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교사 1500명이 교단에서 쫓겨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였다. “교사가 교문 앞에 가로막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도, 교실에서 아이들이 울고불고해도 세상과 학교는 멀쩡히 돌아가더군요. 교사 1500명이 해고되면 세상이 뒤집히고 학교가 멈출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당시 새내기 교사였던 박지희씨(55)도 교실에서 끌려나갔다. 박씨의 말처럼 선생님이 떠난 뒤에도 학교는 평화로웠다. 기이한 세상이었다. 꼬박 5년을 해직교사로 살았던 박씨는 우여곡절 끝에 교단으로 돌아왔다. 30년 전 신출내기 선생님이었던 박씨는 이제 도봉초등학교의 할매 ‘교장 쌤’이자 초등국어교육의 대모로 불린다.
“해직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 굉장히 ‘꼴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어요. 해직 기간 동안 우리나라 투쟁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시야도 좁았고, 진심 어린 관심이 없었구나.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없구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때 이후로 교사들에게 다양한 삶의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교사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듯 아이들의 교육과정도 다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국 모든 학생이 같은 교과서로 같은 시기에, 같은 활동을 하는 수업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은 같은 연령이라도 가정적 문해환경이 다르고 문해력도 다르죠. 키워야 할 정서나 표현능력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맞는 교재와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안한 운동이 ‘온작품(쪼개거나 각색하지 않은 작품) 읽기’다. 교과서 내 작품이든, 담임교사가 추천한 작품이든 아이들이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골라서 함께 읽고 교과 성취목표를 달성하자는 취지다.
온작품으로 국어수업을 채우면 모든 교실에서 제각기 다른이야기꽃이 피어날 것이다. 교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평교사로 돌아갈 생각이다. 수업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라 믿는다. ‘교사가 교장을 하고, 교장을 하다 다시 교사로 돌아가는 선례’를 남기고도 싶다. 공모교장에 임했던 이유도 교장선출보직제로 가는 과도기에 선배로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서다.
“교직에 있으면서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순간이에요. 그중에는 ‘이순간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겠구나’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지요. 아직도 수업은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시간이에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정년으로 퇴직하는 날까지 담임을 맡아 수업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이제껏 고민했고, 답을 얻기 위해 젊은 날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정답일지 모르지만 좋은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이들은 교사의 삶의 태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는다. 요컨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 가장 좋은 가르침이었다. 교사가 민주적인지, 인권을 존중하는지, 자기주도적으로 살고 있는지 등 교사의 삶 자체가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선생님들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꾸렸으면 해요. 교사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간다면 아이들은 그런 교사의 삶을 보면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배울 수 있을겁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