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중 후보의 18대 총선 선거 포스터. 내가보는 세상, 혹은 내가 보는 나 블로그(http://monomato.com/)
총선이 끝났다. 서울 동작 을 구는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 지역 중 하나였다. 결국 정몽준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됐지만, 두 정씨의 ‘혈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네티즌은 이곳에 도전장을 낸 제3의 ‘정씨’ 정연중 후보를 주목했다. 범상치 않은 그의 구호와 공약 때문이었다. 그의 선거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었다. “붉은 태양을 이마에 붙이고… 황금 용포에 백마가 가자 포효하다!” 무슨 접선 암호 같은 구호도 이상야릇했지만, 30개 공약도 매우 튀었다. ‘지방자치제도의 폐지’ ‘AU(아시아연합) 건설조치(5년 내에 천하통일한다)’ 등. 아쉬운 건 이 공약들을 공식 포스터에 담다 보니 글자가 작아 눈에 잘 안 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후보와 다르게 그는 손에 뭔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동작구 선관위 직원은 그것을 ‘여의주’라고 불렀다. 이 선관위 관계자는 더 ‘쇼킹’한 제보를 했다. 현수막엔 그 ‘여의주’를 직접 입에 물고(!) 계시다는 것이다.
유세에 바빠서인지 정 후보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선거 당일, 투표 마감을 앞두고 그와 간신히 통화할 수 있었다. 먼저 접선 암호 같은 선거 구호. 부인이 15년 전에 꾼 꿈 내용이다. 정 후보 자신이 붉은 태양을 이마에 붙이고, 황금 용포에, 황금 투구, 황금 칼을 차고 야산에 서 있더라는 것이다. 정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고, 그 ‘계시’가 바로 부인이 꾼 꿈”이라고 주장했다. 정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면 17대 대통령이 될 뿐 아니라 18대까지 연임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17대는 우리의 이 대통령께서 등극하시지 않았는가. “제가 책에도 썼지만, 언제부터 할 것이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이명박 대통령 다음부터 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만….” 그런데 왜 동작 을 총선일까. ‘격돌하는 차기 대권 주자’가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씨의 포스터 사진을 본 네티즌은 “제2의 허경영” “허경영이 감옥에서 업글(업그레이드)해서 나왔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네티즌의 하마평에 대한 그의 생각. “허경영씨가 공약은 잘 만들어요. 쓸 만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천재 정치를 강조했지만, 저는 하늘의 계시에 따른 출마라는 점입니다. 차원이 다른 거죠. 허허….” 그는 투표 종료 10분 전, “이번 선거에서 최소한 한 명의 ‘정(鄭)씨’를 제치고 2등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투표 마감 결과 그의 총 득표 수는 51표. 전국 최저 득표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