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주장,
참여정부 시절 한·일정상회담 과정서
참여정부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이 한·일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외교통상부 관리들의 소극적 행태에 대해 증언하고 나섰다.
박 부원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외교부 협상 담당자들에게 고이즈미 총리가 2005년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정상회담에서 의제화하도록 지시했다”며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들은 이런 지시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2011년 10월 10일 한국미래발전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석구 기자
그는 “고이즈미 총리가 2005년에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직접적인 용어는 아니더라도 ‘불행했던 과거를 회상시키는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언어로 노 대통령에게 표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외교부 실무진으로부터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도록 정상회담에서 의제화하는 문제는 청와대가 나서 직접 협상해야지, 협상팀이 할 일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 한국측 협상 실무진은 외교부 아태국장과 일본과장이었으며, 일본측은 외무성 대양주국장과 북동아시아과장이었다.
박 부원장은 “우리 정부는 2005년을 을사늑약 100주년, 해방 60주년, 한·일관계 정상화 40주년 등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해로 판단했다”며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직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듣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2005년 한·일관계를 구상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노대통령 “신사참배 않겠다는 메시지 원해”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강제징용자 유골 반환 등에 합의했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 들어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2005년 2월 주한 일본 대사가 “독도는 역사적·법적으로 일본 영토”라는 발언을 한 데 이어, 일본 시네마현에서는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제정했다. 또한 같은해 3월에는 일본 경비행기의 독도 상공 진입 시도가 있었으며, 4월 5일에는 일본 ‘후소샤’ 역사교과서에 ‘독도는 역사적·국제법적으로 일본 영토’라고 기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외교부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정상회담에 의제화하라는 특별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적 견해로는 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협상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합의한다는 것은 어려운 사안”이라며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일본 정상(고이즈미)의 신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 같은 고도의 정치행위는 외교부 실무진이 협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당시 박 비서관도 실무협의를 통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최근 통일부 국감 참고인으로 나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당직자가 위조지폐의 유통 정보를 우리 사법기관이 아닌 미국 대사관에 알려줬으며, 이 당직자는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교상 기밀누설죄에 대해 징역 및 벌금조항이 있지만 적성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된 적이 없는데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가설명을 요구했다. 박 부원장에 따르면 2006년 초 A 의원이 남대문 시장 인근에서 암달러상으로부터 위조지폐로 보이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 이를 주한 미대사관 관계자에게 알렸다. 이에 따라 미 재무부 산하 위폐단속반이 한국에 들어와 조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를 간파한 우리 정부의 정보·사법기관이 미 수사당국에 이는 불법행위이자 국제법 위반행위임을 알리고 유감을 표시해 미 측에서는 손을 뗐다. 당시 우리 정보·사법기관에서는 위조지폐 판매상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이와 관련해 박 부원장은 “A 의원은 미국대사관 관계자들과 만나 두 차례 이상 회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부원장이 지목한 A 의원은 “박 부원장이 주장한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A 의원은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중국에서 무엇을 가져왔는데 조셉 윤 주한 미대사관 정무담당 참사관을 찍어서 소개시켜달라고 해 소개시켜줬다”며 “나중에 그것이 위폐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 의원은 “당시 검찰이 협조해달라고 해서 검찰에 모든 것을 말했다”며 “그와 관련해 내가 수사를 받은 적도, 처벌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내부회의 미국으로 전달”
박 부원장은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됐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위키리크스에 등장하는 한국의 정부 관리, 정치인, 언론인 등이 미국의 정보원(contact)이었다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동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위키리크스를 보면 참여정부 당시 내부에서 회의했던 부분들까지 미국으로 전달됐다”고 개탄했다.
박 부원장은 콘택트의 부적절한 행위가 한·미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던 박 부원장은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한국의 콘택트는 미국에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거의 정해진 것이 없다’ ‘의제 설정을 위한 실무협의도 예정돼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며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을 잘 모르는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접한 미국 측은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해줘도 냉소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콘택트들의 부적절한 정보 제공으로 미국 정부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인식을 부정적으로 심어준 결과”라고 분석했다.
박 부원장은 “‘중국판 위키리크스’가 터지면 한국 관리나 언론인들 중 중국 정보원들이 노출될 것이고, ‘일본판 위키리크스’가 나오면 일본 정보원들이 수없이 나올 것”이라며 “특히 공직자들은 사적으로 각국의 대사관 직원들과 만남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는 “공직자들이 무심코 준 정보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며 “미국에 정보를 주면 그 정보가 일본으로 갈 수 있고, 중국에 정보를 주면 그 정보가 북한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군사·안보문제와는 달리 기밀등급도 낮고 얘기를 상대적으로 쉽게 하는 편이어서 미국으로 더 많이 흘러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서 우리 측 고위관료가 미리 정보를 미국에 전달해준 사례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 부원장은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국가전략기획실 행정관(2003년),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2006~2008년)을 지냈으며, 현재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인 2008년 9월 출범시킨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