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이 행복이 허락된 시간 ‘6주 한정판’

‘딱 한 번이라도 널 다시 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 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안다. 행여 꿈에라도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이장훈 감독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그런 기적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다. 우진(소지섭 분)과 아들 지호는 장마를 기다린다. 1년 전 아내 수아가 “비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장마가 시작되는 날, 우진과 지호 앞에 정말로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자신이 결혼을 했고,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우진과 지호는 그래도 좋다. 수아가 영원히 부자(父子)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우진과 수아는 둘의 첫 만남, 첫사랑, 첫 데이트의 기억을 되새기며 행복한 순간들을 나눈다. 우진과 수아는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6주간의 장마가 끝나간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만 1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2004년 도이 노부히로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도 일본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영화는 한국판 리메이크다.

다시 나타난 수아와 우진, 지호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함께 밥 먹는 시간, 뒹구는 시간,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까지 즐겁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밋밋한 일상일 일마저도 세 사람은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이유가 뭘까?

이 행복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수아는 비가 그치면 다시 사라진다. 여느 해보다 긴 장마라고는 하지만 세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주다. 이들의 행복은 ‘6주 한정판’이다. 공급이 제한된 한정판은 가치가 높다. 그래서 비싸게 거래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희소성이 높다’고 표현한다. 정상가격에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도 많다.

한정판(Limited Edition)은 원래 도서·출판업계에서 한정된 부수로 발간할 때 사용했던 용어다. 학술·연구용 책은 독자층이 넓지 않아 출간하기 힘들다. 때문에 구입을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예약을 받고 소량만 출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한정판’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한정판이 구매욕구를 높인다는 것이 알려지자 마케터들은 한정판을 마케팅과 결합시켰다. 재화의 공급량을 제한하기 위해서 특정한 기간 혹은 특정 장소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또 품질을 차별화해 가격을 초고가로 매거기나 가격을 크게 낮추는 방법으로 한정상품을 낼 수도 있다. 아웃도어 업체인 노스페이스는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29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롱패딩 2018장을 시장에 내놨다. 이른바 롱패딩의 신화를 불러온 노스페이스의 ‘평창동계올림픽 리미티드에디션’이다. 스타벅스의 플래너도 한정판의 심리를 잘 이용한 상술이다. 특정기간에 지정한 양의 음료를 구입한 고객에게만 선착순으로 지급한다는 조건은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대형할인마트도 한정판을 곧잘 이용한다. 한창 붐빌 저녁시간 ‘지금부터 10명 한정 불고기 특가 50% 할인’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10명에게만 주는 절반가격 혜택을 놓치면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줄을 서게 마련이다. 한정판은 그전까지 구매의사가 그다지 없었던 품목마저도 손이 가게 하는 마술이 있다. 그래서 곧잘 과시적 소비로 이어진다.

영화속 경제

가족이 가끔씩 지겨운 것은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침밥 먹고 나가라는 어머니의, 배우자의 잔소리는 영원하지 않다. 아이가 재롱을 피는 것도 그리 길지 않다. 가족들과의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면 결코 허투루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인생은 짧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