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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외교 이후 ‘포석’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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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행’국제사회 지지 못얻어… 6자회담에 대한 입장 난처해져

지난 3월 24일 천안함 사태 발생 이후 4개월여 동안 이명박 정부가 총력을 다한 ‘천안함 외교’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야당에서는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정부는 천안함 사태 직후 민·군합동조사단을 꾸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침몰로 결론짓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해왔다. 유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에 대한 규탄 성명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유엔이나 ARF 모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성명은 발표했지만 내용은 밋밋했다. 참여정부에서 외교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가 국내정치에 예속됐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외교가 국내정치에 그때 그때 활용된 적이 없지 않지만 외교는 한 번 ‘밖’에 나가면 돌이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자유토론에 참석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자유토론에 참석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안보리 공격 주체 명시 안해
남북이 유엔 안보리를 앞두고 천안함사건과 관련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남북 어느 쪽의 손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밝혔지만 공격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엔에서의 천안함 외교가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 중국과 러시아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북한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북한은 안보리 성명과 관련해 “우리의 외교적 승리”라며 앞으로 6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 성명 10항은 ‘(관련국들이)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한다”고 돼 있다. 유엔이 천안함 사태 처리 방식과 관련해 대화를 주장했던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국 정부는 ‘닭 쫓던 개’와 같은 상황을 맞았다. 정부는 그동안 ‘천안함 올인 외교’를 벌여왔다.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의 대북제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외교 역량을 쏟아부었다. 고위 외교관리들이 총동원돼 양자와 다자외교를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나섰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28개 회원국 대사들을 대상으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으며,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워싱턴에 파견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유엔에서의 대응방안을 미국과 협의했다. 정부는 5월16~17일 경주에서 열린 제4차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과 일본측에 우리 입장 지지를 부탁했으나 중국의 반응은 냉랭했다. 중국의 입장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대북결의안은 불가하며, 의장성명이라 하더라도 북한을 ‘특정’하거나 ‘규탄’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유엔 안보리는 관련국들의 주장을 어정쩡하게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정부는 지난 5~6월 동안 주요 외교현안들을 도외시한 채 ‘천안함 외교’에만 매진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당 채규영 외교통상 전문위원은 “최근 외교통상부에서 제출한 1급 이상 해외출장 기록을 보면 공식 행사 이외에 모두 천안함 외교를 위한 출국이었다”며 “천안함 사태를 충분한 검증 없이 국제사회로 가져간 것이 중국, 러시아 등을 설득하지 못한 결정적인 실수”라고 말했다.

7월 24일 베트남 하노이 제17차 ARF에서 채택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의장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보다도 후퇴했다는 지적이 많다. 의장 성명 8항을 보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공격’으로 규정하면서도 누가 공격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공격했다’는 내용이 담기기를 원했으나 공격의 주체인 ‘북한’이 빠진 것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의 한 대표가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RF 자유토론 휴식 시간 도중 의장성명 초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의 한 대표가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RF 자유토론 휴식 시간 도중 의장성명 초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서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한 데 비해 ARF 의장성명에서는 이런 언급마저 빠져 있다. 특히 ARF 의장성명 제9항에서는 북한에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강력히 촉구하기보다는 관련국들에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강조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사과없이 6자회담으로 갈 수 없다”고 천명해 온 우리 정부로서는 당혹해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유명환 장관은 하노이에서 기자들에게 “(친북성향) 젊은이들이 북한을 그렇게 좋아하면 북한에 가서 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성급하게 국제사회로 간 것이 패착
정부가 4개월여 동안이나 총력을 기울인 ‘천안함 외교’의 관건은 중국 및 러시아의 협조 여부였다.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이들 국가와 천안함 사건 초기 때 부터 소통하고 협조하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위 관계자는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관합동조사단에 이들 국가의 대표단을 포함시켜야 했다”며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일본만 믿고 서둘러 안보리로 이 사안을 가져간 것이 패인”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조사 결과와 관련,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된 점도 국제사회 설득에 한계로 작용했다. 정부가 공개한 북한 어뢰 설계도가 다른 어뢰 설계도인 것으로 드러난 것, 사건 발생 시간과 관련한 수차례의 말바꾸기, 어뢰와 천안함 흡착물질 논란 등은 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한국 외교의 더욱 큰 문제는 천안함 사태와 한·미 연합훈련 이후에 국제적으로 고립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중국·러시아는 이미 ‘천안함’이라는 페이지를 넘기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으로 넘어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고, 미국도 이같은 대화 주장에 대해 마냥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한반도에서 유화적인 국면이 조성될 경우 한국은 6자회담으로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한국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선(先) 사과, 후(後) 대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만약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떠밀려서 6자회담에 참가한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주도권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천안함 카드’는 한·미 연합훈련을 마치면 약발이 떨어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출구는 6자회담인데,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한국이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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