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판4판]광복절 특사](https://images.khan.co.kr/nm/635/a1.jpg)
큰오빠, 나 경순이에요.
아이고 저를 모른다고요. 삼순이도 알고, 금순이도 아는데 경순이는 모른다고요.
섭해라. 큰집에 들어간 사이 벌써 나를 잊었나봐요. 저는요. 영화 ‘광복절 특사’에 나오잖아요. 콩밥 먹고 있는 작은 오빠를 버리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경순이에요. 제가 잘 부르는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언제부턴가 그대를, 그대를 처음 만날 날
남모르게 그려본 분홍 립스틱
떨리던 마음같이 사랑스럽던 그 빛깔
말없이 바라보던 다정했던 모습”
이제 저를 알겠지요? 작은 오빠는 다음날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는 것도 모르시고 저를 찾으러 큰집을 나왔지요. 그 때문에 다시 큰집에 들어가느라 난리를 쳤잖아요.
큰오빠! 오빠가 큰집에 들어가는 날 나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답니다. 의리 빼면 시체라는 오빠가 억울하게 큰집에 들어가다니. 다른 사람들은 큰오빠가 십자가를 졌다고 하는데 깜빵 안에서 혹 종교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또한 의리를 지켜 고무신을 절대로 거꾸로 신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고무신은 얼마나 쉽게 뒤집히는지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참아야 하느니라’하며 허벅지를 쿡쿡 찔렀지만 결국은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됐습니다.
그런데 광복 60주년을 맞아 큰오빠가 특사로 나온다고 하는 바람에 다시 고무신을 만지작거립니다. 지금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답니다.
“오늘 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그대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분홍의 입술 자욱 새기겠어요.”
8·15콜라를 쭉쭉 빨면서 저는 큰오빠가 광복절 특사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오빠의 큰 얼굴 위에 분홍의 립스틱 자욱을 팍 남기겠습니다. 그러니까. 큰오빠, 나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주세요. 전에 거꾸로 신은 고무신을 다시 바로 신어야 하니까요.
(P.S. 못 나오면 거꾸로 신은 고무신을 그대로 신을게요. 양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