엄격한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30% 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엘리트들에게 국가가 지원해주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전문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면 정년 무렵에 소득수준이 비슷해지는 것이 유럽입니다. 그저 등록금 가격만으로 비교해선 안 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정부가 공공분야의 개혁과 대학교육 개혁을 우선과제로 삼아야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거예요.”
국민 지지도가 높아지려면 강도 높은 개혁과 더불어 지난 정권의 과오나 실패에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들은 정의와 진실을 원하니까 당연하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9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인 것 역시 하나회 척결, 전두환 대통령 구속 등으로 국민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덕분입니다.”
최근에 환경부가 4대강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던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의혹도 밝혀져야죠. 환경전문가여서 특히 관심이 클 텐데요.
“제가 환경법학자로서 1991년 해양부 발족을 위한 TF팀에 참여했습니다. 해양부 발족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거든요. 계속 연구·검토하다 1994년 시프린스 사건이 터져 국민 여론이 환기되고 난 후에 1996년에야 해양부가 탄생했어요. 정부 부처는 이렇게 성숙된 분위기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4대강의 경우 생태계 등 환경문제도 중요하지만 왜 4대강에 그토록 집착했는가를 따져 각종 의혹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4대강 사업에 정부에서 22조원, 수자원공사에서 8조원 등 33조원 이상의 돈이 들었어요. 국방비로 환산하면 아파치헬기 36대 구입비가 1조8000억원 정도이니 33조원이면 얼마나 큰 액수입니까. 또 이건 경제처럼 상황에 따라 양적 완화나 긴축을 하는 유동적 문제가 아니라 가장 명백한 과학의 문제예요. 왜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토목계의 전문가까지 1년 만에 정반대의 의견을 냈는지 이제라도 그 과정과 배경을 규명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책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미국 정치 관련 책 가운데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 정치 변화를 다룬 책 100권을 뽑아 정리해 가을쯤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1968년의 학생운동, 1979년 영국 대처 총리와 호메이니의 소련 침공, 1989년 등 역사에 큰 변화를 준 해들이 있었지만 2001년 9·11 테러는 미국 정책전문가들이 시아파나 이란 득세를 감지하지 못해 세계를 불행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이 책들은 졍책전문가가 왜 필요한지, 리더의 결단과 책임감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줄 겁니다. 대통령만큼 그 측근들이 국민행복에 영향을 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언을 하는 이들을 싫어한다지만 언론이나 국민들은 냉철하고 정확한 쓴소리를 좋아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단순한 진리를 박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알아야 할 텐데….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