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월인공방 송진경씨 ‘세상은 변해가도 보석은 변하지 않는다’

보석이 귀한 것은 변치 않는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송씨가 익선동에서 만났던 그의 이웃들 모두가 마음에 보석을 지녔다고 했다. 보석은 지상의 가장 낮고 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월인공방 송진경씨의 작업테이블은 복잡하고 심란하다. 작은 테이블 위에서 단 한 사람을 위한 장신구며 값진 물건들이 태어난다. 쇠를 녹이고 깎아 형태를 만들고 보석을 올려 자리를 잡는 일인 만큼 놓여 있는 도구들도 끌과 줄, 정과 망치가 당연했다.

송진경씨는 정밀세공용 기구들을 가리키며 “요즘 3D프린터가 주목 받고 있지만 보석세공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편적으로 쓰고 있었다. 정밀가공을 위해 치과기공소에서 쓰는 세공기구들도 사용한다. 어떤 땐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하며 노하우를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보석가공과 공예계에서 경력이 일천한 ‘피라미’라고 칭했지만 그는 엄연히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주목 받는 공방 주인이다.

송진경씨의 작업 테이블. 귀금속과 보석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곳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작업장 문 닫아

송씨가 손님을 만나 보석 디자인을 상담하고 사무를 보던 공간은 요즘 호사가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익선동에 있었다. 한옥을 고쳐 만든 작업장에서 5년 동안 사람을 만나다가 지금은 그곳에서 떠밀려났다. 낡은 지역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거주자와 세입자가 밀려난다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탓이다. 인사동, 삼청동, 문래동, 가로수길, 해방촌, 이태원을 거쳐 익선동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점이 됐다. 송진경씨는 작업장 문을 닫았을뿐더러 그 와중에 복잡한 송사에 휘말렸다.

누군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거창한 이유와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송씨가 금속을 다루고 보석 만지는 일을 시작한 것도 필연적인 운명의 이끌림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송씨는 “임시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정규직을 시켜준다고 잠시 쉬고 있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한정 없이 길어졌고 어쩌면 되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닥쳤다.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고 찾아봤는데 마침 동네 한편에 공예가의 공방이 있었다. 한 석 달 정도 배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 함께 살던 부모님께도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리지 않았을 만큼 조용히 배웠지만 아마도 귀금속과 잘 맞고 쇠를 다루는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공예가도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했고 송진경씨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송씨는 ‘너무 열심히 해서’ 선생이 불편했던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첫 스승은 송씨에게 더 배우려면 종로로 가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주었다.

익선동이 뜨기 시작하면서 월인공방 사무실도 문을 닫게 됐다.

종로 2가에서 6가에 이르는 거리는 귀금속이 흘러들어가 값이 매겨지고 가공돼 팔리고 있다. 도시개발에서 뒤처진 듯 보이지만 허름한 건물 한 채에서 다뤄지는 금과 보석류 값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하다. 종로는 부산 범일동 귀금속거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물건들이 거래되는 장소다.

송씨는 종로에서 두 번째 스승을 만났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았던 죄로 두 번째 스승은 그를 다시 주물 하청공장 세공실로 보냈다.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종로생활 끝에 자기 문패를 걸기로 했다. 귀금속도매상가가 밀집한 종묘 인근 익선동의 오래된 한옥 바깥채를 얻어 사무실을 열었다. 익선동은 서울에서 가장 후지고 인적 없는 동네였다. 노인들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쪽방과 비가 새는 기와집, 골목을 들어서면 어둠으로 이끌 것 같은 미로의 마을이 송씨가 자리를 잡던 무렵 익선동의 모습이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서까래를 털어내고 가게를 꾸며 ‘월인공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방 이름에 대해 송씨는 “월인(月印)이란 말은 거울이다. 월인천강지곡에서 그리듯 하늘의 달도 거울이고 그것이 비친 강물도 거울이며 바라보는 사람도 거울인 것이다. 그런 뜻을 담고 싶었다”고 들려줬다. 월인공방의 홈페이지(wol-in.com)에는 그가 바라는 공방의 의미와 지향점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의 성장을 위한 시도의 책상에서 / 배움을 위한 모두의 학교이자 울타리 / 경시 받는 이들이 팔목을 맞잡은 연대의 방패 / 흩어진 우리를 찾기 위해 공중에 띄운 안테나.” 결국 스스로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시도한 월인공방의 공예 책상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석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학교가 됐고, 모든 차별주의에 맞서려는 노력의 출발이 됐으며,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 떠도는 이들이 소식을 들으려 귀를 기웃거리는 안테나가 되고 말았다.

