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인터넷대통령 ‘본좌’ 허경영의 명함](https://img.khan.co.kr/newsmaker/908/908_11a.jpg)
한 3주 전쯤인가, 이 코너에서 원래 다루려고 했던 사연은 ‘그’의 이야기였다. 취재를 다 마쳐놓고 난 다음 터진 게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통큰 치킨 사건이 터졌고. 기사 방향은 수정됐다. 뭐, 그의 불운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그런 말도 나왔다. 안상수의 연타석 홈런(‘보온병 포탄’에서 ‘자연산’까지)에 제일 큰 피해자는 바로 그, 허경영이라고. 수개월간의 공백 끝에 허씨는 야심작 ‘롸잇나우’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고 막 활동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안 대표의 발언으로 ‘묻혔다.’
어쨌든 2010년 끝자락에 그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이슈가 된 건 그의 ‘명함’이었다. 명함 앞면엔 ‘인터넷 대통령 본좌 허경영’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다. 그 밑엔 ‘제 15, 16, 17대 대통령 출마(2012년 18대 대선 출마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키포인트다. 발빠른 인터넷 언론사들이 이 명함을 근거로 “허경영, 18대 대선 출마”라고 보도했다. 뒷면에는 그의 공약도 적혀 있다.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축소, 무보수 명예직으로”라든지,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아시아 연방 준비”라는 공약은 실은 익숙한 그의 과거 공약이다.
명함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고교 1학년부터 전공 1과목만 시험, 수능 폐지’라는 공약이 특히 마음에 든다”는 평을 내놓았다. 아래의 음반 목록도 눈길을 끌었다. “콜미(Call me) 전국 1위”, “붉은 천사(Red Angles-오타는 명함에 나 있는 것임) 전국 1위”, “허경영의 롸잇나우(Right Now) 전국 1위.” 맞나? 허씨를 보좌하고 있는 박병기 사무총장에게 문의했다. 그는 기자의 메일로 ‘증거자료’를 보내왔다. 네이버 뮤직차트 2010년 12월 11일자 캡처다. 적어도 하나는 사실이었다. 아이유의 ‘좋은 날’, 티아라의 ‘yayaya’를 제치고 ‘롸잇나우(feat. 박병기)’는 TOP 100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낸 노래 ‘롸잇나우’를 들어보면 박 총장이 한 부분을 제외하곤 ‘콜미’의 재판이다. 이 역시 “내 눈을 바라봐/넌 건강해지고/허경영을 불러봐/넌 웃을 수 있고…”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그의 저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그가 출소한 후 비공식·공식적으로 두 번 인터뷰를 했다. 그는 출옥 직후의 인터뷰에서 “책을 준비 중인데, 4권짜리 <동방의 등불>이라는 제목의 책”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그는 <동방의 등불> 초안이라며 살짝 프린트된 페이지를 보여줬다. 그런데 그 내용 역시 이미 출간된 ‘무궁화 꽃은 지지 않는다’의 재탕이었다. 명함에는 저서 목록도 기재되어 있다. <무궁화 꽃은…>이나 <동방의 등불>은 그렇다 치고, <허경영의 공중부양 축지법>? <내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정말 저런 책이 나왔었나. 박 총장은 “그건 앞으로 나올 책들”이라고 답했다.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 허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연락을 취해봤지만 허씨의 휴대전화는 항상 통화중이거나 부재중이었다. 박 총장은 “현실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롸잇나우’를 내놓고 활동 중인데, 대선을 위해서 공연 다니는 것처럼 비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총재님이 폴리테이너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진정한 정치는 곧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소통이 아니겠는가. 공연해서 나오는 수익은 다 기부할 것이다. 현실정치권에 있는 분들을 비판할 필요도 없고, 국민을 즐겁게 해주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폴리테이너 허경영의 정치다.” 듣다 보면 그럼직도 한 이야기다. 기왕 재미를 추구하기로 작정했다면 옛날 이야기만 재탕하지 말고, 참신한 콘텐츠를 내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IQ430’이라고 스스로 주장하지 않았는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