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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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태동할 즈음 인권위원회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권위원회는 장·차관급 4명, 직원 439명의 대규모 직제안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 활동 경력 4년 이상이면 5급 공무원에, 그것도 국가공무원 시험에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필기 혹은 실기시험 없이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수만 명의 공무원을 줄이는 분위기에서 당시의 대규모 정부 조직 신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9급 공무원에 임용돼도 5급이 되려면 20~30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시민단체 경력 4년 만에 5급, 14년 이상이면 3급 공무원에 임용하겠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특혜이자 당찬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받은 정부조직 책임부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끙끙 앓았습니다. 오히려 정부조직 책임장관이 인권위원장을 만나 규모를 줄여달라고 사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김창국 당시 위원장은 “관료의 비협조로 일을 못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다녔습니다. 참 대단했습니다. 그때 인권위원회의 위상과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다. 그 배경은 물론 대통령이 인권위원회를 신설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자는 아무리 좋은 취지로 인권위원회를 설립하더라도 공무원을 축소하는 분위기와 공무원 채용의 엄격함을 근거로 인권위원회의 요구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기세 등등하던 인권위원회도 언론의 질타를 받고 정원을 줄이고 채용 경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양보해 지금의 인권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세등등하던 인권위원회가 불과 7년도 안 돼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미온적 대응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감사원 감사 등 인권위원회를 옥죄는 연이은 사태에도 변변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인권 관련 단체도 경악할 인사를 비상임이지만 인권위원으로 지명해도 ‘찍소리’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권위원회의 굴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호 뉴스메이커는 인권위원회의 말 못할 ‘민원’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인권위원회는 우리 기자에게 ‘한턱’ 단단히 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착잡합니다. 인권위원회를 창립할 당시 기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립 당시 그 기개는 어디로 갔습니까.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처지에 무슨 수로 훼손된 남의 인권을 찾아줍니까. 이런 식이라면 200여 명의 인건비로 나가는 국민 세금이 아깝다는 주변 인권 단체의 지적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기관은 NGO와 다르다”는 항변에서 인권위 역시 관료의 생리에 매몰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권위를 이런 식으로 능멸해도 되는 겁니까. 흔들리는 인권위원회를 보면서 우리의 인권 수준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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