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본 박근혜 당선인의 대변인 관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남자 공동대변인은 모두 4명이었다. 안형환·박선규·이상일·조해진 대변인이다. 이들 중 박선규 대변인만 당선인 대변인에 발탁됐다. 박선규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차관직까지 오른 친이계 인사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으로 투입된 것도 선거 막판을 향해가던 2012년 10월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친이계인 박선규 대변인을 당선인 대변인에 임명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그게 바로 박근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공동대변인 중 박선규 대변인은 비교적 공격적인 논평을 많이 했다. 선거 기간에도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상대 진영과 공방을 벌이는 역할을 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선인의 역대 대변인 인사를 보면 박 당선인이 ‘싸움을 걸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현·전여옥 등도 공격형 대변인
연일 대변인 자격 논란을 빚고 있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탁됐다는 분석이다. 윤 대변인은 임명되자마자 선거 기간 중에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을 향해 ‘정치적 창녀’라는 막말을 했던 것이 논란이 됐다. 당시 윤 대변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덕룡 전 원내대표,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이 문 후보를 지지한 것에 대해 “수많은 ‘정치적 창녀’들이 나요, 나요 하며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게 뻔하다”며 수위를 넘는 막말을 했다. 정치권과 언론계를 수시로 왔다갔다 했던 ‘폴리널리스트’ 전력도 문제가 됐다. 극단적인 표현과 기회주의적인 행보를 보여온 윤 대변인을 인수위 대변인으로 등용한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당선인의 최측근이 윤 대변인을 추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박근혜 당선인이 윤창중 대변인이 쓴 칼럼 등을 수년간 눈여겨봐 왔고, 평소 윤 대변인의 글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윤 대변인이 임명된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변인이 2009년에 썼던 칼럼에서 밝혔듯이, 박 당선인이 2009년 윤 대변인을 따로 불러서 만난 것만 봐도 그때부터 이미 점찍어 놓았던 인사였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2009년에 박 당선인이 이미 이 사람은 이런 용도로 써야겠다고 마음에 둔 것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박 당선인이 야권과 언론에서 거센 비판이 나올 것이 불보듯 뻔한 인사를 대변인으로 염두에 두고, 당선되자마자 그를 중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누리당 전 선대위 관계자는 박근혜 당선인이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동시에 상대 진영의 공격을 받아내는 ‘총알받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대변인으로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그 관점에서 윤창중 대변인은 적격이라는 것이다. 이정현 인수위 정무팀장이 지난 대선에서 공보단장을 맡고 오랜 기간 ‘박근혜의 입’으로 불려온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이정현 전 공보단장은 선거 기간 중 거의 매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상대진영이었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는 발언을 했다. 이정현 전 공보단장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상대진영을 향해 ‘정치가 아닌 구걸’이라는 거친 표현도 많이 써 네거티브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정현 전 공보단장 이전에는 박근혜 당선인 주변에 전여옥 대변인과 한선교 대변인이 있었다. 이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던 시절에 당 대변인을 지냈다. 이들 역시 대변인 기간 중 거침없는 언행으로 ‘막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프레임 전환·지지층 결집 효과 노려
박근혜 당선인이 계속되는 ‘논란’을 무릅쓰고 ‘거침없는 공격형’ 또는 ‘막말형’ 대변인을 임명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 번째가 ‘프레임의 전환’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대변인들의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프레임을 전환해 상대진영의 계속되는 공격을 차단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월 5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긴급브리핑’을 그 예로 들었다. 윤 대변인은 긴급브리핑을 통해 인수위 인사에 대해 비판하는 야당을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비판했다. ‘긴급브리핑’까지 하며 야당의 비판을 반박하는 것에 대해 비난이 일었지만, 이 브리핑을 통해 인수위원 인사가 ‘아직까지는 무난한 인사였다’는 평가를 끌어내는 전환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 전환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야당 측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자, 이정현 당시 공보단장은 문재인 후보 측에 후보가 안 될 경우 선거비용보전금을 반납하는 ‘먹튀방지법’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투표시간 연장’이라는 야권의 명분을 ‘선거보전비용 먹튀’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 전 단장은 자신의 말을 번복해야만 했다.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정현 전 단장이 ‘사고를 쳤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공격적인 대변인들의 말이 지지층 결집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치적 창녀’와 같은 윤 대변인의 ‘막말’이 새누리당 주요 지지층인 60~70대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 기간 중 윤 대변인이 TV에 나와서 한 발언이 물론 문제가 됐지만, 60~70대에게는 통쾌감을 주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대변인으로 선임하면서 이들 지지층 사이에서는 ‘박근혜가 뭘 좀 알아’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정권 초기에 지지층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변인 인사는 당장의 정치적 효과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정치문화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표현과 과잉된 수사는 사안의 본질을 가리고 소모적인 갈등만 불러온다는 것이다. 특히 현 인수위에서 윤창중 대변인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방적인 전달과 공격적인 발언은 소통의 문제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변의 지적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마저 “이 말 저 말 나오는 게 당장은 시끄럽게 보이지만 그게 다 민주주의의 한 요소”라며 “지금 같은 식으로 고압적이고 일방향적으로 하다 보면 언론이 관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는 “기본적으로 알리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두려워서 계속 통제를 하게 되면 반소통적으로 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