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4년마다 열리는 ‘국회 취업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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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임기 만료 앞두고 새 일자리 찾아나선 보좌관들 ‘구직전쟁’

지난 5월 2일 저녁 여의도 국회 앞 한 중국집으로 A대학교 동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는 국회의원 보좌진이었다. 술이 한 잔씩 돌아가자 여야 의원 보좌진은 한 명씩 차례대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고, 19대 국회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선후배 동문들에게 취업을 부탁했다. 이 동문회는 선배 보좌관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동료와 후배들에게 자리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 날 동문회에서는 선후배 보좌진이 마치 ‘취업박람회’를 연상케 할 정도로 열심히 구인·구직활동을 했다.

국회 보좌진이 업무를 보는 국회 의원회관. | 경향신문

국회 보좌진이 업무를 보는 국회 의원회관. | 경향신문

18대 국회 임기 만료일(5월 29일)을 2주일여 앞두고 국회 인근의 식당에서는 동문회 등 각종 보좌진 모임이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 서로 아는 보좌진끼리 바늘구멍 같은 국회 보좌진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국회의원 한 사람당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 7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턴 2명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다. 직급별로 보면 4급 보좌관(서기관급) 2명, 5급 비서관(사무관급) 2명, 6·7·9급 비서 각 1명씩이다. 이들은 별정직인 탓에 모시는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불출마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또한 모시는 의원이 총선에서 당선됐더라도 이 시기에 다른 의원실로 옮기기를 희망하는 보좌진도 많다. 국회에서는 4년마다 구직전쟁을 치른다.

현재 의원회관에는 2000여명의 보좌진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1000여명) 이상의 보좌진이 새로운 의원을 찾거나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총 300명(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이며, 이 중 18대 의원이었던 116명이 재선에 성공했다. 산술적으로는 184명의 의원이 보좌진을 신규 채용해야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올해 비례의원 보좌진 공채 비율 저조
특히 올해는 보좌진으로 입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여야 보좌관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보통 의원 당선자가 국회 홈페이지에 채용공고를 내는 형태인 공채와 친분관계 등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채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역구 의원보다는 비례대표 의원이 보좌진 수요가 많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총선을 같이 치렀던 참모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줘야 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은 정책전문가 2~3명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장 지역구 관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한 사람당 인턴을 포함해서 9명까지 신규로 채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19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공채 비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구인을 하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전체 54명 중 5명 미만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의 비례대표들이 비공개로 보좌진을 뽑았거나 찾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이 비례대표들의 보좌진이 비공개로 충원되는 이유는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의원들이 직접 비례대표 당선자들에게 데리고 있던 보좌진을 채용해달라고 부탁하거나 당직자들이 비례대표 의원실로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25명이 당선된 새누리당의 경우 일부 당직자들이 당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 보좌진으로 자리를 이동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당 사무처 근무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직원들 일부가 비례대표 의원실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들이 친박(박근혜)계 의원실 출신 보좌진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면서 공채 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친박계 출신 보좌진은 새누리당 대선 경선이 끝난 이후 ‘박근혜 후보 캠프’로 파견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몸싸움 모습. | 정지윤 기자

국회의원 보좌진의 몸싸움 모습. | 정지윤 기자

또한 대부분의 당선자들이 정책을 담당할 보좌진 채용을 미루고 있다. 아직 국회 원구성이 끝나지 않아 소속 상임위원회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국방위, 기획재정위, 외교통상통일위 등 16개의 상임위원회가 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보좌진협의회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채용시키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와 함게 동문회 등 각종 보좌진 모임을 통해서도 구직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보좌진협의회(새보협)는 구직을 희망하는 보좌진으로부터 이력서와 전문분야 업적을 작성한 두 가지 서류를 제출받았다. 새보협은 비례대표 의원 등 19대 총선 당선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당선자들이 면접을 보기를 원하는 보좌진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예를 들어 당선자가 국방전문가를 원할 경우 국방 관련 업적을 제출한 보좌진을 연결,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명의 당선자들이 새보협을 통해 보좌진 채용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규 새보협 회장(유승민 의원 보좌관)은 “국회 보좌진은 그동안 실무능력 등을 통해 전문분야에서 검증받은 우수한 인재들”이라며 “이러한 고급인력들이 국회에서 채용되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능력에 따라 스카우트 ‘빈익빈 부익부’
민주통합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는 의원회관 8층 사무실에 취업지원센터를 개설하고 구직활동을 돕고 있다. 민보협은 현재 기존 보좌진으로부터 100여장의 이력서를 받아놓고 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게 민보협 측 관계자의 말이다. 대부분의 지역구 의원들이 선거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우선 보좌진으로 등록시키기 때문이다. 장성훈 민보협 회장(강기정 의원 비서관)은 “총선에서 선거를 도와줬던 사람들은 국회에 들어오면 정무파트를 담당하고, 기존 보좌진은 정책부문에서 전문가로 일한다”며 “일부는 외부에서 정책담당자가 신규로 채용되고 있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보좌진의 취업상황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 정책을 잘한다고 소문난 보좌진은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반면 존재감이 낮은 보좌진은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회 보좌진은 다른 정부 부처의 같은 직급 공무원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연봉은 대략 4급과 5급이 7000여만원, 6000여만원을 받고 있으며, 말단인 9급의 연봉도 3000여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업무는 국정감사, 정부 예산 심의 및 결산 심사. 각종 특위활동, 정부 고위직 청문회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여기에 여야간에 첨예한 대치가 있을 때는 국회 본회장 앞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에도 동원된다.

보좌진은 각종 이익단체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비리에 연루되기도 한다. 한 보좌관은 “외부에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회 보좌진이 고상한 일만 하는 줄 알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18대 국회에서도 거의 매년 국회 보좌진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회 로텐더 홀에 가서 몸싸움을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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