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도 국민투표에 부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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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눈]4대강도 국민투표에 부치자

정치라는 말 속의 ‘치’(治)는 누구나 알다시피 ‘물(水)을 다스린다(台)’는 뜻이다. 인간이 유목생활을 접고 농경을 위해 정착생활을 한 이래 물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아니, 국가 자체가 그렇게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는 역사(役事)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치라는 말의 어원(語源)을 그대로 복구시켜 놓았다는 데에서 이 정권의 복고 취향이 얼마나 극심한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물을 다스려 국운을 융성시키겠다는 청동기 프로젝트다.

이 4대강 사업이라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원래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대운하를 판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자 갑자기 계획이 4대강으로 바뀌었다. 몇 십조원이 들어가는 국가사업의 계획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이게 얼마나 졸속으로 계획되고, 얼마나 엉터리로 추진되고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민망했는지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에서조차 4대강 사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홍수 피해를 말하지만 대부분의 홍수는 4대강이 아니라 지천에서 발생한단다. 태화강 운운하며 수질 개선을 말하지만 태화강의 경우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보를 없앴고, 무엇보다 예산의 대부분을 그리로 흘러드는 지천의 물을 정화하는 데에 사용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문화적 유적지는 여기저기서 수몰의 위험에 처했다. 그 대신에 강변에 아스팔트를 깔고, 도처에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짓겠단다. 21세기에 이런 몰상식한 사업을 귀한 혈세를 들여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이 정권이 4대강 사업에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토목경제 마인드, 즉 여기저기 콘크리트 까는 ‘토목사업’을 통해 고용과 수요를 창출하던 1970~1980년대의 낡은 경제 관념이다. 두 번째는 원님 송덕비 문화, 즉 청계천 사업처럼 사진발 잘 받는 건설 사업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대통령 개인의 결코 세련됐다고 할 수 없는 취향이다. 세 번째는 전 정권 흔적 지우기, 즉 전 정권에서 시작된 사업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어쩌면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경제 위기를 맞아 엄청난 예산을 조기에 투입한 결과 국가 재정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을 두 개나 동시에 추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미 여야 합의로 통과된 세종시 계획을 뒤엎고 그것을 순수 ‘메이드 인 MB(이명박)’ 정책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적 사업의 플랫폼 자체가 바뀐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권이 바뀌면 4대강 사업인들 안전하겠는가?

한나라당 일각에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 계획을 적절히 수정해 제시하면 여론전에서 불리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서 나온 말일 게다. 그런데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게 어디 세종시뿐이겠는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이야말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혈세를 들여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직접 묻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국민 여러분, 뭘 할지 선택해 주세요. ‘1번 세종시, 2번 4대강.’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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