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진사회성 곤충이라 부른다. 인간도 사회적 동물이지만, 진사회성 종은 아니다. 진사회성의 세 기준은 첫째, 세대의 중첩, 즉 군집에 적어도 두 세대의 개체가 공존할 것, 둘째, 협동적 양육, 즉 군집 구성원들이 양육을 위해 협력할 것, 셋째, 생식 노동의 분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고 두 번째 조건에 근접했지만 세 번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진사회성이 아니다. 즉 인간은 지구상에 나타난 사회성의 최고점에 위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면역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우리는 집단면역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신 접종자의 숫자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집단면역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2011년 코로나바이러스의 집단면역이 불가능한 5가지 이유로, 불명확한 백신의 전염 방지 효과, 백신 보급의 불균형, 새로운 변이의 등장, 면역 효과 지속의 어려움, 그리고 백신 접종자의 행동 변화 등을 꼽았다. 백신이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가진 인류에게도 집단면역은 쉽지 않은 일인 셈이다.
사회면역이란 군집을 이루는 유기체가 병원균이나 기생충으로부터 집단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꿀벌과 같은 진사회성 곤충에게 사회면역은 군집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밀집생활을 하는 꿀벌 군집에서 한 개체의 감염은 곧 군집 전체의 감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면역을 가진 종은 여러 독특한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그중 하나가 상호 그루밍이다. 침팬지 사회의 개체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털을 그루밍한다. 침팬지의 그루밍은 사회면역을 넘어 일종의 정치적 상징으로까지 사용된다.
인간도 사회면역의 몇 가지 형태를 보이는 종이다. 폐기물을 관리하고, 감염된 개체를 격리하는 등의 사회면역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인간사회에 남은 사회면역 메커니즘의 대부분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얻은 신기관이 전부다. 항생제의 발견, 공중보건의료의 발전, 백신 개발, 감염병 관리와 경보시스템 등은 우리가 침팬지나 꿀벌과 다른 방식으로 획득한 사회면역 체계다. 인간에게 과학기술이 선천적 사회면역의 보완재가 된다면, 꿀벌은 진사회성 곤충으로 살아오면서 거의 완벽하게 군집 전체가 면역체계를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공유 RNA
사회면역은 꿀벌 군집에 병원균에 대한 방어의 필수적인 요소다. 최근 꿀벌의 사회면역에서 RNA 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RNA는 유전물질인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거나, 세포 내 여러 생화학적 반응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는 핵산의 일종이다. RNA 분자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백질처럼 다양한 생화학적 기계로 사용될 수도 있는 독특한 물질이다.
흔히 미르 miR(microRNA)라고 부르는 꼬마RNA는 다른 전령RNA에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 분자다. 미르처럼 짧은 RNA 조각들이 유전자 발현을 미세조절한다는 사실은 20세기 초반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였다. 최근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꿀벌 군집은 환경으로부터 얻은 이 짧은 RNA 조각들을 흡수해 집단 전체가 공유한다. RNA 전송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RNA가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전달되는 과정으로 직접적인 세포 간 접촉, 체액의 교환, 혹은 RNA가 포함된 음식이나 물의 섭취를 통해 발생할 수 있다.
꿀벌 군집의 RNA 전송이 가능한 이유는 꿀벌이 집단 양육을 통해 로열젤리를 만들어 토해 애벌레에게 먹이고, 빈번하게 먹이 교환을 하기 때문이다. 로열젤리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영양소뿐 아니라 RNA가 풍부하게 포함돼 있고, 이 RNA 분자들은 꿀벌의 성장과 발달,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로열젤리에는 RNA 간섭에 관여하는 물질이 함유돼 있고, 꿀벌은 이런 방식으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집단 전체가 공유한다.
RNA 전송은 꿀벌 군집이 병원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훌륭한 자연선택의 흔적이다. 이 정보에는 병원균의 정체, 그것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 및 감염 위험이 포함될 수 있다. 꿀벌은 공유 RNA 전송을 통해 새로운 병원균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내장의 공유
우리는 다른 개체의 토사물을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혐오 반응을 보이는 종이다. 인류는 서로의 내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어미가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어미가 먹은 음식을 자식에게 토해 먹이는 일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금기시하고 있다. 우리는 내장을 공유하지 않는다.
꿀벌은 군집 전체가 내장을 공유한다. 내장을 공유함으로써 사회면역을 획득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그 한 가지가 바로 로열젤리다. 로열젤리에는 다양한 단백질과 펩타이드가 포함돼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RNA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즉 로열젤리 속에서 RNA 분자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다른 개체의 장으로 안전하게 전송될 수 있다. 이렇게 섭취된 RNA는 소화 체계를 통해 혈액으로도 운반되며, 다시 일벌의 음식 분비샘으로 이동한다. 즉 꿀벌 군집 전체는 내장의 공유로 다양한 RNA 분자의 정보까지 공유한다. 이 정보의 공유를 통해 병원균이나 기생충에 대항하는 사회면역을 갖게 되는 셈이다.
공유된 내장을 통해 좋은 RNA만 전송되지는 않는다. 꿀벌은 여러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RNA 바이러스다. RNA 바이러스는 꿀벌에게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는 기형 날개 바이러스로, 이 바이러스는 꿀벌의 날개를 변형시키고, 비행 능력을 떨어뜨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또 다른 흔한 질병은 유충 주머니 바이러스로 꿀벌 유충을 감염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꿀벌 군집의 공유된 내장과 활발한 RNA 전송 시스템이, 역으로 군집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꿀벌은 그러나 진화 과정에서 내장과 외부 RNA까지 모두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꿀벌의 장내 시스템과 장내 미생물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 꿀벌의 장내 시스템 연구는 꿀벌의 멸종을 막는 일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면역을 위해서도 중요할지 모른다.
참고: Maori, Eyal, et al. “A transmissible RNA pathway in honey bees.” Cell reports 27.7 (2019): 1949-1959.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