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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TV토론, 이번엔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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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홀 미팅’도입 등 개선 없어 ‘17대 최악토론’ 반복될 수도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 이번에는 달라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다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형식상 과거 17대에 비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물론 대선후보자 토론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실제 후보등록이 이뤄지는 11월 25~26일이 지나야 최종 초청 대상 후보자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NLL과 정수장학회 등을 중심으로 이슈가 형성돼 있지만, 한 달 뒤 이슈가 어떻게 될지 역시 아직 알 수 없다.

지난 2007년에 열린 17대 대선후보 TV토론은 토론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모두 16대보다 퇴보한 토론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2007년 12월 11일 여의도 MBC에서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 앞서 참석한 6인의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007년에 열린 17대 대선후보 TV토론은 토론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모두 16대보다 퇴보한 토론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2007년 12월 11일 여의도 MBC에서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 앞서 참석한 6인의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0월 중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이하 토론위원회)는 18대 대선후보자 토론회 일정을 확정해 발표했다. 토론위원회의 일정표에 따르면 참가자 최종 확정은 11월 27일 이뤄진다. 초청 대상은 공직선거법 82조 2항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①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 추천 후보자 ②직전 대통령선거,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시·도의원 선거, 비례대표 자치구 시·군의원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 추천 후보자 ③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 100분의 5 이상 후보자다. 현재까지 출마의사를 밝힌 대통령 후보 중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후보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이정희·심상정 등 5인이다. 만약 이들이 모두 참여한다면 역대 대통령 후보 토론 방송 사상 초유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소위 보수로 분류되는 후보는 박근혜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진보 또는 중도진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보수후보 한 명을 둘러싸고 네 명의 후보가 협공을 가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다.

‘보수1 대 진보4’ 토론 열릴 수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미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대로 확정된다면 2007년도 대선후보자 토론회하고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정성호 동명대 언론영상광고학부 교수의 진단이다. 대선후보자 토론이 제대로 되려면 일정한 선에서 토론 참가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대선후보 TV 토론이 시작된 1997년 이래, 역대 대선에서 TV 토론을 연출해온 KBS 김찬태 PD는 아예 토론에 참여하는 후보자가 몇 명인가의 문제가 “TV 토론의 성패를 결정하는 상수”라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6명의 후보가 들어갔던 2007년 17대 대선후보 토론은 오히려 16대 후보 토론보다 더 퇴보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난 9월, <속지 않는 국민이 거짓없는 대통령을 만든다>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지난해 가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정치인이 되는 길’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들은 한국 유학생들이 공동집필한 것이다. 이들 집필자는 미국대선 토론에 비해 형편없는, 특히 2007년 한국의 대선 토론을 보면서 놀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책에서 인용한 한국 대선후보 토론의 수준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그렇습니다. 오늘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께서는 어떻게 그냥 전쟁을 하러 나온 것 같습니다. 평화주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조금 전에 대한민국 검찰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자의 이야기를 믿고 대한민국 검찰은 믿지 않는다, 대한민국 검찰을 누가 임명했습니까? 정동영 정권,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들을 믿지 않는다면 혹시 북조선 검찰이 와서 조사했다면 믿겠습니까. (중략) 어떤 분은 저를 보고 왜 일관되지 않았느냐, 제가 인터넷을 쭉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 했는지 압니다. (중략) 제대로 보시면 일관된 정책입니다.”(2007년 12월 6일 한국 1차 대선 토론)

문장의 주술구조도 맞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에 “제대로 보면 안다”는 식의 답변은 제대로 된 토론이 아니라는 것이 책의 관점이다. 북핵문제를 물어보는데 BBK 이야기만 줄기차게 하고 있는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발언도 마찬가지 문제사례로 인용된다. 참고로 이 토론은 지금도 중앙선거토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를 할 수 있다.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은 한국 대선후보 TV 토론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비교사례로 흔히 거론 된다. 사진은 지난 10월 16일 열린 미국 대통령 후보 2차 토론회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롬니 공화당 후보와 오바마 민주당 후보. | AP연합뉴스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은 한국 대선후보 TV 토론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비교사례로 흔히 거론 된다. 사진은 지난 10월 16일 열린 미국 대통령 후보 2차 토론회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롬니 공화당 후보와 오바마 민주당 후보. | AP연합뉴스

이에 비해 미국 대선후보 토론은 다르다. 치열한 논리싸움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토론 결과가 실제 대선 결과와 직결된다. 올해 치러진 오바마와 롬니의 대선 토론도 그렇다. 1차 토론에서 롬니가 판정승한 것으로 평가되자, 실제 지지율이 3~5%가량 요동쳤다. 이슈에 대해 후보자의 입장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자의 질문도 날카롭다. 반면 한국의 대선토론 사회자는 시간만 잴 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국 TV토론이 밋밋한 이유
“사회자:…구상하고 계신 사회 투명성 제고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 시간은 1분입니다.” (2007년 12월 11일 한국 2차 대선 토론)

