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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탁 출연금 운용 ‘감사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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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탁 이자수익 해마다 늘어도 산정·지출 과정 불투명 논란

오는 9월 초 결산국회를 앞두고 변제나 담보 제공 등을 목적으로 국민들이 법원에 맡기는 공탁 출연금의 산정·운용 과정에서 투명성이 확보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공탁 출연금을 국가 예산에 포함시켜 심사를 강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청사 전경 | 김창길 기자

대법원 청사 전경 | 김창길 기자

공탁이란 법령의 규정에 따른 원인에 의해 금전·유가증권·물품을 법원의 공탁소(보관은행)에 임치해 법령에 정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제도다. 변제공탁을 예로 들면 한 중소기업 사장이 사채업자로부터 1억원을 빌려 높은 이자를 매달 갚아오다가 약속된 날에 원금을 갚으려고 사채업자의 집에 찾아갔더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럴 경우 법원에 빌린돈(공탁금)을 맡기면(공탁하면) 채무관계가 소멸된다. 뒤늦게 사채업자가 나타날 경우 이 사채업자는 법원 공탁소로부터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공탁금 규모는 해마다 늘어 2000년 2조5839억원, 2003년 3조4500억원, 2006년 5조8561억원, 2009년 6조7032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탁소로 지정된 신한은행 등 11개 은행에 맡겨둔 공탁금의 이자 규모도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으며, 이자수익에서 은행이 출연하는 공탁 출연금도 늘고 있다. 2009년도의 경우 공탁 출연금은 무려 763억300만원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탁금의 보관 및 관리의 효율적인 처리, 보관은행 지정심사 등을 담당하는 법인 형태의 공탁금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대법원이 감독하는 공탁금관리위 위원은 법원행정처 차장을 위원장으로 대법원, 기획재정부 등에서 추천한 고위공무원(6명)과 교수·회계사 등 민간인(3명) 등 모두 9명이 맡고 있다. 공탁금관리위는 공탁금 보관은행으로부터 공탁금 운용수익의 일부를 출연 받아 ▲국선변호 비용 ▲조정제도 ▲법률구조사업 등에 사용하고 있다.

공탁금관리위원회, 수익·출연금 안밝혀
공탁 출연금이 해마다 증가하자 이 출연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에서 공탁 출연금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공탁금관리위가 각 은행에서 운용하고 있는 공탁 수익금 및 출연금 규모가 어떻게 산정되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관련 자료를 제출하게 되면 보관은행들의 영업·회계자료 등 재무자료가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은행별로 공탁금 수익금이 얼마나 되는지, 거기에서 취득원가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등 관련 자료가 없기 때문에 국회에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탁금관리위 관계자는 “은행의 자료에는 공탁금과 관련한 자료뿐만 아니라 경영 관련 자료가 함께 포함돼 있다”며 “만약 이 자료가 국회에 제출돼 유출된다면 관련 은행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탁금관리위가 경쟁입찰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 형식으로 삼일회계법인에 공탁 출연금 관련용역을 몰아주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탁금관리위는 은행들로부터 공탁 출연금 산정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출연액을 도출하기 위해 삼일회계법인에 용역을 주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보관은행으로부터 공탁금 수익금 등 관련 자료를 제출 받아 공탁 출연금을 매년 정하고 있다. 공탁금관리위는 삼일회계법인에 용역대금으로 2008년 1200만원, 2009년 4500만원, 2010년에 4000만원을 지급했다.

[정치]공탁 출연금 운용 ‘감사 사각지대’

하지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0조 제2항)’에 따르면 수의계약 중 추정가격이 2000만원 이상인 계약의 경우에 의무적으로 지정정보처리장치(조달청 조달 입찰사이트)를 이용해야 하고, 견적서를 제출토록 돼 있다. 이에 대해 공탁금관리위 측은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 방식이 잘못됐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공탁금관리위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계법인으로 용역업무의 연속성 등을 고려해 그동안 수의계약해 왔다”며 “국회의 지적에 따라 내년부터는 조달청을 통한 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탁 출연금이 법(공탁법)이 정한 목적 이외에 사용되고 있는 점도 논란거리다. 공탁법에 따르면 출연금은 ▲공탁 전산시스템의 개발과 운용 ▲국선변호 및 소송구조 비용의 지원 ▲법률구조사업의 지원 ▲공익사업에 대한 자금의 지원 등에 사용토록 돼 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공탁금관리위는 출연금을 목적 외에 사용했다. 2009년에 국선변호인 사무실 지원(43억원), 전국 법원 조정실 개선(25억2500만원), 승강기 설치 등 민원인 편의시설 설치(21억9200만원) 등에 사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정책처는 “공탁법에 따른 출연금 사용 취지에 비춰볼 때 공탁 출연금의 사용 용도를 국선변호 비용, 조정수당과 소송구조 비용의 지원금 등 일정한 공익사업으로 제한해 법정 사용 용도에 부합하도록 투명성 있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탁금관리위 측은 “국회가 지적한 것은 합리적인 측면도 있지만 공익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초기의 인프라 비용으로 공탁 출연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 3-4년 정도 지나면 이렇게 인프라 비용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이 정한 목적 이외 사용도 문제점
공탁 출연금 사용과 관련해 공탁금관리위 사업과 대법원 일반회계 사업의 중복 집행 문제도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소관인 국선변호료 지원사업, 소송구조 비용사업, 조정제도사업은 공탁금관리위 사업과 현재 중복돼 있다. 2009년의 경우 국선변호료 지원사업에 대법원은 337억5300만원을 예산 편성했으며, 공탁금관리위는 147억6200만원을 지출했다. 조정제도의 경우도 대법원은 16억2100만원을, 공탁금관리위는 56억7300만원을 각각 집행했으며, 소송구조 비용도 대법원(216억6100만원)과 공탁금관리위(9억1500만원)가 중복 사용했다. 이 같은 중복 예산 편성은 대법원의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책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대법원 예산 편성시 일반회계 예산을 줄이고, 대신 공탁 출연금을 사용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는 이에 따라 공탁 출연금에 대한 산정 및 지출과 관련해 투명성 확보에 나섰다. 그 중에서 공탁 출연금을 일반 예산 또는 기금으로 편성해 예·결산 심사를 강화하자는 안과 감사원으로 하여금 매년 공탁금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도록 하자는 안이 제기되고 있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매년 발생되는 출연금이 국회에서 심의를 받지 않고 사용되는 것은 문제”라며 “공적인 목적의 출연금은 항상 공개적으로 감사를 받아야 하고, 운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공탁 출연금이 예산 외로 운영되기 때문에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공탁 출연금을 국가 예산 또는 기금화하면 국회에서 철저히 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 노철래 의원은 공탁 출연금에 대한 지출내역을 감사원이 회계연도마다 검사하게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 의원은 이미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법개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공탁금관리위 측은 “공탁금은 개인들이 돈을 국가에 잠시 맡겼다가 찾아가는 것이므로 국가가 그것을 세입에 포함시킬 근거가 없다”며 “ 더욱이 공탁금관리위가 독립된 법인으로 국가기관도 아니기 때문에 출연금을 예산 또는 기금화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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