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지금이 시민사회진영의 세대교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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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운동의 현실을 진단하고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의 전망을 살펴보기 위해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을 만났다. 길게는 이명박 정부 5년, 짧게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시민사회운동이 직면한 한계와 공백을 해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이 처장은 새로운 운동의 동력을 찾는 지점으로 ‘현장’을 강조했다.

이 처장은 정당을 비롯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 민주진보진영 전체의 역량이 저하된 시점에서 현장 중심의 네트워크가 보수진영과 경쟁할 수 있는 동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본래의 자리에서 정책적 전문성을 강화했을 때에만 정치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새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년은 사회적 갈등이 분출된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특권과 공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적 상식이 흔들리는 경험을 겪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문만은 아니고 이전 정권부터 누적된 사회적 갈등의 결과다. 또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어서 세계적으로도 공안기구가 강화하고 검열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등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을 겪었다. 결국 그 반작용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진보적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열망이 분출됐고, 당시 대선후보들도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복지 확충 등을 사회적 의제로 받아들이는 합의가 이뤄졌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복지·경제민주화 등에 관한 합의가 박근혜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의 문제인데.
“대선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이미 공약으로 확인됐다. 다만 공약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실행할 의지와 주체가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존의 성장 위주 담론과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다룰지는 미지수다. ‘탈 이명박’을 공언해 당선됐으니 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는 ‘쇄신한 보수’의 모습을 보일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후보 때와는 달리 대통령이 된 후의 국정은 여러 파트너들과의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쇄신에 걸맞은 인사를 발굴하지 못하면 오히려 악화할 소지도 있다.”

보수정권이 연장된 만큼 시민사회운동의 쇄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 보니 내가 여러 단체의 사무처장들 중 가장 나이가 많더라. 연령으로 봤을 때 지금이 시민사회진영의 세대교체기로 봐도 좋을 것이다. 정치권으로 빠져나간 인물들의 자리를 다음 세대에서 채워가는 중이다. 지금 상황은 노동·복지·생태·평화 등 각 분야 단체들의 연대와 네트워크가 절실한 상황인데,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그 네트워크를 엮어가는 것이 과제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갔다. 조직 차원의 공백을 느끼진 않았나.
“사람이 빠져나간 공백도 있지만 실제로 많이 체감한 것은 사회운동 힘의 총량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대선 전까지 범민주진영에서 정권을 바꿔야겠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움직였지만 결국 승리하진 못했다. 어느 대선보다도 노동과 민생 이슈가 많이 터진 대선이지만, 민주노총이 대선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사회운동 출신 인물들도 정치권으로 이동하면서 현장 중심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해 힘의 총량이 부족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정치권으로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
“지금까지 정당은 구조 변화와 쇄신을 위해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하고 시민사회는 그 인력의 일부를 공급했다. 이번 대선에서 그런 움직임이 정점을 찍었지만 그 방식이 크게 성공적이진 않았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걸 막을 필요는 없다. 다만 시민운동은 정치보다는 자기를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치권으로 보낼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더 본연의 풀뿌리식 전문성을 키워야 현장의 목소리를 사회적 대안으로 옹호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당이 취약해 시민사회단체가 준정당의 역할까지 맡은 한국 정치구조 전반의 한계다.”

현장을 중시하다 보니 정책적 의제를 다루는 역량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만 봤을 때 실제로 사회정책을 다루고 의제를 개발하는 역량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고 본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문제는 물론이고 주거·부동산·중소상인 문제 같은 민생문제도 참여연대가 계속 콘텐츠를 제공하고 의제화하도록 노력해 왔던 주제다. 그렇지만 사회운동이 다변화하고 시민 스스로도 개인 미디어를 통해 다양하게 참여하는 일이 활성화하면서 예전과 같은 개척자의 입장을 유지하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젠 창발성만으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예를 들면 ‘검찰 보고서’처럼 심층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주제를 전문적이고 안정적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중앙정치 참여 대신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자치단체의 행정과 융합할 수 있는 모델은 고려하지 않나.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지자체에서 참여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역할도 어느 정도 필요할 테지만 그 역시 실패하면 심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 같은 거대 지자체가 아니라 보다 풀뿌리로 가서 구의원이나 동장·통장 같은 역할을 시민참여 방식으로 수행하는 예도 있긴 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자체나 지방의회의 행정과 시민운동 간의 융합이 그리 간단하지 않고, 각각의 조직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파트너 관계를 맺는 정도로 양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올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 ‘2013년 체제’ 논의를 이끌어온 시민사회운동도 위축될 수 있는데 보다 명확한 비전은 있는가.
“이미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만들어져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책의 속도와 폭, 우선순위에 대한 경쟁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1987년 체제가 민주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시작된 시기는 노태우 정부부터였던 것처럼 2013년 체제도 박근혜 정부와 함께 시작한다고 해서 그 체제가 오지 않을 것이라곤 볼 수 없다.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정당과 여러 시민사회단체 간 소통창구 역할을 맡아 분산된 정책들을 묶어 현장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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