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북정책 군사정권보다도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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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김상근 상임대표, 남북화해 강조

올해는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는 해다. 그러나 축제는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긴장의 수위를 높여 가던 남북관계는 천안함 침몰과 함께 지난 10년 이래 가장 차갑게 얼어붙었다. 남북한이 함께 치러온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산될 위기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서대문 기독교사회연구소에서 민간통일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상근 목사를 만났다.

[2010 연중기획]“현 대북정책 군사정권보다도 미흡”

남북교류가 모두 끊어질 기미다. 올해 6·15공동선언 10주년 기념행사는 어떻게 되나.
“올해 남북 공동행사는 실질적으로 좌절됐다. 지난해 겨울 중국 선양, 올해 3월 평양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위원장 회의를 갖고 북측 인사들과 만났다. 나는 북측 안경호 위원장에게 10주년 행사를 서울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북측은 반대했다. 남한 정부가 서울 행사를 허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10주년을 맞아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야 하는 만큼 평양에서 하자고 말했다. 6·15공동선언의 두 당사자(김대중 전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가운데 한 쪽이 아직 살아 있는 곳에서 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견인하는 계기로 삼고자 서울 행사를 줄곧 고집했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여당 고위 인사를 통해 한나라당은 물론 청와대로부터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부정적인 신호가 들려왔다. 결국 4월 초 개성에서 가진 실무회담에서는 평양에서 하기로 북측과 합의하고 통일부에 5월 20일까지 관련 허가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통일부의 답변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됐다.”

행사는 완전히 취소된 것인가.
“일단 평양에서 열릴 공동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이 사실을 북측에 공식적으로 통고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에서 따로 행사를 치를 계획이다. 6월 13일에 범국민평화통일대회와 평화통일박람회를 하고 6월 15일 기념행사를 한다. 또 북측과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지난 10년간의 일들을 정리한 백서를 발간한다.”

지난해 2월 백낙청 교수에 이어 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상임대표 자리를 맡고 있다.
“지난해 백낙청 전 대표가 이·취임식 자리에서 내게 ‘지금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남측위원회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얘기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쌓아 놓은 성과가 10주년을 맞는 해에 이렇게 엎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그러나 남북 화해와 교류는 우리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측 인사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북측은 아주 불안해 했다. 우리는 그때 ‘대통령이 아직 대북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중요하다고 말한 걸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이전 정권보다 대북정책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북측을 달랬다. 당시 북측 인사들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간 긴장이 고조된 이후 만났을 때 그들은 ‘봐라, 우린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말하더라.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공세적으로 적대적 긴장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진영이 왜 북한을 규탄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정부 발표는 확정 발표가 아니라 중간 발표다. 아직 더 조사하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 남아 있다. 정부가 성급하게 내린 결론을 근거로 북한을 규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는 모든 모의실험이 끝나는 7월에 최종발표를 하겠다고 했는데 내용으로 보면 이미 5월 20일에 최종 발표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는 날에 이미 결론이 정해진 발표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가.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북풍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권은 상식적인 합리성을 너무나 자주 넘어선다.”

이전 군사정권 시절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교한다면.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했다. 반공을 명분으로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그럼에도 7·4남북공동성명을 내놨다. 반공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면서도 남북이 지향해야 할 대의를 생각했다. 노태우 정권 때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도 높이 평가할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 이전 10년은 물론 박정희 정권이나 노태우 정권과 비교하더라도 크게 미흡하다. 실현 가능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정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정부가 노태우 정권 시절만큼의 고민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엇이라고 보나.
“흡수통일이다. 6·15공동선언 2항은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다. 통일은 어느 시점에서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사점을 찾으면서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통일 후 국가 체제에 대해서는 통일 시점에서 서로 논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통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결국 흡수통일하자는 이야기다.”

지금과 같은 대결 기조가 유지된다면 대결 국면이 끝났을 때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역효과를 정부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도 문제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의제가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주변국들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대립 구도가 외부의 힘에 의해 해소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운명을 남북이 주도하는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맡기는 상황이 되므로 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퇴로를 열어 두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를 보면 전혀 그런 고려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는 해에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 6·15공동선언의 정신은 무엇인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남북이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 6·15정신이다. 나는 전쟁을 겪었고, 선친은 북쪽 사람들에게 총살당했다. 이 때문에 통일운동을 하면서도 실존적인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넓고 깊게 보면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이 주어져 있다.”

지금의 긴장 국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어떤 방법으로든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라는 원칙 아래 공개적으로 하기 어렵다면 비공개적으로라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나 김정일 정권이 대화를 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 차원에서 못한다면 국민들이 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자는 얘기다. 선거는 목민관을 뽑는 행위지만 이번 선거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국민들은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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