“사회자:…효율적인 토론 진행을 위해 후보자들께서는 가급적 토론 주제 범위 안에서 발언해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 (중략) 다음 이인제 후보부터 차례로 반론을 1분씩 해주시기 바랍니다.”(2007년 12월 6일 한국 1차 대선 토론)

왜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을까. 정성호 교수는 “사회자가 실제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법정 토론에서는 사회자가 어떤 코멘트를 다는 경우 편파성 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계적 공평성에 집착하다보니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연구가 지난 9월 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특별 학술세미나에서 나왔다. 한국 대선후보 토론 TV 영상과 미국·일본의 선거 TV 영상을 비교분석한 자료다. 다양한 시점샷이 활용되고 특히 방청객 앞에서 토론을 하는 미국이나 클로즈업을 과감히 사용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방송 토론 영상은 토론 영상이라기보다 연설 영상에 가까우며, 특히 두 사람의 토론을 한 화면에 잡아 보여주는 영상은 전무했다. 해당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호은 청운대학교 방송영상학과 교수는 “두 사람이 한 화면에 나와서 상대방의 발언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은 TV 토론의 ‘백미’에 해당하는데, 그런 장면이 없다는 것도 대선후보 토론이 재미없는 중요한 이유”라며 “사실 미국도 후보자들이 TV의 시점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많지만, 한국의 경우 후보자들의 눈치를 너무 보는지 기계적 공평성에 집착하다보니 대선후보 토론 화면이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대선후보 방송 토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제언은 이미 많이 나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 대선후보 토론이 재미있게 되기 위해서는 ‘타운홀 미팅 방식’의 도입을 주장했다. 즉 대선후보 토론자들이 세트장에서 밋밋하게 카메라만 바라보며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투표할 유권자들을 자리에 앉혀놓고 그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한편,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사회자의 질문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나, TV 토론 참가자 후보 수의 제한 역시 계속 나오는 지적사항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되었을까.

중앙토론위원회, 제 역할 하나
대선후보 TV 토론회 관련 일정 및 주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결정한다. 지난 2004년 만들어진 토론위원회는 대선뿐 아니라 총선, 지자체 선거 등 각급 방송 토론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한다. 토론위원회의 위원들은 여야 정당(새누리·민주통합당), 공영방송사 2곳, 시민단체와 법조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추천으로 구성된다. 현재 위원은 11명. 대선 토론의 큰 주제, 예를 들면 첫 번째 토론회는 ‘정치·외교·안보·통일’, 두 번째는 ‘경제·복지·노동·환경’과 같은 주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 세부 주제, 이를테면 개헌문제나 대북정책까지도 토론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사회자의 선정 권한도 토론위원회에 있다. 토론위원회 사무국 관계자는 “공직선거법이 여야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개선방안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도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년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타운홀 미팅’의 경우 소위원회를 구성해 도입 논의를 했지만 결국 “패널 대표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다수의견에 밀려 “최종적으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정리되고 말았다. 방송효과 제고를 위해서 타운홀 미팅 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한 민간위원은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위원들의 경우 각계의 추천을 받아왔지만, 최종적인 결과로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리스크 회피형’이 되다보니 결론도 보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송사 입장에서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찬태 KBS PD는 ‘후보 방송 토론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들었다. 오른쪽 하단에 나오는 ‘수화통역’이 실제 다양한 화면 구성을 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김 PD는 “수화방송의 위치 때문에 여럿이 나오는 풀샷의 경우 오른쪽에 있는 후보자가 가려지게 되며, 실제 양자토론 화면을 구현하기 힘든 것도 그 이유가 크다”며 “외국의 사례를 면밀히 살펴보았지만 미국을 포함해 선거방송에서 수화중계를 하는 경우는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관방장관이 나와서 담화를 발표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다”며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속지 않는 국민이…>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김상범씨는 “사실 대선후보 TV 토론에 대해 책을 쓴 이유는 제목에서도 보이듯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제시한 선거 TV 토론 개선방안이 대부분 실행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대선 토론이 길에서 확성기를 틀고 춤추는 것보다는 후보자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덜 왜곡된 방법”이라며 “특히 이번 선거는 지난 2007년과 달리 누가 일방적으로 앞서 가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대선 TV 토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비록 여전히 방송 TV 토론이 제한된 정보를 주는 데 그치더라도, 누가 더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질을 지닌 후보인지 검증하고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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