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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사단’의 쓸쓸한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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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주름잡던 이 전 부총리 인맥들…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으로 줄줄이 낙마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칼끝이 ‘이헌재 사단’ 을 겨냥하고 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칼끝이 ‘이헌재 사단’ 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 금융계를 장악했던 ‘이헌재 사단’이 벼랑에 몰리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 사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헌재 사단이 검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 일찌감치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출국금지된 데 이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보고펀드 대표)은 구속됐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계좌추적에 이어 출국금지됐다. 뿐만 아니라 범 이헌재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모피아(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전 재경부 은행구조조정특별대책단장)과 김유성 전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전 재무부 손보과장)도 체포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헌재 사단에 대한 정부(감사원·검찰)의 전방위 압박작전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의 최근 행보는 이헌재 사단을 겨냥한 내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점에 있는 이 전 부총리에 대한 검찰의 조사도 예사롭지 않다. 때문에 최악의 경우 이헌재 사단이 붕괴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학연 등으로 얽힌 재경부·금감위 출신

이헌재 사단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그 인맥을 뜻한다. 이 전 부총리와 업무·학연·지연 등으로 얽힌 인물이 중요 경제정책 결정 분야에 광범위하게 포진하면서 붙여졌다. 이 전 부총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어서 재경부·금감위 출신이 대다수다. 그래서 모피아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원래부터 힘있던 자리에 있던 인물이지만 이 전 부총리가 끌어주고 주요 보직에 앉히면서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한 세력이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전 부총리는 1969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70년대 중반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시절 ‘차관급 과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9년 율산 사태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국장급)을 끝으로 옷을 벗고, 미국 보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친 후 평소 그를 총애하던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의 추천으로 경기고 선배인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나 대우그룹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때가 1982년부터 1985년이다. 첫 직함은 ㈜대우 상무. 김 전 회장은 신규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그에게 맡겨 진두지휘하게 했다. 하지만 대우가 반도체 사업을 접자, 1985년 이 전 부총리는 대우와 결별하고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1년부터 1996년까지는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이렇게 여러 곳을 전전하며 낭인생활을 하던 이 전 부총리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7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하면서. 엄청난 권력을 가진 그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거침없이 해갔고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헌재 사단’이 구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유성 전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왼쪽부터).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유성 전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왼쪽부터).

장관시절 많은 ‘모피아’ 끌어 모아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현 칸서스자산운용 회장). 증권감독원 홍보실장이던 그를 발탁해 유력인사로 만든 이가 바로 이 전 부총리다. 이후 김 전 대변인은 확실한 ‘이헌재의 사람’으로서 이 전 부총리 주변을 맴돈다. 특히 이 전 부총리가 의욕적으로 만들던 ‘이헌재 펀드’의 간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오호수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전 증권업협회장), 이성남·이덕훈 금통위원,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박해춘 LG카드 사장,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 이성규 코레이 CKO,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도 이헌재 사단 핵심멤버들이다. 이들은 이 전 부총리에 의해 중용됐거나 이 전 부총리의 죽마고우(오호수 전 회장)다. 이중 이강원 전 행장은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 사건에 이 전 부총리와 함께 연루돼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은 이 전 부총리와 광주서중 동문으로, 이 전 부총리가 10억 원의 대출을 받던 2003년 초 외환은행장으로 재직했다.

또 이 전 부총리는 2000년에는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이러면서 많은 모피아가 이헌재 사단 휘하로 들어오게 됐다. 변양호 전 국장은 경기고 후배이기도 하지만 이 시절에 이 전 부총리와 함께 재경부에 근무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변 전 국장의 작품인 ‘보고펀드’는 이 전 부총리가 설립을 추진한 ‘이헌재 펀드’를 계승한 것으로 금융계는 분석하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주역 중 한 명인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도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 후배이며, 이 전 부총리가 금감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때 부하직원으로 근무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외환은행 불법매각 건을 변양호 전 국장과 김석동 차관보의 작품이라며 고교 동문 등으로 엮인 이헌재 사단을 겨냥한 포문을 열기도 했다.

이헌재 사단은 아직도 금융권에 널리 퍼져 있지만 과거만은 못한 상태다. 이 전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로 재직하던 2004년에는 금융계 요직에 이 전 부총리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중용되면서 ‘이헌재 사단이 싹쓸이한다’ ‘경제부총리와 인연 없으면 명함도 못 내민다’는 지적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금융계에서는 “관치(官治)의 시대가 아니라 이치(李治)의 시대”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전 부총리와 이헌재 사단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2006년 여름, 이헌재 사단이 몰락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 검찰의 공세가 얼마나 거셀지, 과연 이헌재 사단을 붕괴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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