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2019년 핫 이슈 ‘올해의 OO’

한 해를 시작할 때면 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지만, 일 년을 돌아보는 연말이 되면 수많은 사건·사고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란 표현이 늘 따라붙는다. 2019년도 여느 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국 사태와 영화 <기생충>의 흥행은 불평등 문제에 닿아 있고, 사회안전망 없이 진행된 혁신은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갈등의 뿌리가 됐다. 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 직고용 문제도 끝내 해결되지 않은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올해의 사건·사고를 키워드로 짚어봤다.

▲올해의 뒷걸음질 : 정시 확대
모두가 ‘잠들 수 있는 교실’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표 배부일인 지난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능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의혹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교육 공정성 확립’ 방안으로 정시 확대 카드를 내놓았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28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서울 소개 16개 대학에 한해 수능위주 전형을 40% 이상 늘리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소위 ‘인 서울’ 대학에 한해 정시비율을 30%에서 4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이야기다. ‘인 서울’ 대학은 대입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서울대가 내놓는 입시방안은 낙숫물처럼 나머지 대학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교육부는 지난해 대입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정시비율을 20%에서 30%로 확대한 데 이어 올해 또다시 40% 이상으로 늘렸다. ‘인 서울’ 대학에 한정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입시는 ‘인 서울’을 목표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기회와 과정의 공정’은 적어도 교육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말인 듯싶다. 대한민국 교실이 ‘잠자는 교실’이 된 지는 오래다. 정시비율 확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포기한 학생 모두가 ‘잠들 수 있는 교실’을 만들었다. 올해의 ‘뒷걸음’은 단연코 정시 확대다.

▲올해의 배신 : 프로듀스 순위 조작
연습생의 꿈·시청자 기대 우롱

지난 11월 14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시청자 투표 조작 혐의를 받는 엠넷(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엑스(X) 101’ 김용범 CP(총괄 프로듀서)와 안준영PD가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믿고 뽑은 한 표가 배신으로 돌아왔다.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엠넷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 중 국내에서 방영된 모든 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돌 그룹으로 연예계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들을 모아 시청자들의 투표로 최종 합격자를 뽑겠다던 방침과는 달리 득표수와 순위를 임의로 조작한 것이다. 조작 사태의 핵심 인물인 안준영 PD와 김용범 CP가 구속됐다. 수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보면 애초부터 프로그램 제작진이 사전에 여러 기획사로부터 청탁과 접대, 향응을 받아 시청자 투표와 연습생 참가자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미리 합격자를 내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의혹의 시작은 올해 이 시리즈의 국내편 네 번째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X>가 방영되는 와중에 네티즌들이 득표수 집계 내역에 조작을 의심케 할 만한 인위적인 흔적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단순한 오류라는 엠넷의 초기 해명과는 달리 의혹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이 시리즈가 최초 방영된 2016년부터 4년 동안 줄곧 순위 조작이 되풀이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조작된 경연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시청자와 연습생들은 뒤통수를 세게 강타당하는 것 같은 배신을 맛봐야 했다.

▲올해의 영화 : 기생충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왼쪽)이 지난 5월 2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배우 송강호와 함께 취재진에게 황금종려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영화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로 상류층과 하류층, 서로 다른 두 계급의 가족이 만나 일어나는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그렸다. 칸 영화제 수상 후 곧바로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월드 박스오피스에서도 1억2543만 달러(약 1460억원)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는 등 ‘메가 히트’를 쳤다. 고급 주택과 대비되는 반지하 가옥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국적인’ 영화였지만 빈부격차를 치밀한 구도로 드러낸 덕에 세계 각국의 영화제와 비평가 협회로부터 초청과 수상이 끊이지 않아 올 한 해 동안만 60여 곳에서 다양한 상을 받았다.

게다가 봉 감독의 이전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비평가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이 느끼는 ‘재미’ 측면에서도 대중적인 호평을 이끌어냈다. 단순히 빈자와 부자,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피하며 각각의 등장인물을 다양한 면모를 지닌 입체적 캐릭터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역설적으로 국내 영화 전반이 흥행과 평가 모두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와중에서도 <기생충>의 힘으로 한국영화가 국경을 넘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올해의 퇴장 : 낙태죄 폐지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 존중

지난 4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한 위헌 소원 결정을 앞둔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 이준헌 기자

낙태죄는 2019년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며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개정을 해야 한다. 법개정이 없더라도 낙태죄 관련 조항은 2021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형법에 낙태죄가 명시된 1953년 이래 66년간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면해왔던 대한민국 사회의 아젠다를 바꾼 ‘역사’가 됐다. 물론 헌재의 이번 결정이 모든 형태의 낙태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태아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고통 등의 감각과 외형이 갖춰지기 전까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위에 두겠다는 제한적 판단으로 봐야 한다. 헌재는 이번 결정과 함께 국회가 ‘어느 시점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올해의 격돌 : 타다
‘혁신이냐 약탈이냐’ 사회 논쟁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둔 가운데 지난 12월 8일 타다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운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타다는 내내 가시밭길을 달렸다. ‘혁신이냐 약탈이냐’를 두고 시작된 논쟁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번졌다. 타다 논란은 플랫폼 업계와 택시 업계 간 싸움이자 신산업과 기존 산업과의 마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안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의 ‘입’은 논란의 정중앙에 있다. 이 대표는 타협 대신 강공을 택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검찰과 국회를 겨냥해 공개 비판을 이어갔다.

