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사라질까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제재 강화 의지… 국회 입법 등 구체 방안은 더뎌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활용돼 부당한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고, 경제력 집중을 야기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의지를 꺾고 있는 행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 9월 1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의지가 담긴 구호’는 무성한데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방안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 9일 공정위 수장에 오른 조 위원장은 취임한 지 두 달째에 접어들지만 ‘조성욱표 정책’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법원의 판결과 국회의 입법은 조 위원장이 넘어야 할 산이다.

과징금 부과 강화가 첫 번째 제재 수단

서울대 경영대 교수 출신으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알려진 조 위원장은 공정위 업무 중 대기업집단 정책에 가장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2012년 <경쟁저널>에 게재한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논문에서 “(대기업이)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남용하거나 불공정행위를 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법 위반을 넘어 많은 기업들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듯 조 위원장의 취임사에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한 경고성 메시지가 담겼다.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 내부거래는 독립 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앗아가고, 총수 일가 이익을 위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해 대기업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며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위법행위에 엄정히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취임 후 처음 대기업들을 만난 자리에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월 22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편법적 경영승계를 위해 대주주(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기업을 도와주는 거래가 종종 있다”며 “이러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에 대해서만 규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등 300여명이 현장에서 발언을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를 뒷받침할 ‘조성욱표’ 대기업 정책은 취임 두 달째로 접어드는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김상조 전임 공정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7년 취임 직후 대기업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이를 총괄할 기업집단국 신설 방침 등을 밝힌 행보와 대비된다. 조 위원장은 언론과의 소통 의지를 내비쳤지만 취임 후 구체적인 정책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연 적은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예산 관련 국회 일정과 각종 행사가 마무리되는 12월쯤 기자회견 개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 시절 마련된 정책의 연속성을 살리는 데 방점을 뒀다는 해석도 있다. 조 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담당하는 국세청과 정보공유를 강화하겠다며 실무협의가 진행 중인데, 이는 김상조 전 위원장 시절 논의된 내용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의 위법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김 전 위원장 때 연구용역 발주로 시작됐다.

조 위원장의 그간 발언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는 정책방향은 향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 정도다. 조 위원장은 대한상의 간담회에서 국내 기업이 공정위 제재에 큰 관심이 없다며 그 이유로 “과징금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법 준수를 당부하는 차원의 발언이었지만 불공정거래 제재 시 과징금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존 논문에서 “재벌의 불법행위는 적발되더라도 과징금이 낮아 불법행위를 방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는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강화는 조 위원장의 의지와 공정위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법원이 공정위 제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법안은 불투명

2017년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대한항공 일감 몰아주기 사건 판결이 대표적이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제재하는 공정거래법 조항이 적용돼 나온 첫 판결이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총수 일가 회사에 면세품 인터넷 광고수익을 몰아주는 등 ‘상당히 유리한 거래’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총수 일가를 고발하고 과징금 14억30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대한항공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한항공이 총수 일가에 제공했다는 이익의 ‘부당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인 ‘정상가격’을 공정위가 제시하지 못했고, 총수 일가 회사에 돌아간 이익이 크지 않아 ‘경제력 집중’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한 입증을 요구해 사익편취 제재조항의 입법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공정위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고법 판결 이후 사익편취 행위로 제재된 사건은 태광·대림·효성·하이트진로 등 4건으로 많지 않다. 공정위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서울고법 판결이 대법원에서 인용되면 사익편취 규제조항은 사문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익편취 제재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가 38년 만에 마련한 전부개정안은 사익편취 제재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상장사)·20% 이상(비상장사)인 회사에서 상장사·비상장사 모두 20% 이상인 회사와 이 회사들이 지분 50% 이상을 가진 자회사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30% 미만인 상장사들과 이들이 50% 넘는 지분을 가진 자회사가 이른바 ‘규제 사각지대’에 속해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실제 올해 기준으로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대기업 계열사는 지난해와 같은 376개로, 이들 회사를 중심으로 계열사들의 내부거래 금액이 총 7조2000억원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부개정안이 내년 5월 말 마무리되는 20대 국회 회기 안에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에 대해 “기업활동 옥죄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만인 지난 10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전부개정안이 처음 상정됐으나 한국당의 반발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향후 법안심사2소위가 언제 열릴지 불투명하다. 회의 일정 결정은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박광연 경제부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