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우정회사 TNT가 도입한 배출가스 제로 트럭.
2008년 한 해 지구촌을 관통할 공통 화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환경이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개도국은 개도국대로 온실가스 감축이 발등의 불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내버려두고서는 성장도 개발도 의미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는 그 분수령이다. 여기에서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법을 연구하고 결정해 다음 총회에 제시하기로 합의했다. 지금의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지구촌 환경협약을 맺기로 약속한 것이다. 차기 협약이 성안되면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으로 지정될 게 거의 확실하다.
온실가스 감축 문제에 민감한 대표적 산업 중 하나가 우편이다. 화석연료를 쓰는 굴뚝 산업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6%가 수송부문에서 나온다. 우편은 그중에서 가장 많은 운송수단을 동원하는 산업이다. 만국우편연합(UPU) 자료에 따르면 매년 4300억 통의 우편물을 국내외로 실어나르기 위해 오토바이 25만 대, 자동차와 트럭 60만 대, 비행기 수백 대가 쉴새없이 움직인다. 이때마다 온실가스가 뿜어나오니, 지구를 달군 주범 중 하나가 우편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우정당국에서 경쟁적으로 온실가스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 우정청 라포스테는 올 한 해 전기자동차 500대를 도입해 운용한다. 이를 5년 내 1만 대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프랑스는 유럽에서 전기자동차를 가장 많이 굴리는 나라가 된다.
네덜란드 우정회사인 TNT 익스프레스는 세계 최초의 무(無)배출가스 전기자동차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뉴튼이라고 불리는 이 자동차는 7.5t급에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어 환경성 외에 실용성에서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독일 우정의 자회사인 DHL은 고그린(GoGreen)이라는 에코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우편물 발송업체가 운송비의 2%를 환경기금으로 내면, 이 돈으로 우편물 운송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상쇄시켜주는 행동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린 소포’라는 것도 있다. 소비자가 보통 소포요금보다 더 비싸게 내면 그 추가 수입을 남미의 산림을 회복하는 일에 또는 동남아시아의 태양에너지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DHL은 그외에도 2006년부터 스위스와 스웨덴에서 가정 쓰레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운행되는 차량 24대를 운용해 이산화탄소를 1년에 12t씩 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차량은 일본과 방글라데시, 브라질에서 시험운행 중이다.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아 반(反)환경국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미 우정청(USPS)의 환경의식은 유럽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선 미 우정청은 대체연료를 쓰는 차량(AFV)을 3만7000대 운용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AFV 대수를 자랑한다. 미 환경청(EPA)으로부터 ‘배출가스 제로’를 인정받은 전기자동차 시티밴이 뉴욕 시내를 운행하는 모습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배출가스 외에 쓰레기 감축에도 열심이다. 매년 종이, 플라스틱, 컵 등을 재활용하는 물량이 100만t, 여기에서 얻는 수입만 1000만 달러에 이른다.
우정(郵政)에서 환경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실 오래전 나온 얘기다. 2001년 4월 UPU는 ‘우편과 환경’을 주제로 스위스 베른에서 심포지엄을 열었고, 여기에 모인 189개국 우정당국자들은 환경친화적(environmentally friendly) 우정서비스를 다짐한 바 있다. 7년이 지난 지금 선진국은 나름대로 실천에 옮기려고 애쓴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를 먼 나라 얘기로 인식해온 게 사실이다. 정부 차원의 대응 시스템이 없으니, 친환경적 우정 서비스도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이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기후변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을 보면 이제 뭔가 달라질 모양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