이른바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나온 뒤에도 이 대표는 공세 수위를 높였다. 최근에는 타다 이용자를 대상으로 지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전략은 통했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면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부가 마련한 틀 내에서 경쟁하라’며 역공에 나섰고, 정치권도 타다와 선긋기에 나섰다. 검찰은 이 대표를 기소했다. 스타트업계 내에서도 타다를 보는 시선이 엇갈린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타다금지법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 사이 카카오는 대형 승합택시 서비스를 내놨고 우버 등 다른 경쟁사도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장할 참이다. 갈등이 이어지는 사이 타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올해의 ‘배째라’ : ‘직접고용’ 판결 무시한 도로공사
입사 연도별로 적용 입장 고수

지난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도로공사 측의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 창구 앞에는 카드 단말기가 붙어 있다. 운전자들은 수납원에게 카드를 줄 수도,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결제할 수도 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기계와 인간이 경쟁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자동화로 노동을 배제하고 효율을 우선할 것인지, 자동화와 인간의 노동을 조화시킬지의 갈림길에서 도로공사는 전자를 택했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이들은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로 바뀌었고,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됐다. 자회사행을 거부한 이들 중 일부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도로공사가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해 근로자 파견계약에 해당하며,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결했다. 도로공사는 그럼에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거나 1심에서 승소한 해고된 수납원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노사 갈등을 불렀다.

도로공사는 지난 12월 6일 대구지법 김천지원도 수납원의 손을 들어주자 승산이 없다고 보고 자회사행을 거부해 해고당한 1500명 중 1400여 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요금수납원의 입사 연도에 관계없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과 달리 2015년 3월 입사자의 경우 별도 사법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의 국민청원 : 자유한국당 해산
183만여 명 동의, 최고 참여 기록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서 올해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었다. 4월 22일 올라온 이 청원의 참여인원은 183만1900명. 지난해 최고 참여인원을 기록한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심신미약 감형 반대 청원’(119만2049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은 올해 누적 2위를 기록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의 참여인원(75만7730명)의 2배 이상 넘어선다. 그런 만큼 숱한 이야기를 낳았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성향 인사들은 ‘투표 북한개입’, ‘중복투표조작’ 등의 ‘설(說)’을 제기했다. 실제 당시 베트남에서 청와대 접속 급증 등의 웹 통계 자료를 근거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 접속 급증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 이전인 3월 며칠간 벌어진 일로 “장자연 사건을 덮기 위해 한류스타 사건을 내놓았다”는 루머 때문에 빚어진 일로 확인됐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이튿날에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도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33만 7964명이 동의했다. 두 청원에 대해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법률적으로 보면 정당해산 제소권은 정부에 있지만 정당에 대한 평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올해의 기억 :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질곡의 한 세기 극복 선언적 의미

대한민국의 뿌리를 어디로 볼 것인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극명하게 엇갈린 지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건국의 시점을 1948년 8월 15일로 규정했다. 항일 독립투쟁의 의미를 축소하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으로 건국됐음을 명시하고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제헌의회 개원축사에서 그해를 대한민국 30년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입장을 계승했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열린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회의’에서 대한적십자회(임시정부 시절 대한적십자사)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원본이 전시되고 있다. 이날 공개된 태극기는 오른쪽에 국기를 달 수 있도록 끈이 달려 있고 건곤감리 4괘와 태극 문양이 현재의 태극기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 연합뉴스

올해는 질곡의 한 세기를 극복했다는 선언적 의미에 과거 정권의 역사 왜곡을 청산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100주년을 맞은 조선의열단의 활동이 재조명되고 안경신·김마리아·권기옥 등 그간 저평가됐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조명도 이뤄졌다. <말모이>와 <항거: 유관순 이야기>, <봉오동 전투> 등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들도 흥행에 성공했다.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당시 이상을 실현하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3·1독립선언문은 한반도 독립이 동양 평화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했고, 상해임시정부 헌법은 “남녀·귀천·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하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는 길은 여전히 아직 멀다.

▲올해의 눈물 : 설리·구하라의 죽음
“악플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여성혐오의 표적이자 악플의 피해자였던 두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와 설리의 절친이자 그룹 ‘카라’ 출신의 솔로가수 구하라(28)는 지난 10월과 11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11월 25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들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모든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가 악플의 대상이 됐던 설리, 전 남자친구 최종범의 협박 동영상 피해자이자 폭력 피해자임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악플러들로부터 2차 피해를 일방적으로 당해야 했던 구하라.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여혐’ 사회임을 증명하는 듯한 그들의 죽음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온라인 댓글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지난 10월 31일부터 연예 섹션 뉴스에서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연예인과 관련된 각종 기사에서만큼은 적어도 인면수심을 한 댓글을 볼 일은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가운데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네이버’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악성 댓글을 다는 개개인의 반성을 끌어내는 것이겠지만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마저도 조롱하는 ‘악플러’들의 현주소는 여전히 암울하기만 하다.

<정용인·류인하·주영재·반기웅·김태훈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