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임금피크제도 무효인가요?

‘임피제 무효 판결’ 파장… 권두섭 변호사 인터뷰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2009년 정년을 61세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노동자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1991년에 입사한 최모씨(67)는 2011년 4월부터 명예퇴직을 한 2014년 9월까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았다. 감액된 월급은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적게는 93만원, 많게는 283만원에 달했다. 최씨는 이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가 지난 6월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별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임금피크제는 기본적으로 ‘연령 차별’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차별이 정당화되려면 연령에 따라 노동자를 다르게 대할 필요성이 있거나 달리 대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 5월 26일 1·2심에 이어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봤다. 이는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대법원 판결이기도 하다.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준비하거나 단체교섭에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와 재계는 이번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는 예외적 사례에 대한 판단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지난 6월 8일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52)를 만나 대법원 판결의 의의와 확장성, 판결 이후 현장에서 접수된 상담 사례 등을 물었다. 권 변호사는 지난 5월 31일 사무금융노조·연맹이 연 ‘대법원 판결 설명회’에 참석해 현장 상담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어떤 의미가 있나.

“고령자고용법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대법원이 이 조항을 당사자들의 의사에 의해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으로 판단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대법원이 특정 사건의 결론만 내리는 경우가 있고, 앞으로 관련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겠다며 일반적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판결은 후자다.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연령 차별 사건에서 각급 법원들이 이번에 제시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3일 보도자료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체(7만6507개) 중 87.3%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이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임금피크제는 정년 60세 의무화를 배경으로 도입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이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판례에서 다룬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취지다.

-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일반적 유형이 아니기 때문에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이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이 사건에 대해서만 판단했다면 노동부, 경총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다른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노동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간 임금피크제에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예전 통상임금 사례만 봐도 노동부가 잘못된 행정해석을 고집하다가 일이 커지지 않았나.”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으로 나뉜다. 각각은 어떤 내용인가.

“예를 들어 현재 A라는 사업장의 정년이 60세라고 가정해보자. 회사가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57~60세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새로 도입한다면 정년유지형이다. 정년 60세는 그대로 두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년 60세를 63세로 연장하는 대신 61~63세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방식이라면 정년연장형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현장에서는 두가지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현재 시점에서 혼선이 오는 이유는 대부분 사업장이 2015년쯤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2013년 5월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정년 60세를 의무화했다. 2016년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이 개정안을 적용했다. 노동자 입장에선 법이 개정됐기 때문에 2016년이 되면 당연히 정년이 60세가 돼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법에 의한 연장일 뿐 회사가 새로운 보상을 주는 건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다. 그런데 다른 사건의 하급심 판례는 (노동자들의 생각과 달리) 법 개정 이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을 정년연장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정년연장이 된 노동자는 보상이라고 느낄 순 있지만 몇년이 지난 시점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정년이 연장됐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법 개정으로 정년이 보장된 지 오래됐는데 정년연장형이라면서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처럼 하는 게 이상하다’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입사 땐 정년이 55세였는데 법에 의해서든 아니든 연장이 됐으니 보상이라는 식으로 사용자가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년연장은 예정된 것이었다. 또 고령자고용법은 엄밀히 따지면 정년을 연장하는 게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애초 우리 법률엔 정년을 정한 내용이 없었다. 다만 앞으로 무조건 정년은 60세 이상으로 하라는 조항이 들어왔을 뿐이다. 기존에 정년을 58세로 정해뒀다가 60세로 연장하는 방식으로 개정된 게 아니다. 이런 맥락이 있다 보니 현장에선 ‘이게 정년연장형이 맞나요’라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무효인지를 판단하는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각 기준을 풀어서 설명한다면.

“첫 번째(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는 특정 연령이 됐다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할 때는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 이상이 되면 수행하기 어렵거나 예전만큼의 성과를 낼 수 없는 업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라면 이 상황을 고려해 임금을 감액하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대상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는 아무리 도입 취지가 좋다 해도 노동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희생이 지나치게 크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불이익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 세 번째(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는 임금 삭감이라는 불이익이 있는 만큼 이를 보상해주는 조치가 같이 도입됐는지, 그리고 해당 조치가 적정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설명회에서 질문받은 사례 중 이런 게 있다. 이 사업장은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6개월은 휴가를 준다. 대신 마지막 해 임금 지급률이 50%로 떨어진다. 회사는 임금을 절반으로 깎아도 6개월 휴가라는 보상조치가 있으니 괜찮다고 주장할 것이다. 노동자는 6개월 무급휴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과연 이게 보상조치라고 볼 수 있을까. 또 이 조치는 강제 노동시간 단축일 수 있어 적정하지 않을 수 있다. 네 번째(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는 만약 청년 일자리를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면 감액된 재원이 청년 노동자 채용에 활용됐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판단 기준이 정년유지형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

“대법원이 다룬 케이스가 정년유지형이긴 한데 4가지 기준을 보면 꼭 정년유지형에만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정년연장형은 정년유지형에 비해 무효라고 판단받는 게 쉽진 않다고 이야기할 순 있다. 왜냐하면 정년연장이라는 확실한 보상조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4가지 기준이 유지형에만 해당하며 연장형에 적용되는 다른 기준이 있다고 볼 건 아니다. 기준 설계 자체가 연장형이든 유지형이든 대략 이런 요건을 따져보라는 식으로 돼 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중에도 무효라고 판단된 사례가 있나.

