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협상 ‘김진표 리더십’ 놓고 당내 비판 거세
요즘 민주당 원내대표단을 놓고 말이 많다. 분란의 핵심에는 소속 의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진표 원내대표가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최근 김진표 원내대표,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대표단이 대여협상을 잘못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출범한 지 두 달도 안 된 김 원내대표 등 원내대표단을 과도하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진표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잇따라 터지고 있는 갈지자 행보 때문이다. 지난 6월 22일 저축은행 국정조사 요구서 합의 때 원내대표단은 민주당 정무위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당시 국정조사 요구서에는 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실, 검찰, 삼화저축은행 등에 대한 조사기관 선정이 빠져 있었다. 이를 놓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난 저축은행 청문회 때와 똑같다. 이 정도는 상임위 수준에서 할 수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 원내대표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민주당 정무위원들의 요구안을 한나라당이 과연 모두 받아들이겠느냐”며 민감한 부분을 뺏던 것으로 알려졌다.
‘KBS 수신료 인상’ 문제로 곤욕
다행히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정조사 계획서에는 민주당 정무위원들이 주장한 정·관계 로비 의혹, 검찰의 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등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보다는 정두언 위원장 등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원내대표는 ‘KBS 수신료 인상’ 문제를 놓고도 곤욕을 치렀다. 6월 28일 오후부터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한나라당의 KBS 수신료 1000원 인상안 처리에 대해 실력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KBS 기자들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한나라당과 당초 (인상안 처리에) 합의했던 것 아니냐”며 인터뷰를 시도했다. 한 의원은 이 같은 질문을 받고 난감했다고 토로했다. 틀린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6월 20일 국회 문방위 소위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기습처리됐을 때 김 원내대표는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으면 6월 국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한나라당에 강력히 경고했다. 하지만 이틀도 지나지 않아 22일 여야는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KBS 수신료 인상안을 6월 28일 오후에 처리하겠다”고 합의했다. 한나라당 이명규·민주당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28일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처리하고, 29일 또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노영민 부대표는 “민주당은 (표결 처리시) 물리적 저지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의 결정은 23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하루 만에 번복됐다. 이에 대해 천정배 최고위원은 “문방위에서 잘 싸웠는데 엉뚱하게 원내지도부가 ‘절대 몸싸움이 없을 테니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해버린 거다”라며 “이런 바보같은 ‘2중대’가 없다.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는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원내대표단을 비판했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6월 24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 문제로 사과하기까지 했다. 마치 지난 5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합의가 당내의 반발로 원점으로 돌아갔던 상황과 유사했다.
국회에서는 쟁점 현안에 대한 여야간 의사일정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여야 지도부가 의사일정을 합의했다는 것은 쟁점사항을 일정에 맞게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여야는 쟁점사항을 합의할 때 의사일정만큼은 쉽게 합의해주지 않는다. 주고받기식 협상에서 의사일정 합의를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것.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협상과정을 보면 원내대표단의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한나라당의 압박으로 피해갈 수 없었으면 ‘하겠다’는 식이 아닌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원내대표 측에서는 협상에서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원대대표단 관계자는 “여야 영수회담, 민생문제를 협의하는 여·야·정협의체 활동을 앞두고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며 “결과적으로 저축은행 국정조사, 여·야·정협의체 활동이 잘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여투쟁 선명성 부족 지적도
이 같은 민주당의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놓고 김진표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지난 박지원 원내대표 때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박 원내대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정국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지난 5·6 개각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장관 후보자 5명 모두가 리콜 대상”이라며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키겠다고 별렀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면죄부만 준 꼴이 됐다. 이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등을 낙마시켰던 박지원 원내대표 때와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일부에서는 대안 야당 원내대표로서 선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제1야당이지만 87석밖에 안 되는 소수당이다.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여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소수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과 싸움할 부분과 협상할 부분을 확실히 정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원내대표의 역할”이라며 “이런 점에서 원내대표단은 여당과 각을 세워 정책 방향을 확실히 잡는 것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는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온 김 원내대표의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김 원내대표 지지그룹에서는 의원들이 잘 따라주지 않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일례로 6월 22일 한나라당이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 문방위에서 처리할 방침을 세웠을 때 긴급 의원총회를 열기 위해 의원 전원에게 11차례나 문자를 보냈으나 참석하겠다는 의원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는 것. 정세균 최고위원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1표차로 강봉균 의원을 제치고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다. 지지세력이 엷고 대표인 손학규계가 아니라는 점이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최근 여야 쟁점 현안에 대해 당이 갈팡질팡한 책임을 김진표 원내대표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의원들이 비난의 화살을 김진표 원내대표에게만 집중시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당이 잘못 돌아가면 손학규 대표에게도 마땅히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