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인터뷰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유쾌한 사람이라 즐겁게 인터뷰를 마쳤다. 같이 갔던 PD와 “편집하는 것도 재밌겠다”라는 말을 나누며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로 돌아와 2시간쯤 지났을까. 그 유튜버가 속한 기획사에서 갑자기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지 말아달라”는 문자가 왔다. 기획사는 “아직은 크리에이터의 신비주의 콘셉트가 유지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양해를 부탁드린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기껏 촬영을 다 했는데 왜? 인터뷰 전에 질문지를 이미 주고받았고, 인터뷰 영상이 어떤 유튜브 채널에 올라갈지 담당자와 미리 상의한 상태였다. 얼굴이 공개된 적 없는 유튜버였지만 촬영 현장에서 “그동안 왜 얼굴 공개를 안 하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가 “기회가 없었던 거죠”라고 웃으며 말했던 것도 기억났다.
기획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내부 보고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 꼬치꼬치 따지다 보니 또 다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담당자는 “우리 크리에이터를 인터뷰한 영상이 올라가기엔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자극적이고 어두운’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유튜버 본인의 입장인지 기획사의 입장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영상을 올리지 말아 달라는 이유가 조금은 짐작이 갔다.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에서 운영하는 ‘스튜디오 그루’는 업로드된 영상도, 구독자도 아직 얼마 되지 않는 유튜브 채널이다. 채널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영상은 트랜스젠더 뮤지션을 인터뷰한 것이다. 추천에 가장 먼저 뜨는 건 여성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인터뷰한 영상이다.
그 기획사는 ‘어둡고 자극적’이라는 표현으로 돌려 말했지만 결국 성소수자나 여성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채널에 엮이기 싫다는 뜻 아니었을까. “앞으로 채널에 밝은 분위기의 영상도 많이 올라갈 것”이라고 설득을 시도해봤지만 기획사의 입장은 완고했다.
전화를 끊고 기획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내가 했던 말들을 후회했다. 앞으로는 밝은 영상도 올라갈 것이라니. 나조차 트랜스젠더 뮤지션이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 인터뷰는 밝지 않다고 생각했나.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영상에 담긴 인터뷰이들의 모습은 매력이 넘쳤는데 말이다.
최근 스튜디오 그루 채널에는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를 인터뷰한 영상이 올라갔다. 유가영씨는 4월 방영이 불발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주인공이었다. 4월 18일에 방영 예정인 다큐멘터리가 4월 10일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로 불방된 바로 그 다큐멘터리다. 이것도 너무 어둡고 자극적이어서 잘렸던 걸까.
세상은 시끌벅적한 듯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애써 나타나도 별로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요즘은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 기획사도 엄청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민감한 이슈는 피하고 보자는 판단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거 유세차 소리가 귀가 아프게 시끄러웠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