“노동부는 지난 6월 3일 배포한 ‘임금피크제의 연령차별 여부 판단에 관한 Q&A’ 자료에서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빠르면 44세부터 연차별 최대 50%까지 임금을 삭감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판단한 사례를 소개했다. 학습지 회사 ‘대교’의 사례다. 1·2심 모두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회사가 대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지 않아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확정됐다. 다른 사례를 가정해보자. B사업장이 2015년 58세에서 60세로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했다. 원래 55세부터 5년간 임금 지급률이 500%였는데 임금피크제로 지급률이 300%가 됐다. 이 경우 5년 중 2년은 무상노동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년연장형이라고 해도 불이익이 과도한 경우 충분히 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6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 및 노정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사무금융노조·연맹 설명회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내용이 무엇인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사업장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형이 맞냐’는 질문이 많았다. 또 상담을 하다가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게 임금 감액률이 높은 사업장은 남아 있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미리 그만두고 나갔다. 회사가 임금 감액도 많이 하는데다 보직을 박탈하고 이상한 부서로 발령을 내면서 압박을 하니깐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는 연령 즈음에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례의 경우 원상회복을 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희망퇴직금을 반납할 테니 다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느냐는 취지다. 본인이 희망퇴직이라는 의사표시를 했기 때문에 되돌리기가 쉽지는 않다. 불이익이 커서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의 경우 이미 퇴출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지금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노동자가 많이 남아 있지 않더라.”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보나.

“기존의 임금피크제를 원점에서 검토할 때가 됐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임금피크제의 청년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가 많이 나왔다. 결국 대부분 인건비 절감이나 퇴출 목적으로 활용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이것이 과연 좋은 제도인지 의문이다. 한 달에 100만원 내지 200만원 정도 적게 줘서 생기는 이득과 수십년간 일한 노동자의 근무의욕 저하로 발생하는 손해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다른 노동자들에겐 ‘나이 들면 저런 취급을 받는구나’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요즘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60세에 환갑잔치도 잘 안 하지 않나. 나이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용자들도 과연 이 제도가 도움이 됐는지 살펴보고 전향적으로 노조와 교섭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

-청년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노동자들이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불만을 가지는 게 사실이다. 이 이슈는 세대갈등 문제도 있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상담을 해보니 노조들도 고민스러운 부분인 것 같더라. 젊은 조합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거나 당장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대상이 되는 분들은 관심이 많다. 문제는 연공급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령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처음 입사 땐 낮은 임금을 받지만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보상을 받는다는 기대를 갖고 일해왔다. 젊었을 때 자기도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에게 지금 와서 그건 모르겠다고 하면 쉽게 수용이 될지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다.”

-연령이 아니라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직무급제 도입은 20년 전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느낌이 든다.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노동자 임금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난해 초 집단해고를 당한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급여명세서를 보니 최저임금보다 몇십원 정도 더 높았다. 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 임금은 어느 빌딩·아파트에서 일하든 최저임금과 유사한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청소노동자의 직무급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한국사회 임금체계는 기업 임금체계다. 연공급보다 더 강력한 게 기업 임금체계다. 어느 회사에 다니냐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라지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다른 게 아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든 비슷한 직무를 한다면 유사한 임금을 받는 게 직무급제의 원래 모습이다. 회사별로 다른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면 온전한 직무급제는 아니다. 현대차와 현대차 3차 하청업체가 직무급제를 도입한다 해도 각각 임금이 다르지 않겠나. 직무급제 도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초(超)기업 교섭을 활성화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독일 금속산업을 예로 들면 오랫동안 벌여온 산별교섭에서 직무급 논의가 축적됐다. 한국의 경우 특정 산업, 업종의 유사 직무에 대해 공통적 처우를 하는 틀을 한꺼번에 만들진 못하더라도 초기업 교섭,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를 통해 당장 가능한 영역부터 적용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독일처럼 산업, 업종에 따른 직무급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실현이 불가능한 직무급제를 자꾸 말하기 전에 직무급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게 없는 상황에선 청소노동자 사례처럼 임금을 결정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사용자가 굉장히 낮은 임금을 정해 놓고 이걸 직무급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