보석을 팔기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공방 문을 열고 만든 첫 작품은 엉뚱하게도 만화경(萬華鏡). 어린 시절의 장난감으로 치부할 만화경에 앞유리 대신 맑은 수정을 박아 넣고 황동으로 몸체를 만들었다. 만화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화려하지만 눈을 떼면 현실은 그대로이다. 송씨는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했는데 인터넷 편집숍인 ‘펀샵’(funshop.co.kr)에 물건을 내보기로 했다. 거절 받는 일에 워낙 익숙해 별 기대 없이 제작 기획안을 써서 판매책임자와 만났고 좋다는 답을 받았다. 첫 기성 작품은 그렇게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개별 주문제품 외에 월인공방이 기성 제작품으로 내놓은 제품들은 10여개를 넘었다. 담배 파이프처럼 실용적인 상품부터 윷놀이 세트처럼 다소 엉뚱한 제품들을 진지하게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만든 윷에는 춘하추동·천지일월·동서남북을 각각 새겼고, 깨알같이 빼곡한 설명서에는 윷이 갖는 민속적이며 철학적인 의미를 적어 두었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일보다 설명서를 쓰는 일이 더 어렵다. 국회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상품에 담긴 의미를 밝혀둔다. 때로는 설명서를 쓰다가 지쳐서 출하시기를 놓친 제품도 있다”고 했다.

빼곡히 적힌 윷놀이 설명서. 삼인검은 설명서를 쓰지 못해 판매시기를 놓쳤다.

송진경씨는 자신이 만드는 상품이 사치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람에겐 생존 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하루 커피 한 잔을 아껴서라도 자신을 위해 사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 인생의 윤기를 더한다고 본다. 공방에서 만들어 내놓는 제품들이 누군가의 삶 속에 빛나는 귀한 물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물건 하나가 당장의 쓸모보다 영혼을 위로하는 소장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떤 순간의 경험이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고 모르던 아름다움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송씨는 그가 만드는 제품들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이끈다고 이야기한다. 송진경씨는 “공방에 제작을 의뢰하러 찾아오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보석에 대한 정보도 주고 디자인에 대한 의견도 나눈다. 덜컥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서 제작과정에서 새로운 어려움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나나 손님이나 모두가 배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트위터 계정 이름이 학생인 것도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됐다.

그러다 보니 송씨의 공방은 보석을 팔기보다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았다.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으로서는 별로 유리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기에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송씨는 “보석을 다루다가 자칫 파손 등으로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크다. 자금 압박 때문에 재고를 많이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 때문에 보석상은 2·3대째 대를 이은 이들이 유리한 면이 있다. 맨주먹의 내가 손님과 나눈 신뢰, 보석상가 상인들과 쌓은 믿음이 이 바닥에서 일을 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여러 날 얼굴을 맞대고 몸과 마음으로 보여줘야만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보석의 모양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이아몬드 커팅도 빛의 투과와 반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면서 원석을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결과이다. 다이아몬드나 루비 등 값비싼 보석은 그 속성 때문에 만들어지는 모양이 결정돼 있다. 보석을 보는 방법도 학습이 필요하다. 배우고 알 때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 보석에 대한 송씨의 지론이었다. 인류가 왜 특정한 물질에 집착하고 가치를 부여했는지에도 역사적이고 물리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배워야 알 수 있고, 알아야 제대로 가치를 감상할 수 있으므로 보석상의 테이블은 학교와 같다고 비유했다. 송씨는 더 나아가 “오팔의 인광을 보면 인(燐)이란 원소를 떠올릴 수 있다. 생명체의 모든 세포는 인을 가지고 있어서 지구상의 생명은 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빅뱅 이래 우리는 우주와 함께 그 물질을 나눈 셈이다. 보석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어느 순간 아름다움에 눈을 뜰 수 있고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보석은 크기 뿐 아니라 빛깔과 모양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보석감별 세트.

가장 좋아하는 것은 루비와 비취

종묘 인근 동네들의 뒷골목에는 보석 세공업체들이 빼곡히 몰려 있다. 한 공방마다 두세 명에서 십여 명에 이르는 기능인들이 모여 일한다. 각자 다루는 귀금속과 보석, 분야에 따라 자신의 작업도 하고 협업도 진행한다. 익선동 사무실 문을 닫은 후 송씨도 초기에 일을 배웠던 주물 하청공장 한편에 작업책상을 놓았다. 보석상 진열장의 화려함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한 셈이다.

송씨는 “보석은 순도와 함량을 국가에서 엄격히 관리한다. 세공을 가르쳐주는 스승님께서도 항상 장난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너무나 귀한 물건이라서 사람을 유혹하고 죄의 길로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말한다. 송씨에게 어떤 보석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자 “루비와 비취”라고 답한다. “보석은 단단하고 굳은 정도인 경도와 강도로 표시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경도 10으로 가장 굳은 물질이다. 하지만 강도는 낮아서 망치로 치면 깨진다. 비취는 무르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루비는 지구의 핏방울에 비유할 정도로 붉고 계절에 따라 비치는 태양빛이 달라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무엇인가를 애착하는 데도 심미안이 열려야 하고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값진 보석도 누군가에겐 단순히 비싼 돌멩이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처유상수

익선동 사무실의 문을 닫으면서 송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그간의 생활과 사정을 적은 글타래를 남겼다. 그곳에서 만났던 이웃들과 동료들과 선의를 베풀어준 모두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겼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을 트위터에 중계한 탓에 송씨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다.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그의 표정은 별로 어둡지 않았다. 세상은 급하게 변해가도 보석은 변하지 않는다. 보석이 귀한 것은 변치 않는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송씨가 익선동에서 만났던 그의 이웃들 모두가 마음에 보석을 지녔다고 했다. 보석은 지상의 가장 낮고 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송진경씨의 보석 세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