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기술 어디까지 왔나, 고도의 소형화 개발은 시간 걸릴 듯
장소는 같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는 2006년 9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지역이다. 위력은 커졌다. 기상청은 이번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지진의 강도가 리히터 규모 4.4라고 발표했다. 1차 핵실험 때는 이보다 0.8 낮은 규모 3.8이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토대로 이번 핵실험으로 발생한 에너지는 1차 때보다 20배가량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통상 리히터 규모 1이 증가할 때마다 에너지는 30배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관측은 규모 4.7(1차 때에 비해 0.5 증가)로 우리 기상청 관측과 차이가 나지만, 1차 때와 비교해 지진 강도가 증가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3년 전보다는 확실히 발전
핵무기의 실제 폭발력도 강화됐다는 평가다. 1차 핵실험 때 폭발력은 1kt 미만이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핵실험 당일 국회국방위에서 “(폭발 위력이) 1kt 이상은 분명하며 최대 20kt까지 되는 실험일 수 있다”고 말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폭발 규모는 각각 15㏏과 22㏏ 정도였다. 반면 CTBTO(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는 “산하 전 세계 39개 관측소의 관측을 종합한 결과 폭발력은 ‘낮은 한자릿수 kt 범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핵공학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의 말을 인용해 “이번 핵실험의 폭발력은 3년 전 1차 때의 2~4배인 2~4kt으로 소규모”라고 전했다. 평가 주체에 따라 핵실험의 실제 폭발력에 대한 추정치는 최소 2배에서 최대 20배까지 차이가 있지만, 북한의 핵기술이 3년 전에 비해 분명히 발전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셈이다.
북한의 핵 관련 기초연구는 1950년대 시작됐다. 1955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강좌가 개설됐고 이듬해 과학원 수학물리연구소에 핵물리실험실이 설치됐다. 1965년쯤에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영변에 우라늄을 사용하는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물리학과와 방사화학과를 만들었고 김책공업종합대학에는 핵물리공학부를 설치했다. 북한은 이 무렵부터 핵 관련 외국 전문서적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난이 심화한 1980년대에는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을 추진했다. 1986년 UF6(6불화우라늄) 생산공정을 개발했고, 1986년에는 영변 5MWe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했다. 1989년에는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이 부분적인 가동에 돌입했다.
탄도미사일 기술 아직은 의문
핵에 대한 북한의 접근이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군사적 차원으로 이동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북한은 1986년 기존 원자력위원회를 원자력공업부로 개편하고 이듬해에는 영변지역을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관할하도록 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1983년부터 70여 회 고폭실험을 실시하고, 1993~1998년에는 기폭장치 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정책연구원이 5월 15일자로 발행한 보고서 ‘북한의 핵 및 로켓기술 개발과 향후 전망’에 따르면, 북한은 1만5000t량의 우라늄 자원과 5MWe 흑연감속로를 사용해 연간 6~7㎏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고 그동안 양성한 전문인력은 5000명 정도, 핵무기 생산에 관여하는 인력은 200여 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 능력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6~8기의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핵폭발 장치 1기를 이미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북한이 곧장 핵보유국이 될 수는 없다. 우선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걸림돌이다. 이 조약 9조3항은 핵무기 보유국을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폭발시킨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역국, 프랑스 5개국뿐이다. 다른 국가는 모두 핵비보유국가로 분류되며, 핵보유국이 이들 국가에 핵무기나 핵무기 제조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NPT체제 밖에서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받는 것이다. 선례가 없지는 않다. 인도는 1998년 사막에서 지하 핵실험을 했으나 NPT 가입은 거부했다. 이에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인도에 대해 경제재재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미국은 2006년 추가 핵물질 생산과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도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민수용 핵기술과 핵연료 제공을 약속했다. 문제는 북한과 인도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건 어렵다”면서 “인도에 대해서는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파키스탄도 대테러 전쟁 협력을 조건으로 기득권을 인정해줬다. 그러나 북한을 인정하면 일본과 한국으로 핵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걸림돌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 능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핵무기를 실어나를 수 있는 기술까지 갖추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소형화 기술과 탄도미사일의 성능이다. 일반적으로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의 중량은 미사일 적재 가능량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하려면 강한 폭발력을 갖는 것을 전제로 탄두 무게를 1t 이하로 줄여야 한다. 북한은 아직 이 정도 수준의 소형화 기술을 보유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공위성 발사라는 명분으로 수차례 로켓발사 시험을 했지만, 탄도미사일 기술 수준도 아직 본궤도에 올랐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문제는 북한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기의 폭발력과 제어력을 확보하고 미사일 기술을 더욱 개선한다면 기술적 난점을 극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고도의 소형화 기술 개발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초보적인 소형화 기술은 이미 공개돼 있다”면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스커드 미사일은 구 소련에서 도입해올 당시부터 전술핵 탑재력을 갖추고 있었고 대포동 계열 미사일도 발사각 조절로 사거리를 6000㎞로 늘릴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이 보유한 전술 핵무기 수준은 어려울지 몰라도 폭발력을 줄인다면 저위력 소형 핵무기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