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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고영희·김일성이 ‘킹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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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생전에 권력승계 장애물 제거… 할아버지는 ‘만재’라 칭찬

[포커스]죽은 고영희·김일성이 ‘킹 메이커’

우선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일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개인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김정일의 의중이 후계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변수다. 곳곳에서 그 의중이 드러나고 있다. 김정일 당 총비서는 자신의 세 아들 중에서 김정철만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하게 하고 있다. 조직지도부 근무는 김정일의 부인이며 김정철의 어머니인 고영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직 김정일만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 조직지도부를 장악하면 군과 내각 등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후계자 위치를 선점하려면 조직지도부에 진입하는 게 우선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김정일의 배려로 당중앙위 근무

더욱이 김정철은 내각 등 권력기관들을 지도·통제하는 부서인 조직지도부 중앙기관지도과 책임부원으로 배치됐다. 김정철은 중앙기관의 업무에 대한 지도와 간부사업 등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1960년대 중반에 당내에서 처음 맡은 직책이 중앙기관지도과 책임지도원이었다. 지도원이 1990년대 초에 부원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의 문헌에는 김정일이 대학 졸업후 청년동맹(민주청년동맹)에서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김일성이 당중앙위원회에서 일하라고 권고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언급이 있다. 김정일은 그때만해도 김일성의 권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나중에 그것이 자신을 ‘영도자’로 키우려는 ‘수령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김일성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간부들에게 표현했다. 김정철이 젊은 나이에도 ‘ 당중앙위원회 중앙기관지도과’에 배치된 것은 김정일의 속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 당 총비서가 김정철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최대의 후견인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2002년부터 조직지도부 사무실에만 ‘김정철 동지의 사업체계를 세우자’는 구호가 붙어 있다. 그 구호는 조직지도부를 김정철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서로 바꾸어가겠다는 의미다. 조직지도부는 규율이 세고 엘리트 성분 분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인원도 가장 많다. ‘김정철 사업’을 통해 아들의 업적으로 만들고 이를 명분으로 권력승계를 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려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후원자는 2004년 사망한 김정일의 네번째 부인인 고영희라는 데 이견이 없다. 고영희는 김일성 사망 다음해인 1995년부터 김정일과 군부에 동행하는 등 ‘영부인’ 노릇을 한다. 고영희는 죽기 전까지 고위간부와의 만찬 등 각종 행사에 김정철과 김정운을 배석시켰다. 아들들이 어려서부터 북한 권력 엘리트와 인맥을 형성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는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고영희는 2004년 5월 사망하기까지 그의 아들 중 하나가 후계자로 지명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다.

1998년부터 군 일각에서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시작되고 그것이 전면화된 시기는 2002년 여름. 고영희는 당시 어떠한 직책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제2인자였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 시 군대 내의 사상사업에 대해서도 지도하였다. 북한 사회에서 ‘사상사업’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북한의 내부 문헌은 ‘고영희가 충신 대오에 제일 앞장에 서 있다’고 적고 있다. 전사의 맨 앞에 서 있다는 뜻은 곧 2인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고영희가 아들들을 위해 권력투쟁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리제강과 리용철 등 당 핵심간부들을 통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있던 장성택을 축출한 것.

[포커스]죽은 고영희·김일성이 ‘킹 메이커’

2003년 제2인자 장성택 축출 성공

2003년 장성택이 김정일의 권좌를 승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로서 남한에 귀순한 황장엽은 그해 7월 4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나와,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 그 뒤를 이을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장성택이 제일 가깝다”고 말했다. 황장엽은 “장성택의 큰형(장성우)이 수도방위를 맡는 3군단장이고, 작은형도 군 정치위원인데다, 자신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으로 사방에 자기 사람을 박아 놓았다”며 “장성택은 지금 사실상 북한의 제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인척이자 최측근 실세인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행정·공안 담당)이었다. 그런 그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대외활동을 하루아침에 통제당했다. 황장엽의 발언이 북한 내부에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아들에게 권력 이양을 추구해온 고영희가 아들의 전도를 위해 장애물 제거에 나선다. 장성택을 ‘종파(파벌)행위’와 ‘권력남용’ 혐의를 씌워 축출하게 된다. 김정일 이후의 권력을 노리는 사람으로 몰아서 사실상 제거한 것이다.

장성택을 제거하는데 가장 앞선 사람이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본부당 담당). 그가 김정철의 후계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조직지도부의 간부 인사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김정철을 후계자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리제강 제1부부장은 장성택이 직무정지된 이후 당내 2인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인물. 그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에 크게 기여하여 신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장성택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당과 군에서 어느 누구든 그의 눈 밖에 나면 고초를 피할 수 없다. 권력에 저항하거나 권부의 의중과 다른 인사를 제거하는 악역을 주로 맡아왔다. 김정일이 김정철을 후계자로 의중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리제강은 김정철에게 매우 중요한 후원자인 셈이다.

군부장악은 리용철이 도와

리용철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군사담당)은 김정철의 군부장악을 돕는다. 김정철은 당내에서 어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쓴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철은 여자같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북한 고위간부들은 생시에 김일성이 “김정일이 천재라면 김정철은 만재다(열배나 더 똑똑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북한에서 신적인 존재인 김일성이 김정철을 그렇게 평했다면 어느 누구도 김정철의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 죽은 김일성 역시 김정철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철은 주로 젊은 측근들과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내부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급속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정부, 당과 군대를 혁명 2세대와 3세대가 이끌고 있다. 당연히 ‘혁명의 계승’ ‘영도의 계승’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 들어서 ‘김정일이 1960년부터 선군혁명 영도를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만 18세다. 만 24세인 김정철이 군 지도를 못할 것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김정철을 돕는 또 다른 담론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한은 1964년에 김정일이 ‘당 사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때 김정일은 22세다. 이와 같은 담론은 만 24세인 김정철의 후계자 부상을 도와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성장<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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