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윤광웅 구하기’ 나선 까닭… 정치권 공세도 ‘정공법’으로 돌파
![[포커스]국방개혁을 부탁해](https://images.khan.co.kr/nm/632/a1.jpg)
찬성 131 대 반대 158, 무효 4.
‘오기의 정치’에 대한 길들이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나라당이 제기했던 윤광웅 국방장관의 해임결의안은 결국 부결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를 청와대에 초청해 식사를 하고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윤 장관 유임의 필요성을 호소했던 것이 주효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6월 29일 한나라당의 윤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정국 주도권 장악용’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내각제에서 해임건의는 사실상 정권 불신임으로 대통령제에서는 없는 개념”이라고 거듭 부당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직접 ‘윤광웅 구하기’에 나선 것일까. 만일 해임결의안이 통과된다면 노 대통령이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중대한 문제였다. 한나라당은 “단지 GP총기사고만을 해임 사유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중부전선 3중 철책 절단사건, 훈련병 인분 가혹사건, 만취 어부 월북사건, 북한병사 철책침투사건, 해군 특수전 훈련용 고속단정(RIB) 유실사건 등 안보에 적신호를 보내는 잇단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나라당 주장에 대한 국민의 호응도 만만치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이런 여론을 의식, GP총기사건 발발 직후 윤 장관의 사퇴를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윤광웅 장관 유임이라는 정공법을 들고나오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낸 해임결의안을 “한나라당의 내분 탈출용”으로 규정하며 “단순히 민심분위기 쇄신용 (장관)교체는 안된다”(문희상 당의장)고 입장을 바꿨다. 열린우리당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은 “국민여론도 사퇴요구를 하고 윤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으니 만큼 사표를 수리하는 게 노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적었을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 노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국방개혁이다. 노 대통령은 국방개혁에 대해 “핵심은 가장 효율적인 군대를 지향하는 것”이라면서 “(국방 개혁을 맡을)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윤 장관이 개혁의 적임자라는 얘기다. 인재 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까지 윤 장관을 지키고 나선 명분인 국방개혁의 내용은 무엇일까.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의 핵심은 군 조직 개편과 병력 조정, 국방부 문민화, 합동참모본부 조직강화 등이다.
이런 방향의 국방개혁은 노무현 정권만 추진했던 게 아니다. 노태우 정권부터 추진해온 묵은 숙제다. 그럼에도 육군 중심의 기득권 구조 때문에 진척되지 않았다는 게 참여정부의 시각이다. 그래서 국방개혁의 목표와 방향, 진행일정을 법으로 의무화해 일관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들 내용을 명문화하는 ‘국방개혁법’을 오는 11월에 제정하겠다는 게 참여정부의 목표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6월 3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인식은 ‘국방장관이 군 조직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면서 “군을 장악한 윤 장관을 교체하면 국방개혁에 차질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장선 위원장도 비슷한 인식을 내보였다. 그는 “방대한 국방부 업무를 파악하는 데 8개월 정도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남북관계 등 안보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 국방장관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국방개혁과 관련 많은 부분에서 윤 장관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특히 현재의 국방개혁의 핵심적 아이디어가 윤 장관으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를 입증하는 근거도 있다. 노태우 정권 중반기에 추진했던 ‘8·18 국방개혁’의 주무담당자가 바로 윤 장관(당시 국방부 기획처장·해군 준장)이었다. ‘8·18 국방개혁’의 핵심은 육군이 주도하는 국방시스템의 개선이었다. 육군이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육방부’로 일컬어지던 국방부를 3군이 모두 골고루 발전시키도록 국방시스템을 바꾼다는 의미였다. 열린우리당 국방위 간사인 김성곤 의원은 “그때 제시된 개혁안은 합참의장의 육·해·공군 순번제, 합참본부의 장군 보직을 2:1:1로 분할, 국방부 정책부서 보직의 균형 배분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면서 “그때도 육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결국 개혁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추진했던 국방개혁 방향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윤 장관이 국방부 획득실장을 역임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는 게 당내 인식이다. 열린우리당은 “군무기의 현대화와 군부대의 정보화도 중요한 국방개혁 부분”이라면서 “비육군 출신으로 최초의 국방부 획득실장을 지낸 것도 노 대통령이 윤 장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이 처리됨에 따라 국방부 획득실은 방위사업청으로 독립하게 된다. 방위사업청 신설 역시 윤 장관이 추진한 중요한 국방개혁의 한 부분이다.
여야, 숨은 의도 파악에 부산
그러나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언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야는 각자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당정분리의 철회와 대국민 접촉의 확대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에 관한 문제라서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면서도 “대통령의 당 개입에 대해 걱정하는 의원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여론몰이식 행보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공개 서한을 통해 당정관계에 대한 소신을 밝힌 데 이어 7월 초에는 ‘언론과의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세균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의 정치개입으로) 힘이 빠져 있다”면서도 “그래도 문희상 당의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행동의 정치’로 인식하고 있다. 국방개혁을 명분으로 지지계층을 규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 박진 의원(한나라당)은 “국방개혁을 꼭 윤 장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정개혁을 선도하지 못한 열린우리당을 장악하고 국민여론은 보수와 개혁으로 양분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안보적 상황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보수의 첨병으로 인식되어 왔다. 윤 장관의 해임요구를 보수의 요구로 치부하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논리인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