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의원 야권단일화 경선 패배 후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다
졌지만, 이겼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현재 상황이다.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졌지만, 경선을 계기로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선이 끝난 후 속마음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했다. 박 의원이 <주간경향>에 처음으로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 공동 선대위원장으로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전망과 민주당의 미래를 들어봤다.
![[정치]박영선 의원 “요즘 정치를 하는 이유 더욱 고민 중”](https://img.khan.co.kr/newsmaker/947/20111025_947_32a.jpg)
서울시장 범야권후보 경선 패배 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이유가 뭔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박원순 후보에게 졌을 때, 그때가 침묵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박원순 후보의 발언이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언론은 피했지만, 국정감사 일은 계속했다.”
박원순 후보에게 졌지만, 당내·외에서 무게감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요즘 정치를 하는 이유가 뭔지 더욱 고민 중이다. 정치는 멀리에서 보면 멋있는 호수다. 가까이 다가가면 늪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 전까지는 한쪽 발만 늪에 담가 놓았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두 다리를 늪에 넣게 됐는데, 늪을 건널지 발을 빼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음 전당대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서울시장 경선에 나온 것은 전당대회를 대비한 게 아니다. 여러 가지를 고민 중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것이 ‘봉명성 울면’ 때문이라는데 무슨 뜻인가.
“민주당 내 486 주자들과 중국집 봉명성에서 만나 서울시장 경선 후보 출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중국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죽어도 안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가니까 친구 같은 의원들이 울면과 맥주를 시켜놓고 먹고 있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이 친구들은 대학 다닐 때나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함없이 ‘꼬질꼬질’하게 살아가는지, 가슴이 찡했다. 그곳에 있던 의원들이 내가 오니까 탕수육을 시켜준다고 하더라.(웃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꼈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공동 선대위원장이다.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박 후보 측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도 느낀다. 한나라당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하지 않고 있는데, 대응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강하게 지적하기를 바란다. 박 후보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에 차이가 별로 없다.
“선거라는 것은 51대 49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를 지지하는 시민이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는 시민도 있다. 더 이상 격차를 벌이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불임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면 입양을 한 자식도 자기 자식이다. 한나라당은 자신의 후보를 협소하게 보는 것이고, 민주당은 사랑을 확장시킨 것이다.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당원들이 박 후보를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당 당원을 투표장으로 모셔오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26 재·보궐선거에 가세했다. 공식선거운동 첫날부터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를 열심히 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내 지역구인 서울 구로구 벤처타운에서 지원유세를 했다. 내 지역구에 찾아온 손님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만났다. 구로공단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곳이라서 박 전 대표가 첫 유세지원을 구로로 왔다는데, 박 전 대표가 구로공단의 아픔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구로공단은 지방에서 상경해 일한 여성들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청계천에서 강제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아직도 주소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박 전 대표가 그런 아픔을 알까.”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미미한 영향은 있겠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 내부 분위기가 궁금하다. 박 의원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호흡이 잘 맞는다고 알려졌는데, 다음 전당대회 때 박 전 원내대표를 도울 것인가.
“지금 민주당에 두 가지가 필요하다. 박 전 대표처럼 호남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치상황을 노련하게 판단하는 분과 젊은 민주당을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균형이 깨지게 되면 또 하나의 일그러진 모습이 나온다.”
박 전 원내대표를 돕겠다는 건가, 아닌가.
“(웃음) 두 가지 축이 모두 필요하다. 만일 박 전 원내대표가 당대표가 되면 서포트 그룹은 젊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 전당대회에서 어떻게 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가장 큰 숙제가 ‘세대교체’다. 당내 저항이 많을 것 같은데.
“민주당은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민주당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국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의 변화는 해야 할 일이고, 해야만 한다.”
야권통합이 가능한가.
“야권통합이냐, 야권연대냐에 대한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민주당이 확장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상황이라면 서울시장 경선처럼 연대의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요즘 종합편성채널 때문에 말이 많은데, 종편의 출현을 어떻게 평가하나.
“종편은 언론인에게 상처를 남길 사건이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답답했던 순간도 많았다. 올바른 일이 아니다.”
박 의원의 정치적 목표가 궁금하다.
“요즘 기도를 많이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정의와 공정성,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방송기자는 내 꿈이었지만, 정치인은 내 꿈이 아니었다. 17대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내가 젊을 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18대 때는 나를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싶었다. 정치인이 된 후에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